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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13. 2024

내가 부리는 사치

6주간 폴란드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내 옆에 있었다. 꿈에..

  돈은 늘 없다. TV에 나오는 조 단위의 자산가는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존재이라고 외면하지만 미치게 부럽다가끔은 나도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돈을 써보고 싶다.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 수필가인 장 카스타레드는 사치가 없는 인류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사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 동력이 된 정신적 차원의 것을 말한다. 카드는 못 긁더라도 지적, 문화적 사치를 누리는 인간이 되면 되겠구나 위안이 된다. 맞지 않는 해석일지라도 내게는 자본주의 사회 속 정신승리다.


 지인이 국제국립교육원에서 진행하는 특수외국어 교육사업에 대해 알려주어 폴란드어 강의를 신청했다. 좋아하는 폴란드 작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다. 내 입으로 이국의 원어를 뱉어내면 언어의 리듬감이나 정서가 조금이라도 와닿지 않을까. 교양을 쌓지만 지금의 내게는 실용성은 하나도 없는 사치스러운 배움이다. 그것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수업료가 0원이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구나.

 수업은 온라인으로 두 시간씩 6주간 진행했고 발음과 인사, 소개말 그리고 몇 개의 동사와 변화되는 규칙에 대해 배웠다. 인도-유럽어족의 슬라브어군에 속하는 폴란드어는 영어 알파벳과 거의 모양이 같지만 몇 글자는 알파벳에 빗금이나 온점, 꼬랑지를 붙인다. 발음도 영어와 조금 다르다. w를 v처럼 발음하거나, 존재하지만 무음인 자음도 있다. 알파벳 두 개를 함께 써서 한 발음으로 되는 문자도 여러 개다. 폴란드어는 자음의 언어라 해서 신경 써 발음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발음이 많아 헷갈다. R 발음은 혀를 도르르 굴려야 해서 연습하다 보면 턱이 얼얼하다. 그래도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역설적인 부드러움이 좋다. 초반에는 간단한 문장을 외우기만 하면 되었지만 수많은 격변화와 존칭, 그에 따라 변형되는 단어의 움직임은 슬슬 버거워진다.

 갈급함 없는 배움은 속도도, 이해도 더디다. 암기도 예전 같지 않다. 결국 강사님의 질문에 '선생님, 잠만요, 어지러워요!'라고 외쳤다.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수업 끝나니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폴란드어는 이런 것이에요 맛만 봤지만 그래도 끝까지 수업을 들으며 마무리했다. 


 강사님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로 만든 어느 가수의 노래를 들려주셨는데 가사를 보며 따라 불러보겠다는 소박한 결심이 생긴다. 이 시간 내 영혼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 묻는다면 에르메스 버킨백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만큼. 그럴 일이 없으니 수 있는 얘기다. 그래서 괜찮다.



<그림책 추천>

* 사치와 평온과 쾌락/장자크 상페 글그림/열린책들/2010.1.29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마리야 이바시키나 글그림/김지은 옮김/책읽는곰/2022.6.8

* 부자가 되고 싶은 알렉산더/주디스 바이올스트 글, 레이 크루즈 그림/정경임 옮김/지양어린이/20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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