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우리 반 애들은 안 잡아먹어>를 만든 작가는 친구를 깨무는 아이에 대한 일화를 전해듣고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자꾸만 반 아이들을 집어 삼키려는 어린티라노사우루스를 등장시켜 익살스러운 만화풍의 그림으로 유쾌하게 상황을 풀어갔지만 실제로 그런 아이가 내 아이와 어울린다면 어떨까. 같은 성향의 캐릭터라도 지면(紙面)과 실제에서 그들을 대하는 온도차는 크다. 읽을 때는 응원하지만 볼 때는 부담스럽다.
지인의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병원에서 ADHD 판정을 받았다. 약물과 놀이치료를 병행했지만 워낙에 감정 기복이 심하고 걸핏하면 과격한 말과 행동을 하는 바람에 집안 식구의 근심거리였다. 게다가 아이가 하는 말들은 자신에게는 관계 유지를 위한 진심이었는지 몰라도 남들에게는 거짓말쟁이었다.
몇 년전 함께 여행을 갔다. 폭탄 같은 아이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모든 일행이 조심하고 참다가 아이의 행동에 결국 내가 화를 냈다. 대체 뭐가 문제냐 물었더니 누가 들어도 핑계요, 거짓말이 분명한 말을 쏟아냈다. 그래 너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숨을 고르고 반쯤 포기한 상태로 아이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밝힐 수 없지만 아이의 본심같은 한 마디가 터져나왔다. 아이의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잠시 후 아이는 서럽게 울던 일은 잊었는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친다. 또 백과사전에서 본 구절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읊어대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인다. 널 어쩌면 좋으냐 싶으면서도 짠하다.
손을 잡는다. 작고 도톰한 그 손은 따뜻하다.
<그림책 추천>
* 우리 반 애들은 안 잡아먹어/라이언 T. 히긴스 글그림/마술연필 옮김/보물창고/2019.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