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국방부의 만고불변 진리다. 그 험악한 기세로 모스크바를 점령한 나폴레옹도 배식에 실패하여 혹독한 대가를 치렀고, 초한 전쟁 패왕별희의 영웅 항우가 무너진 것은 사면초가 노래가 아니라 사면 밥, 굶주림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삼신마을에서 제다(製茶)를 끝마친 우리는 노란 분말을 잔뜩 뒤집어 써 초고속 먼지 제거 스프레이로 샤워를 한 후 정확한 배식 오후 6:00 맞추기 위해 쌍계사 석문식당으로 간다. 이미 제다도 성공적으로 마쳤겠다, 여유로움이 가득하여 쌍계사 경내를 둘러보고 국사암으로 향한다.
저 아득한 신라 시대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님이 불일폭포로 은둔하면서 여기가 바로 ‘별유천지 비인간’의 세상을 선포하니 나름으로 조선 땅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천하의 고수는 이곳으로 몰려들어 시 한 수를 읊지 않은 적이 없으며, 천하의 내로라하는 도인조차 이곳에서 토굴을 짓고 수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 허름한 스님이 국사암 삼거리에서 일용할 양식을 잔뜩 짊어진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쉬는 사이에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는 우리는 향하여 첫 질문을 던진다.
“서울서 제다하러 삼신마을로 왔어요” 자랑스럽게 ‘서울’을 강조하고 은근히 ‘제다’에 방점을 두지만, 비밀 아지트 토굴에서 수행하는 그 스님의 안목에는 그냥 햇병아리들 봄 소풍쯤 생각했을 것이다.
자고로 모든 선사의 첫 질문은 “어디서 왔는가?”로 시작되면, 여기에 낚이면 도인이 되고 낚이지 않으면 속인이 되는 것이 성속(聖俗)의 경계이거늘, 우리는 여지없이 낚이지 않아 속절없이 그 스님을 따라가 “옜다. 이것도 인연인데 선물이나 받아라.” 하는 심정으로 만공선사 법훈 <무문관(無門關)>과 <보왕삼매론>이 적힌 다포를 일면식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씩을 건네주면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한다.
내가 서울로 올라와 그 스님이 건네준 <무문관>을 들어보니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하나 있었다.
“물소가 창살 있는 창문을 지나가는 데 머리, 뿔, 네 다리는 모두 빠져나가는 데 오직 꼬리만 걸렸다. 왜, 어째서 그런가?”
석문식당에서 산채 나물 된장에다 황진이 대표님이 갖고 온 오가피 새순을 삶아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곡주 한잔으로 하루 피로를 달래니 여기저기서 “오호라, 앉은 자리가 바로 극락이 아니면 또 무엇인고” 한다.
처음 뵈었지만 예사롭지 않은 허재택 원장님께서 저녁값을 우리 대신 내니,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내게도 이익이 되지만, 남에게 베푸는 것은 나에게 고리(高利) 저금"인 줄 내 이제야 알겠다.
석문식당을 빠져나와 칠불사 아자방으로 향하면서 “내 몸은 비록 석문(石門)을 빠져나왔지만, 내 그림자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내 어찌 알겠노?
칠불사 아자방(亞字房), 천하의 도인들이라면 한 번쯤 묵고 싶어 하는 곳. 왜냐고? 가야 김수로왕 일곱 아들이 동시에 성불했다는 전설뿐만 아니라 영험하기로 이미 소문난 곳이라 이번 총선에서 천 길 낭떠러지에 선 것처럼 가장 절박했을 두 남자, ‘이준석’과 ‘천하람’이 이곳 아자방에서 묵언수행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며 그 공로에 감응하여 당선되었다면 이 또한 겸손이 지나치다.
아자방 한 곁에 만들어진 다실에서 주지 도응(道應) 스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 회장님이 다방을 주관하니 오늘 제다(製茶) 체험뿐만 아니라 시골 할배 병원 방문기, 가정 교육, 악성 민원 퇴치법, 의료 대란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이 하늘의 별처럼 쏟아진다.
어디 세상 살면서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있었던가? 그런 것처럼 도(道)의 무게 또한 이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있었던가? 없었다.
주지 스님이 도착하자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우리 일행 중 셋이 국방부에서 근무했다고 하니 전 기조실장을 아느냐고 묻는다. 오호라, “세상의 그물은 성긴듯하다”고 그렇게 입으로 앵무새처럼 외웠건만 이렇게 촘촘할 줄이야? 바로 주지 스님의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니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온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내 칠불사는 28살 때부터 드나들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회장님의 인연으로 아자방에서 자게 되고, 그 인연으로 주지 스님을 처음 뵙고, 주지 스님을 통해 기조실장님을 알게 되니, 수면 아래에서는 주지 스님과 기조실장님이 아주 오래전부터 연결되었고, 주지 스님과 회장님 또한 매우 오래전부터 연결되었던 것이 오늘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와 보니, 날이면 날마다 바라본 그가 성긴 그물 아래 이렇게 촘촘히 엮어진 인연이 있을 줄 내 어찌 알았겠는가?
인연법이 이렇게 무섭고 섬뜩하다.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어마어마한 인연이 수면 위로 올라와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깜놀인데 하물며 날마다 같이 밥을 먹고 날마다 생업을 같이하는 인연이란 또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