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남을 이어간지도 벌써 두 달하고도 반이 지났다. 성적이 좋아도 방과 후 수업은 이어갈 수 있지만, 에마에게 어떠한 의심도 받고 싶지 않았다.혹여3자가 개입하진 않을까, 그전에 자신이 뭔가를 놓치진 않을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산했다.게일로 인해 스위라를 죽이는데시간이 많이 들긴 했지만, 눈알이 여러 번 치켜지긴 했지만, 그 덕에 더 은밀히 죽이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에블린은 조용히 웅얼거렸다.
"자연스럽게 파고들 다른 전략이 필요해."
고개숙인 두 남녀의 눈빛이 책상과 90도가 되었을 때 디지털시계는 'PM 0745'를 띠우고 있었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이만 가보마."
에블린은 행거에 걸린 외투와갈색 목도리를 들었다.
에블린의 몸은 하늘색 현관문을 향한 채로, 에마의 몸은 그보다 2미터 떨어진 뒤편에서 있었다.
"성적이 올라 기분 좋긴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게 슬퍼요."
에마의 젖살 가득한 핑크빛 입술이 일직선과 동그라미 모양을 반복하며 소리 냈다.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그동안 너무 감사드렸어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서요."
에블린은 몸을 돌려 에마를 쳐다봤다. 에마의 볼이 빨개져 있었다. 에마는 급히 고개를 숙여 남자에게 짓밟히고 있는신발장 타일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김치조림은 꽤 잘하거든요!"
"풋-"
귀여운 에마의 외침에 에블린 그만 웃어버렸다. 웃음소리를 듣지 못한 에마는 계속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마지막 수업 때 말씀드리려 했는데..."
에마는 고개를 저어대며 말을 이었다.
"- 저 선생님 좋아해요! 밥 먹고 나서 마저 얘기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가지 마요."
'파르르'
순간 에블린의 몸이떨려왔다. 두툼한 이불속에 잠든 미라가 된 것 같았다. 따뜻했지만 무감각했다. 살아있지만 죽어버린 것 같았다.
'뭐.. 뭐지?'
그때 이불 위로 떨어지는 묵직한 무언가. 쇠망치로 아프지 않게 얻어맞는 듯한 느낌.에블린은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렸다.
에블린의 몸이 지대가 되고 남은 모든 공기가 하늘이 된 듯 중력의 힘을 자신만이 감당하는 듯했다. 오줌을 지릴 뻔한 에블린은 이내 눈치챘다. 이 모든 압력은 내가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뿜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함성소리다'
자신의 구멍, 신경, 세포가 흥분해 절어 손을 뻗고 강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아 내 모든 것들이 눈물겨워 우는 중이구나. 역시 신은 있었어. 역시 신은 나를 사랑했던 거야.'
에블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기쁨의 절정을 맛본, 마약에 찌든 인간 같았다. 부자연스럽고 기괴했다.
에블린은 들키지 않으려 손으로 표정을 가렸다.
"조금 당황스럽구나. 그런데 에마, 곧 부모님 오실 시간 아니니?"
"오늘은 늦게 오세요."
에마는 디지털시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10시에 오시거든요."
'앞으로 2시간 9분.마음 같아선 당장 미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일단 진정하자.'
"아 그러니? 그래 밥 먹고 가마."
에마는 에블린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금방이면 돼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그래, 고맙다."
에마가 부엌에 들어가 하얀색 레이스 앞치마를 둘렀다. 레이스는 꼭 잔잔한 바닷가에서 일렁이는 파도 결 같았다. 에블린은 체중을 소파에 싫고 책상 아래로 다리를 쭉 뻗었다. 엄지발가락까지 일자로 곧게 펴진 하체가 피를 전신에 퍼지게 했다.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려 에마를 바라보았다.
에마는 김치를 썰고 있었다. 손에 쥔 칼은 날이 무척 좋아 보였다. 에블린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생각했다.
'칼이 제법 날카롭군, 이번엔 목줄 말고 칼로 죽여볼까-.칼을 얼만큼밀어 넣어야 예쁘게 죽일 수 있을까-'
칼날에 베인 살점, 아래로 흘러갈 핏방울을 상상하려 눈을 감았다. 에마가 입은 하얀색 원피스가 붉은 원피스로 곱게 물들여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좋.. 좋은데..'
에블린은 묘한 흥분감을 느끼며다리를 떨었다.
그간 모두 목매 죽였기에, 목매는 걸로는 완전한 피를 보지 못했기에 에블린은 늘 그녀들의 피를 상상으로만 볼 수 했다. 나무 의자가 피에 젖는 상상, 침대가 피로 젖는 상상, 이 여자의 피는 어떤 색일까, 저 여자의 피는 어떤 맛일까, 늘 상상하기만 했다.
'진짜 피를 보고 싶어. 상상 말고, 진짜.'
이토록 원하는데도 목매는 걸 고집했던 이유는 단 하나, 자살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더 많은 여자를 죽이기 위해서 벌써 옥살이를 할 순 없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누군가의 피로 온전히 샤워하고 싶어. 언제까지 참아야 해, 확 질러 버려?'
바지 끝자락에 달려 있던 자크가 바닥에 끌려 달달거렸다. 한참 동안 눈 감고 있는 에블린,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칼은 아무래도 너무 위험해. 누가 봐도 타살이잖아.'
에블린은 떨어대던 다리를 한대 치며에마에게 말했다.
"에마, 내가 도울 일은 없니?"
에마의 하얀색 레이스가 살랑거렸다. 그 위로 에마의 얼굴에서 수줍은 미소가 피어났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여자다.
"앉아 계세요. 거의 다 됐어요."
에블린은 자리에 일어서 집을 둘러보았다. 거실 곳곳에 크기가 재각각인 액자가 있었다. 사각형 액자에는 7살짜리 에마가 묻혀있었다. 아비로 보이는 남자에게 안겨 방실웃고 있었다.
'미아는 어렸을 때부터 예뻤구나. 진작에 너를 알아봤다면 좋았을 텐데-'
에블린은 눈을 감고 자신이 에마에게 빠져든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분명- 향이었어. 미아가 나를 스쳐 지나갔을 때 났던 향...'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피식 웃었다.
'스위라가 생각나는 향이었지.'
에블린은 액자를 다시 자리에 내려놓고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집안 가득 피어나는 에마의 향은 에블린을 평화롭게 했다. 폐가 향에 삭혀 질식한다 해도 마땅히 받아들이리라-, 하며 자신에게들어오는 공기를 계속해서 죽였다. 에블린은 발로 마룻바닥을 쓸었다.어디에 에마의 향이 가장 짖게 배어있을까. 에블린은 찾고 싶었다. 침대? 욕실? 아니면 더 은밀한 곳? 에블린은 뒷짐 지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쿵- 쿵- 쿵-'
에블린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쿵쿵쿵쿵'
그때 에블린이 멈춰 섰다.
'여기구나'
장롱 문틈으로 핑크색 리본이 나풀대고 있었다. 에블린이 장롱 문을 활짝 열었다.
'아아, 찾았다-'
'살갗을 온전히 덮고 있었기에 미아의 향을 모조리 흡수한 걸까- 미아 몇 명을 짜내야 이 향을 지구에 덮을 수 있을까- 아아 나만 맡으려면 그러면 안 되겠다- 미아를 죽여도 살점은남겨둬야겠다-.'
에블린은 짙은 에마의 향에 도취된 채 눈물을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목적 없는 방향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 에마가 에블린 쪽으로 몸을 틀었다. 에블린은 에마가 돌아보려는 찰나 가까스로 장롱 문을 닫았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여기 앉으세요."
"고생 많았구나."
테이블에는 6가지 밑반찬과 김치찜이 올려져 있었다. 테이블 특유의 번들거리는 하얀 빛깔은 김치찜의 빨간 양념을 더 독보이게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걸?"
갓 지어진 밥 냄새가에블린의 위를 확장시켰다. 사실상 밥 보다도 에마의 체취에 더 심취하고 싶었지만 연신 꼬르륵대는 뱃가죽을 막을 순 없었다. 살인 또한 힘이 있어야 하는 법.
"에마, 솜씨가 좋구나. 고맙게 먹으마."
에블린이 수저를 들어 밥을 떴다.
에블린은 앉아 있는 채로, 에마는 테이블 옆에 서 있는 채로 서로 다른 것을 쳐다보고 있다. 에블린은 그녀가 차린 밥상을, 그녀는 자신이 차린 밥을 먹는 에블린을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