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Jun 06. 2024

의자의 주인

길고양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읽고 나면 인간과 동물의 영역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해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지구는 마땅히 인간의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미안해진다. 감상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언제부턴가 동네 가로수길 벤치 한편에 길고양이 컨넬이 생겼다.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간 고양이가 떠돌자 그것을 딱하게 여긴 누군가 갖다 둔 것이라 했다. 스토리를 갖고 있는 길고양이는 특별해졌다. 

 우리 집 아이도 그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에 열심이었다. 사람을 가리던 회색빛 고양이는 '츄르!'하고 외치면 어디선가 나타나 꼬리를 한껏 세우며 다가왔다. 호동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고양이를 돌보는 다른 이들이 각자 이름을 부르니 누구보다 이름 많은 고양이가 되었다.

 늘어지게 부른 배를 보며 누군가 새끼를 밴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이 새끼가 태어나면 데려다 키우자고 졸랐다. 마음이 덜컹, 한다. 키울 생각은 없지만 모른척할 자신도 없었다. 길을 지나며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가 딱 좋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 시간이 또 늘었다.


 어느 오후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길고양이를 보러 간 길에 어떤 어르신이 너희 때문에 사람이 여기 앉아 쉬지도 못한다고 역정을 내다가 등산 스틱으로 고양이를 치며 쫓아냈다는 것이다. 모두가 길고양이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먹이를 주는 것을 나무라는 이도 있고 친근한 척 손짓하다가 다가오는 고양이에게 나뭇가지를 후려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몇 달 후 컨넬이 없어졌다. 누군가 컨넬과 길고양이 때문에 아이들의 안전이 염려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했다. 길고양이는 자취를 감췄고 아이들은 고양이의 생사를 걱정했다. 며칠 만에 다시 고양이가 나타났지만 전보다 예민해지고 아무 곁에나 다가가지 않았다.


 얼핏 사전을 찾아보니 벤치는 여러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를 뜻한다고 한다. 고양이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쉰 걸음마다 설치된 벤치 중 하나 정도는 고양이에게 양보해도 억울하거나 화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 와중 호동이가 수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안심이다.



<그림책 추천>

* 섬섬은 고양이다/전미화 글그림/창비/2021.8.9

* 흰 고양이와 수도사/조 앨런 보가트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한정원 옮김/비룡소/2023.12.27

* 콰앙!/조원희 글그림/시공주니어/2018.5.5

* 시큰둥이 고양이/소피 블랙올 글그림/김서정 옮김/주니어RHK/2022.1.30

* 그림자의 섬/다비드 칼리 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이현경 옮김/황보연 감수/웅진주니어/2021.5.25


이전 04화 무탄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