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 Aug 17. 2024

그녀는 6시간 후에 살해된다

[26분 13초] 14화

[2010년]


하얀 침대, 하얀 이불, 하얀 베개 위에 에블린과 스위라가 있다. 


"당신은 왜 나와 결혼한 거야?"

에블린은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왜긴, 사랑하니까,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따스함이 퍼지는  느꼈다. 수분 없이 말라비틀어진 입술이지만 그 마저도 자신을 간지럽히는 깃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보내는 첫날밤이네. 선생과 제자로 만나 이렇게 결혼까지 다니."

그녀는 에블린이 준비한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치마 아랫단 쪽에 오밀조밀한 레이스가 달려있는 실크원피스였다. 에블린은 녀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머릿결이 너무 부드러운 탓이었을 까, 에블린은 그녀의 머리채를 강하게 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움켜쥔 머리채 그대로 질긴 밧줄에 집어넣고 싶는 생각을 했다. 에블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피어나는 욕구를 신히 억제했다.

'아직 아니야- 앞으로 6시간 후에'


에블린은 6시간 후에 그녀를 죽인다.

그녀는 6시간 후에 살해다.


"우웁"

집안 곳곳에 그녀의 피가 흩날리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에블린은 참을 수 없는 기쁨에 그만 헛구역질 했다. 다행히 마른 토라 그녀의 피로 정화될 침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녀가 에블린의 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 어디 안 좋아?"

"괜찮아. 잠시 위액이 역류했나 봐."

에블린 그녀에게 안겼다. 따듯하고 포근한 품. 그리고 그것과는 대비되는 강렬한 향기. 이대로 죽어도 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죽어서는 안 됐다. 자신이 죽으면 그녀를 죽일 수 없기에-. 에블린은 고개를 흔들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냈다.


"아- 여보, 게일과 연락하는 건 아니지?"

"그럼, 내 사랑은 당신뿐이야."

그녀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게일 헤어진 지 벌써 2 전이야. 거의 맨날  물어보는 거 알아? 당신도 참 귀엽다니까"

"그야-"

"하하하, 말하지 않아도 알아. 나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거잖아. 저번에는 날 위 진갈색 나무의자도 만들어 고. 그건 정말이지 감동이었어."

그녀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선생이 제자를 좋아하면 안 되죠. 설마 내가 학생일 때부터 사랑했을 줄은..."

"어쩔 수 없었어. 당신에게 끌리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닐 거야."

"으이그- 정말."

에블린이 그녀의 품에서 얼굴을 쏙 내밀 말했다.

"참, 내일모레 사돈어른 초대할까 하는데- 어때?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이쁜 딸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야."

그녀는 자신에게 안겨있는 에블린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곱실거리는 머리칼이 붕 떠올랐다.

"역시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사랑해, 에블린."

에블린은 조그만 입술로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를 바라 마음속으로 한참 웃어댔다.




그녀가 잠 밤, 아니 에블린이 그녀를 재운 밤, 에블린은 혼자 바스락거리며 움직였다. 고운 리스가 칠해진 진갈색 나무의자를 바닥에 홈이 파일 정도로 시끄럽게 끌고 감에도 그녀가 깨지 않은 까닭은 에블린이 선물이라고 가져온 석류 와인에 수면제가 녹아 있기 때문이었다. 

에블린은 진갈색 나무의자를 거실 가운데에 놓고 꺼져 있는 전등 위로 곱게 엮인 밧줄을 걸었다. 두 번 정도 밧줄을 강하게 잡아당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뚜벅- 뚜벅-'

에블린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자리에 앉았다. 체중 때문인지 침대가 아래로 움푹 꺼져 그녀의 몸이 기울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 하얀 피부, 물기를 머금은 입술을 차례대로 져보았다. 볼을 쓸자, 투명한 솜털 에블린의 손 따스 감쌌다. 이제 막 태어난 듯한 솜털. 곧 죽을 운명임에도 그녀의 몸에선 새로운 세포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었다.


그녀의 상체를 세워 자신에게 기다. 그 빗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정성스레 쓸었다.

"스위라, 역시 아름다워."

그녀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고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들어 의자 앉혔다.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에블린은 약간 주춤거렸다.

"역시 성인무게가 있네."

에블린은 그녀가 앉아있는 나무의자 옆으로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와 위로 올라갔다.

"흣-차"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의식 없는 성인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기에 마른 얼굴에 흐르는 땀을 계속 닦아야 했다. 그녀의 얼굴이 마침내 밧줄 둥근 홈에 들어가 이 일자로 반듯하게 펴졌다.

"후- 쉽지 않았어."


에블린은 올라섰던 플라스틱 의자를 제자리에 두려 그녀를 잠시 놓았다. 그때 그녀의 발아래로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에블린은 빠르게 다시 그녀에게 달려가 흔들대는 몸을 잡았다. 자칫 그녀가 허무하게 죽어버릴 뻔했다.

"큰일 날 뻔했군."

에블린은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젓고 그녀 뒤로 보이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분침이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어 벽시계의 타종장치를 바라보았다.

'털썩'

에블린은 그녀가 딛고 서 있는 의자 아래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발목을 잡고 고개를 좌우로 계속 흔들거렸다. 에블린의 모양새는 그녀의 몸 아래로 뻗은 타종장치 같았다.

 

앞으로 15분 후, 그녀가 깨어난다. 에블린은 전에 치워 뒀던 플라스틱 의자를 다시 그녀 옆으로 가져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의 몸이 흔들거리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쯧-"

그러나 그녀를 맞이하는 15분에서 플라스틱 의자 가져오느라 30초가량을 소모했다. 에블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분명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물레이션을 수도 없이 시연했음에도 시간을 낭비해 버린 자신의 모습 한탄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생각 또한 시간 낭비다. 

'이 시간에 그녀에게 사랑을 부으리라-.'


에블린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올라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기대게 하고 미리 준비한 헤어 오일을 양손에 고루 발랐다. 헤어 오일은 무색, 무취였는데 이는 그녀의 향을 방해하지 않 위함이었다.

에블린은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에 떨구고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겼다. 일회용 장갑을 착용했기에 그녀의 비단 같은 머릿결을 직접 느낄  없었만 그래서 그런 걸까, 오히려 흥분감이 증폭된 것 같았다. 통제된 촉. 직접 닿으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기대. 

그녀의 모든 머리칼이 빗겨졌다. 정성스정돈된 머리칼은 석양을 바라보는 노붉은 눈동자 같았다. 아련함과 슬픔이 공존하는- 죽음을 앞둔 눈동자-.

그녀가 깨어나기까지 앞으로 1분 30초. 에블린은 그녀를 포근히 안으며 이마에 키스했다. 

"사랑해 위라, 나의 것이 되어줘서 고마워."


에블린은 그녀를 자신의 품에서 떼내고 자리를 옮겼다. 그녀에게부터 1미터 어진 위치였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녀가 깨어나기까지 앞으로 5초. 블린의 다리가 떨려왔다.

에블린의 콧잔등에는 평소 쓰지 않는 도수 높은 안경이 얹어 있는데, 이는 그녀의 죽음을 보다 자세히 보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깨어나기까지 앞으로 1초. 이번엔 그녀의 몸이 떨려왔다. 의식이 조씩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삐걱- 삐걱-'

그녀의 발진갈색 의자 나무 집고 바둥거렸다. 에블린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삐걱-'

이내 그녀가 몸을 곧게 세웠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얼거렸다.

"으음-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아직 잠이 덜 깬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에블린을 바라보았다.

"…?"

"..."

"이게 무슨 상확이야...?"

"일종의 의식 같은 거야, 스위라."


에블린은 광대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위라, 나를 사랑해?"

그녀는 자신의 목에 감긴 단단한 밧줄을 만지며 했다.

", 당연히 사랑하지. 그런데 나 조금 무서워지려 그래. 이제 그만 내려줘."

그녀는 밧줄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연신 삐걱대는 의자 탓에 동작을 멈췄다.

약 3시간 전, 에블린은 진갈색 의자 다리 2개 사포로 곱게 갈두었다. 망치지 못하게 할 장치였다. 에블린은 자신의 치밀함에 감동술을 벌렁댔다.


"흑- 흑-"

그녀 훌쩍이 에블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도 사랑해 스위라. 마침내 나의 것이 되어 줘서 고마워."

에블린은 눈물 흘리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지 같은 속눈썹 아래로 곧 굳어 촛농이 길게 늘어나고 있었다.

"걱정 마- 아픔은 오래가지 않고 오직 사랑만 남을 뿐이야."

에블린은 진갈색 나무의자를 발로 천천히 밀었다.  

"당, 당신!"


그녀의 오른발이 허공에 매달리고 왼발 진갈색 나무 의자 위에 남아있다. 2초 후, 그녀의 양발이 모두 허공에 매달렸다. 얇고- 아주 느리게- 에블린은 그녀의 이어지는 신음을 들었다.


에블린은 떨며 바둥대는 그녀의 육신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몸은 마치 잔잔한 비를 맞으며 물기를 털어내는 백조 같았다. 아한 날갯짓 같기도 했다.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

그녀의 떨림이 완전히 없어지자 에블린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51초.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군. 좀 더 즐기고 싶었는데... 스위라- 조금은 실망인걸-. 그래도 뭐, 지금껏 당신이 최고였어."

에블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플라스틱 의자를 그녀 옆으로 옮기고 위로 올라섰다. 그녀의 고개 아래로 축 처진 머리칼을 양 귀 뒤쪽으로 쓸어 넘기며 이마에 키스했다.

"사랑해, 스위라."

그녀에게선 은은한 석류향이 났다.  


이틀 후 그녀의 집에 괴성의 소리가 뿜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