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이 소리 내어 두 번 웃고 앞에 의자를 가리켰다. 에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동공이 정면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같이 먹으면 제가 체하겠는데요."
에마의 작은 입김. 사무치도록 매혹적이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먹자꾸나."
에블린이 한번 더 웃어 보이자 에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치마를 풀었다.
"잘 먹겠습니다."
에마는 두 손을 모으고 13초 동안 기도했다. 눈을 감고 소리 없이 기도하는 에마를 에블린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도 함께 기도했다.
'나만의 여인들아, 곧 이 아이도 너희들에게 보낼게. 거기서 함께 따스한 시간 보내길 바라-'
에블린에게는 환상이 있었다. 어쩌면 진실인 그것은 자신만의 성전이 있다는 것이었다. 에블린의 사상은 이러했다.
[지금까지 들키지 않고 여자들을 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는 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성전을 물려준다. 성전의 주인이 된 자신은 신에게 배운 사랑을 이어 성전을 거룩한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한 명, 두 명,… 자신의 것이 된 여인들이 성전에 올라가 주인을 찬송하는 노래를 만든다. 사람이 많을수록 화음이 쌓이기에, 그만큼 자신을 더 찬송할 수 있기에, 그것을 그녀들도 원하기에 자신은 더 많은 여자들을 죽여야 한다. 마침내 자신이 생을 다해 그녀들에게 돌아갈 때 그녀들은 기뻐 눈물 흘린다.]
에블린은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자신의 사상이 그저 환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마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이는 진리가 되었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러니 성전을 완성해라-, 하는 신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에마가 눈을 떴다. 에블린은 눈을 돌려 시금치 조림을 바라보았다. '혹여 미아가 내 시선을 눈치챈 건 아닐까'하고 약간의 스릴을 즐기면서 말이다.
에마는 그를 보며 웃었다.
"어머니가 해 주신 거예요. 드셔보세요!"
시금치 조림을 좋아하진 않지만 에마의 어미가 한 음식이라면 마침 궁금했던 차였다.
"음, 맛있구나."
시금치 조림은 중간보다 조금 더 짠맛이었다. 밥과 함께 씹으면 나트륨 맛을 중화할 수 있겠지만 어미의 손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가만 두었다. 어미가 시금치를 물로 씻기는 모습, 먹기 좋은 크기로 시금치를 토막 내다 손가락을 벤 모습, 마침내 음식을 완성했을 때 시금치 한가닥을 맨 손으로 들어 올려 집어 삼키는 모습. 에블린은 음식을 질겅대며 어미의 모습을 음미했다.
"맛있구나. 요리를 잘하는 건 유전이었니?"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세요. 저는 옆에서 구경하는 정도지만요."
에블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시선은 여전히 자신의 밥그릇이었다.
"그런데 에마, 나를 좋아한다고?"
"켁-켁-"
순간 에마의 기도에 고추기름이 들어갔다. 에블린은 조용히 자신의 물 잔을 에마에게 밀며 기침이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에마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손으로 쓸어 맛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죄송해요. 사례가 들려서요."
에마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1초 후 다시 내쉬었다.
"네, 저 선생님 좋아해요."
조금은 당돌한 에마의 태도. 마냥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에마에게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언제부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단지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에마, 우리가 사귈 수 없다는 건 알지?"
"왜요? 나이차이 때문인가요?"
에마의 눈썹이 위로 치켜졌다.
"좀 전에무슨 기도한 줄 아세요? 선생님이 저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에마, 사실 나도 너를 좋아한단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돼."
"선생님. 그럼 뭐가 문제죠? 서로 마음만 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
"그렇지만 선생님..."
에마가 눈물을 흘렸다. 투명한 이슬은 하얀색 테이블 위로 떨어져 분유처럼 둔탁한 색으로 변했다.
"에마, 만약 사귀게 된다 해도 지금처럼 집에서만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니?"
에블린은 걷잡을 수 없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오줌을 참는 것처럼 온몸의 피부가 간질거렸다. 에마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 숙여 흐느끼고 있었다.
"네, 저는 상관없어요. 그저 선생님과 사귀기만 하면 돼요."
에마의 목소리가 강하게 흔들대긴 했지만 에블린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에마의 말에 자막이라도 단 것처럼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다음에도-"
그때 에마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음이요? 그럼 저랑 사귄다는 거죠?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 거죠?"
에블린은 웃으며 에마의 곱실거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래."
에블린은 짧은 웃음소리를 두어 번 내며 에마를 바라보았다. 동공 속에 에마는 입술을 다문 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선생님, 다음에는 선생님 집으로 가면 안 돼요? 저 선생님 집에서 데이트하고 싶어요."
에블린은 자신의 시야에서 에마를 없앴다. 에블린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스위라 외에 자신의 공간에 들어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위라조차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다. 더구나 에마는 본인의 집에서 죽어줘야 했다. 에마의 부모가 자식의 시체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구나. 그리고 에마, 아무리 사귀는 사이여도 남자 집에 함부로 들어가선 안 돼. 위험한 행동이란다."
"뭐가 문제죠?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게 위험하다는 건가요?"
"그럼. 아무리 사귀는 사이여도 완벽히 믿어서는 안 돼. 요즘 범죄도 많잖니."
에블린은 내뱉은 자신의 말에 순간 침을 토해 가며 웃을 뻔했다.
"선생님이 저를 죽이기라고 한다는 건가요? 그리고 지금도 단둘이 있잖아요. 제 집은 되고 왜 선생님 집은 안된다는 거죠?"
에마는 또다시 울상을 지었다.
"남자친구 생기면 꼭 남자친구 집에서 데이트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제 소원이에요, 선생님."
에블린은 눈을 한번 추켜올렸다.
'쯧, 성가시군. 그냥 확 죽여버릴까-. 아니야, 그래도 먼저 와줬으니까.'
내리는 눈에 에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다음 주 수요일, 괜찮니?"
에마는 덥석 에블린의 손을 잡았다.
"그럼요! 고마워요, 선생님!"
빨갛게 충혈됐던 에마의 눈이 어느샌가 하얗게 돌아와 있었다. 순식간에, 울었던 티도 안 나게 말이다.
집에 홀로 남은 에마, 자신의 손을 깨끗이 씻고 있다. 에마의 손가락 사이로 자해한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