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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18. 2024

너의 향이 나를 미치게 만드는구나

[26분 13초] 15화

[현재, 2021년]


그가 에블린에게로 뛰어가고 있다. 그의 발이 움직일 때마다 선명한 핏빛 그림자가 일렁고 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에마가 에블린의 어깨를 두드렸다. 에블린의 눈은 허공의 먼지 뒤편 여백의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죽어버린  눈동자 같았다.

"선생님...?"

에마가 어깨를 여러 번 두들기고 나서야 에블린의 눈동자가 살아났다. 에블린은 흠칫 놀라며 고개들었다.

"어-음, 아무것도 아니란다. 잠시 옛날 생각이 나서."

에블린은 황급히 미소 지었다.

"시간이 된다니 다행이구나. 학교는 보는 눈이 많으니... 장소는 에마 집이 어떻겠니? 다른 학생들이 보면 편애한다는 둥, 학생을 차별한다는 둥,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에블린은 책상 위로 팔을 기대 머리를 었다.

"그럼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덜덜덜'

과거 회상의 여파 때문일까, 새로운 사랑기대 때문일까, 연필 쥔 손으로 미새한 경련이 왔다. 동시에 빨라지는 심장에 모든 세포가 호들갑 떨기 시작했다. 에블린은 다리를 꼬아 아래 허벅지를 강하게 눌렀다. 

종이와 연필을 꺼내며 에마에게 물었다.

"그래, 시간은 이때가 어떠니?"

하얀 종이에 '오후 6시'를 적었다. 말로 해도 되는  굳이 종이에 적은 이유는 그저 자신의 급한 행동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선생님, 혹시 7시 괜찮을까요? 수학 학원이 6시 30분에 끝나서요."

에블린은 잠시 생각하는 척 시간을 끌고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꾸나. 집은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 여기에 적혀 있어서 말이야."

에블린 왼손으로 노랑색 파일을 두 번 두드렸다. 매끄럽게 깎인 에블린의 손톱이 파일 닿아 딱딱-이는 소리가 났다. 


"오늘부터 시간 괜찮니?"

"그럼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에마는 고개를 꾸벅고 나이 든 문을 옆으로 밀었다. 밀렸던 문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자 에블린 용히 중얼거렸다.

"앞으로 딱 20번"

에블린은 자신의 손가락이 두 바퀴 접히기 전에 에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딱 20번 안에 에마를 죽이겠다고 말이다. 




에블린의 오른쪽 엄지 한번 접혔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헤매진 않으셨나요?"

에마의 상냥한 목소리가 적당히 쇠퇴된 공기를 타고 에블린에게 전달되었다. 에블린은 숨을 헐떡이는 척 에마의 방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셨다. 집에선 강한 스위라의 향이 났다. 왜 사람은 아름다운 향을 맡아도 다시 내뱉어야 하는가-. 에블린은 아쉬움을 담아 숨을 토해냈다. 에블린의 콧김으로 나온 숨은 쇠퇴하다 못해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래, 부모님은 언제 오시니?"

에블린은 검은색 서류가방을 매트 위에 올려 두었다. 부드러운 매트덕에 조금 더 밀린 가방은 매트의 결을 꺾어 경로를 나타냈다.

에마는 거실 벽에 달려있는 디지털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2시간 후에 오실 거예요."

"그렇구나, 그전까지 열심히 해보자."

"부모님 오시면 부담스러우신 거죠?"

"아무래도 그렇잖니. 웬만하면 비밀로 하고 싶어."

"네, 알겠어요."




 그들이 펼쳤던 교재가 다시 덮어졌을 때, 에블린의 건조한 입술이 두 갈래로 찢어졌다. 패인 살로 흐르지 않는 검불근 피가 맺혔다. 에블린은 혀로 피를 핥으며 음미했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지만 역시 맛없었다.  


"고생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구나."

에블린은 볼펜 필통에 구겨 넣었다. 에블린의 눈길은 볼펜삼키고 있는 진 회색 필통이었지만, 전신의 신경은 오직 에마 향하고 있었다. 에블린의 겨드랑이 사이 축축이 젖은 무거운 옷마저도 에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요즘 날씨가 정말 추워졌더구나. 주말에는 집에 있어야겠어."

에블린 눈알을 천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굴렸다.

"아- 에마는 주말에 보통 뭐 하니?"

"음-"

에블린은 여전히 에마에게 집중 한 채 서류가방을 정리했다. 순간 어디선가 묻어온 가시 한 톨이 에블린의 검지 손톱과 살점 사이 파고들었다. 꽤 깊이 들어갔는 데도 에블린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고통을 담당하는 세포마저 에마에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서 쉬어요. 친구를 만날 때도 있고요."

"그렇구나. 주말인데 데이트는 안 하니?"

에블린의 눈길은 여전히 검은색 서류가방이었다.

"하하, 남자친구가 있어야 하죠."

에블린의 입가가 부르르 떨리더니 위로 치켜졌다. 들키지 않으려 하품하는 척 입을 가렸다.

"하암- 그래? 인기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구나."

에블린은 오른손으 가방을, 왼손으 외투를 들고 자리에 일어났다.

"선생님은 이만 가보마. 마중은 괜찮단다."

"네, 조심히 가세요."

"참, 손이 없어서 그런데 문 좀 열어주겠니?"

에블린이 외투와 가방을 한 손에 들지 않은 이유는 문을 열어주는 에마의 향을 맡기 위함이었다.


"그럼요!"

에마가 에블린 옆으로 문고리를 돌렸을 때, 바람 한 점이 에마의 머리칼 사이를 스쳤을 때, 그 바람이 에블린의 코 끝자락에 닿았을 때, 에블린은 심장이 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너의 향이 나를 미치게 만드는구나'

석류향에 살짝 섞인 장미향.

에마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에블린의 동공이 최대 면적까지 확장되었다. 꼭 마약에 찌든 눈동자 같았다. 에블린은 들이마신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사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향을 죽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블린은 조용히 경의를 표했다.

"그래, 고맙구나. 내일 수업 때 보자."

에마는 연갈색 머리칼을 귀 뒤편으로 넘기며 웃었다.

"네, 오늘도 감사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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