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021년]
에블린이 에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일주일, 에마의 소원이 이뤄지기까지 일주일 남았다.
에마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탈칵'
"삼촌 나야, 일주일 후- 준비 됐지?"
[일주일 후, 수요일]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남자친구 집에 오는데 어떻게 빈 손으로 와요."
에마는 오렌지 음료 상자를 에블린에게 건넸다. 투명색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오렌지 주스가 날카로운 유리에 치여 휘청거렸다.
"실례합니다."
에마는 싱긋 웃으며 에블린의 집으로 들어섰다. 에블린은 건네받은 음료를 부엌 식탁에 내려놓으며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거기 소파에 앉아 있으렴. 오늘은 선생님이 맛있는 음식을 해주마."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드려요."
에블린은 빨간색 앞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참,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손 씻으려고요."
앞치마 리본을 매듭지으며 에마쪽으로 돌아섰다.
"되고 말고, 화장실은 저 쪽에 있어."
에블린은 왼손으로 부엌 식탁을 집고 오른손으로 에마의 왼편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에마는 입고리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끼익- 쿵.'
에마가 사라지고 화장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에블린은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쩜 입술도 저리 이쁠까.'
에마의 연분홍색 입술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하고 있자니 자신에게 닿고 있는 공기가 데워지는 것 같았다. 에블린은 허리에 묶여 있는 앞치마 끈을 잡아당기고 고개 저었다.
'아아- 이런, 그만 넋을 놓고 말았군.'
에블린은 곧장 몸을 틀어 냉장고에서 3시간 정도 숙성된 토막 난 돼지고기 덩어리를 꺼냈다. 근육사이로 핏기가 가득했던 고기 덩어리는 우유에 찌든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맛있겠군. 미아가 좋아하겠어.'
은냄비를 꺼내 고기 덩어리를 넣었다. 깊이가 20센티는 돼 보이는 은냄비는 아랫부분이 타 있어 녹슨 것처럼 보이지만, 제법 알맞게 고기를 삶아주는 성능 좋은 냄비였다.
"실례했습니다."
에마의 목소리가 에블린의 귓속 솜털을 간지럽혔다.
"그래, 마실 것 좀 줄게."
"네, 감사합니다."
에블린은 에마에게 따뜻한 물이 담긴 노란색 찻잔을 건넸다. 그때 온기를 담은 찻잔 옆으로 그들의 손가락이 맞닿았다. 에블린은 자칫 에마의 몸을 적실 뻔했다.
"뜨거우니 조심하렴."
에블린은 손톱으로 찻잔을 두 번 두드렸다. 에마는 건네받은 찻잔을 두 손으로 둥글게 잡았다.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금세 부엌으로 도망가버린 에블린을 보며 에마가 물었다.
"앉아 있으렴. 물만 재우고 곁으로 갈게."
에블린은 고기 덩어리가 물에 익사하는 것을 바라보며 뚜껑으로 시체를 덮었다.
"이제 40분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에블린은 마그네틱 타이머를 설정하고 에마 오른쪽에 앉았다. 푹신한 회색 소파가 에블린의 체중에 움푹 꺼져갔다.
"감사해요. 그래도 수저는 제가 둘 수 있게 해 주세요. 뭐라도 해야겠어요."
에블린은 웃으며 에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렴."
그들 사이에 공백이 흐르고, 타이머가 20을 가리키고 있을 때 에마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은 머그잔 바닥을 만지고 있었다.
"선생님도 제가 좋으세요?"
에마는 질문하는 동시에 머그잔 바닥을 더 꽉 쥐었다. 둥근 표면보다는 뜨거웠지만 피부가 익어가는 기분이 좋았다.
"선생과 제자로서 이런 말은 하면 안 되지만-"
에블린은 바닥에 팔을 짚고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옮겼다.
"에마,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한단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에블린은 에마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그때 에마의 머리칼 사이에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야한 향이 새어 나왔다. 어리면서도 성숙한 에마의 향은 에블린을 눈감게 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선생님-"
에마는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이미 저는 선생님 거예요."
에블린은 눈을 천천히 뜨고 쓸고 있던 에마의 머리칼을 힘 있게 움켜쥐었다. 에마가 느끼지 못할 약한 힘이었다.
"아니, 아직 내 것이 되지 않았단다."
에블린은 손에 힘을 풀고 머리칼을 에마의 어깨 선에 따라 내려놓았다.
"그건 그렇고 에마, 흰 장미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 있니?"
흰 장미의 꽃말은 '순결'이다.
에블린은 흰 장미를 꺾어 에마의 시체 위에 뿌리고 싶었다. 이내 그녀의 피로 빨간 장미가 되고, 화장되면서 검게 탈 흑장미를 음미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죽은 에마의 입에서 흰 장미 향이 나오길 바랐다.
'흑장미'의 꽃말은 '죽음'과 '이별'을 동시에 '당신은 영원한 나의 것'이다.
"흰 장미 맛 아이스크림인가요? 먹어 본 적 없어요."
에마는 오른쪽 볼에 공기를 넣고 고개를 기울였다.
"선생님도 저번에 처음 먹어 봤는데, 맛은 별로여도 향이 좋더구나. 밥 먹고 소화 되면 디저트로 먹자꾸나."
"맛있을 것 같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요즘 공부는 잘 돼 가니?"
"그럼요. 어제는 수학 공부를 했는데~.."
에블린은 대화하는 와중에도 흰 장미를 떠올렸다.
에마의 장기에서, 그리고 이내 목구멍에서 쏟아지게 될 흰 장미 향을 상상하니 입에 침이 고여 들었다. 에블린의 타액이 끈적하게 아래로 떨어질 뻔했지만 이미 익숙한 에블린의 혀가 상황을 감지하고 타액을 목구멍 깊이 밀어 넣었다.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