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 Aug 25. 2024

더러워-더러워-더러워-

[26분 13초] 17화

[현재, 2021년]


"어때요, 입맛에 맞으세요?"

에마는 왼손 엄지 살을 뜯으며 에블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무 맛있구나. 너도 이제 먹으렴. 보고만 있으니 체할 것 같구나."

에블린이 소리 내어 두 번 웃고 앞에 의자를 가리켰다. 에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동공이 정면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같이 먹으면 제가 체하겠는데요."

에마의 작은 입김. 사무치도록 매혹적이었다.

"그러 말고 같이 먹자꾸나."

에블린이 한번 더 웃어 보이자 에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치마를 풀었다.

"잘 먹겠습니다."

에마는 두 손을 모으고 13초 동안 기도했다. 눈을 감고 소리 없이 기도하는 에마에블린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도 함께 기도했다.


'나만의 여인들아, 곧 이 아이도 너희들에게 보낼게. 거기서 함께 따스한 시간 보내길 바라-'


에블린에게는 환상이 있었다. 어쩌면 진실인 그것은 자신만의 성전이 있다는 것이다. 에블린의 사상은 이러했다.

[지금까지 들키지 않고 여자들을 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는 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성전을 물려준다. 성전의 주인이 된 자신은 신에게 배운 사랑을 이어 성전을 거룩한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한 명, 두 명,… 자신의 것이 된 여인들이 성전에 올라가 주인을 찬송하는 노래를 만든다. 사람이 많을수록 화음이 쌓이기에, 그만큼 자신을 더 찬송할 수 있기에, 그것을 그녀들도 원하기에 자신은 더 많은 여들을 죽여야 한다. 마침내 자신이 생을 다해 그녀들에게 돌아갈 때 그녀들은 기뻐 눈물 흘린다.]


에블린은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자신의 사상이 그저 환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마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이는 진리가 되었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러니 성전을 완성해라-, 하는 신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에마가 눈을 떴다. 에블린은 눈을 돌려 시금치 조림을 바라보았다. '혹여 미아가 내 시선을 눈치챈 건 아닐까'하고 약간의 스릴을 즐기면서 말이다.

에마는 그를 보며 웃었다.

"어머니가 해 주신 거예요. 드셔보세요!"

시금치 조림을 좋아하진 않지만 에마의 어미가 한 음식이라면 마침 궁금했던 차였다.

"음, 맛있구나."

시금치 조림은 중간보다 조금 더 짠맛이었다. 밥과 함께 씹으면 나트륨 맛을 중화할 수 있겠지만 어미의 손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가만 두었다. 어미가 시금치를 물로 씻는 모습, 먹기 좋은 크기로 시금치를 토막 내다 손가락을 벤 모습, 마침내 음식을 완성했을 때 시금치 한가닥을 맨 손으로 들어 올려 집어 삼키는 모습. 에블린은 음식을 질겅대며 어미의 모습을 음미했다.


"맛있구나. 요리를 잘하는 건 유전이었니?"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세요. 저는 옆에서 구경하는 정도지만요."

에블린은 고개를 끄덕이 말을 이었다. 시선은 여전히 자신의 밥그릇이었다.

"그런데 에마, 나를 좋아한다고?"

"켁-켁-"

순간 에마의 기도에 고추기름이 들어갔다. 에블린은 조용히 자신의 물 잔을 에마에게 밀며 기침이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에마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손으로 쓸어 맛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죄송해요. 사례가 려서요."

에마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1초 후 다시 내쉬었다.

"네, 저 선생님 좋아해요."


조금은 당돌한 에마의 태도. 마냥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에마에게 묘한 매력 느껴졌다.

"언제부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단지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에마, 우리가 사귈 수 없다는 건 알지?"

"왜요? 나이차이 때문인가요?"

에마의 눈썹이 위로 치켜졌다.

"좀 전에 무슨 기도한 줄 아세요? 선생님이 저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에마, 사실 나도 너를 좋아한단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돼."

"선생님. 그럼 뭐가 문제죠? 서로 마음만 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

"그렇지만 선생님..."


에마가 눈물을 흘렸다. 투명한 이슬은 하얀색 테이블 위로 떨어져 분유처럼 둔탁한 색으로 변했다. 

"에마, 만약 사귀게 된다 해도 지금처럼 집에서만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니?"

에블린은 걷잡을 수 없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오줌을 참는 것처럼 온몸 피부 간질거렸다. 에마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 숙여 흐느끼고 있었다.  

"네, 저는 상관없어요. 그저 선생님과 사귀기만 하면 돼요."

에마의 목소리가 강하게 흔들대긴 했지만 에블린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에마의 말에 자막이라도 단 것처럼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다음에도-"

그때 에마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음이요? 그럼 저랑 사귄다는 거죠?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 거죠?"


에블린은 웃으며 에마의 곱실거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래."

에블린은 짧은 웃음소리를 두어 번 내며 에마를 바라보았다. 동공 속에 에마는 입술을 다문 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선생님, 다음에는 선생님 집으로 가면 안 돼요? 저 선생님 집에서 데이트하고 싶어요."

에블린은 자신의 시야에서 에마를 없앴다. 에블린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스위라 외 자신의 공간에 들어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위라조차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다. 더구나 에마는 본인의 집에서 죽어줘야 했다. 에마의 부모가 자식의 시체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구나. 그리고 에마, 아무리 사귀는 사이여도 남자 집에 함부로 들어가 안 돼. 위험한 행동이란다."

"뭐가 문제죠?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게 위험하다는 건가요?"

"그럼. 아무리 사귀는 사이여도 완벽히 믿어서는 안 돼. 요즘 범죄도 많잖니."

에블린은 내뱉은 자신의 말에 순간 침을 토해 가며 웃을 뻔했다.

"선생님이 저를 죽이기라고 한다는 건가요? 그리고 지금도 단둘이 있잖아요. 제 집은 되고 왜 선생님 집은 안된다는 거죠?"


에마는 또다시 울상을 지었다.

"남자친구 생기면 꼭 남자친구 집에서 데이트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제 소원이에요, 선생님."

에블린은 눈을 한번 추켜올렸다.

'쯧, 성가시군. 그냥 확 죽여버릴까-. 아니야, 그래도 먼저 와줬으니까.'

내리는 눈에 에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다음 주 수요일, 괜찮니?"

에마는 덥석 에블린의 손을 잡았다.

"럼요! 고마워요, 선생님!"

빨갛게 충됐던 에마의 눈이 어느샌가 하얗게 돌아와 있었다. 순식간에, 울었던 티도 안 나게 말이다.


집에 홀로 남은 에마, 자신의 손을 깨끗이 씻고 있다. 에마의 손가락 사이로 자해한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더러워'

에마 불 꺼진 화장실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