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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맛 술

아버지, 아부지........

by Another time 자축인묘

옥수수 맛 술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란 말을 되새길 때면 가슴이 아린다. 아버님, 나의 아버지

며칠 전이 아버님 첫 기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첫 기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다. 현재 일 하고 있는 곳이 국내가 아닌 바다 건너 먼 이국땅인 베트남인 관계로 현재와 같은 코로나 상황에 찾아뵐 수가 없었다. 작년 아버님 소천 하신 후 삼우제도 지내지 못하고 베트남 상황이 바쁘다는 이유로 먼 타국으로 온 나를 항상 후회하며 지내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은 정말 상상을 못 했다.

아버님은 40년이 넘는 시간을 홀로 지내셨다. 40대의 나이에 당신 홀로 누나, 형, 나 이렇게 삼 남매를 키우셨다. 이제 그때의 아버지 나이보다 더 나이를 먹은 나로서는 아버지란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3년 전 나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요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아직도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향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고향인 강원도에서 형님과 형수님은 아버님을 모시고 멋진 새 집에서 지내고 계셨고 나는 이전 본가에서 머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가장이었으므로 형님 일을 도와가며 집 짓는 일을 따라다녔고 아버님이 계시는 1년 동안은 저녁에는 아버님과 식사를 같이하며 그동안 뵙지 못했던 아버지를 뵙는 시간이어서 내게는 나름의 행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을 때부터 험한 일을 하셨던 아버님은 내가 있는 2년 동안 1년을 넘기지 못하시고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셨다. 갑자기 거동을 할 수가 없게 되어. 가족들의 회의로 그동안 아버님을 30년 가까이 모신 형수님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요양원으로 아버님을 모시기로 결정이 되었다.

나는 새벽이면 아버님이 계시는 시내의 요양원으로 거의 매일 같이 방문을 하고 아버님 얼굴을 뵙고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또한 아버님이 계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아버님께 고마운 마음으로 찾아뵙곤 했었다. 십여 분의 짧은 문안인사와 간단한 운동을 같이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아버지께 물어보았다.


“아부지 아부지는 제일 맛있게 먹었던 게 뭐여?”하고 한 번은 물어보았다.

아버님은 곰곰이 생각하시며 “예전에 높은 보꼴에서 할머니가 해 줬던 옥수수 맛술” 하시며 그때를 생각하시는 듯 잠시 천장을 쳐다보셨다.

“그때는 그게 참 맛있었지.... 옥시기를 갈아 누룩하고 썩어 조청을 넣으면 기름이 동동 뜨는 게 그게 그렇게 맛있었지.” 하시며 눈가엔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할머니도 계셨고 나에게는 어머니인 아버지의 아내도 있었고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 한 때를 생각하시려니 추억의 눈물이 아닌 가 나는 짐작을 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언젠간 아버지의 추억을 직접 꺼내 보기로

그래서 그다음 주부터는 형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있는 한국 전통주 연구소에서 전통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1년 가까이 가양주반, 연구반, 특기주반을 수료하고 전문가 반을 남겨 두고 있을 때 이전 회사로부터 2년 정도 쉬었으면 복귀하라는 통보를 받고 현재 일하고 있는 베트남 생산기지로 오게 되었다. 나도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므로 회사의 부름을 더 이상은 뿌리 칠 수가 없어 현실의 아버지로 돌아가야만 되었다. 그렇게 일하던 중 2020년 1월 아버지 임종도 못 보고 아버님을 보내 드려야만 했다.


지금까지도 아버님 당신께서 그렇게 그리워하고 그리워한 추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풀려 꽃 피는 봄이 오면 아버님께서 간절히 바라셨던 추억 속의 옥수수 맛술을 꼭 아버님께 드리겠습니다. 아버님 살아생전 드리지 못해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아버님 새집에 집들이 술 인양 정성껏 빚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부지 꼭 그래할게요...”


“아부지!!!” 40대의 늦은 겨울밤

꼬무랭이 마냥 자고 있는 자식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지 이제야 아부지가 얼마나 외롭고 적적하셨을지 그때의 아버지 보다 몇 년은 더 나이가 든 지금의 나는 아부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저려옵니다. 행복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 건강하고 같이 사는 식구들 가족들이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임을...


나는 인생에 윤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부지!! 부디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님, 좋은 아내, 좋은 자식들 만나 가족끼리 잘 지내시기를 현생의 아들로서 빌고 또 빕니다. 더 이상 이전의 외로움은 잊으시고 꼭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래봅니다. 아부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맛있는 옥수수 맛 술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빠!!!!.... 좀 만 기다려~~~~~~막내가 술 한 잔 따라 드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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