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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n 17. 2024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떨지 않는 방법

[잡담술집] 19화

그들의 잔은 각자 다른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내려졌다. 그는 손으로 턱을 만지며 작게 되뇌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떨지 않는 방법이라…"

젝스는 안주를 집으며 이월에게 물었다.

"그녀와 얘기할 때 어디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월은 고개를 돌려 창문 밖 벤치에 앉아있는 사피를 바라보았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반응이 오는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간질거려요. 기침이라도 나올 것처럼 숨이 여러 번 끊기고요. 대화를 하려면 서로를 봐야 하는데, 저도 느껴질 만큼 빨개진 제 얼굴을 사피에게 들킬까 고개를 숙이게 돼요. 애초에 저를 빤히 바라보는 사피의 눈을 마주칠 자신도 없어요."

진료라도 받는 것처럼 이월은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월에겐 고민이 될 수도 있지만, 사피는 당신을 귀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귀, 귀엽다고요?"

젝스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 같아도 귀여워 보일 것 같아요. 누가 봐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나잖아요."

그들은 어린아이를 놀리는 것처럼 서로 눈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굳이 고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월은 손을 저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피는 눈치가 전혀 없어서 제가 좋아한다는 걸 모를 거예요. 그냥 눈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 정도로 여기 있겠죠."


젝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만졌다.  

"음, 그렇다면 더욱이 대화하는 방법부터 생각해 봐야겠네요."

그는 이월을 바라보며 물었다.

"친구로서의 대화를 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이성으로서의 대화를 하고 싶은 건가요?"

"이성으로서 라면…"

"좋아하는 티를 어느 정도 내는 거죠."

이월의 입술이 우물쭈물 거리는 걸 보니 이성으로서의 대화를 원하는 듯했다. 그는 이어 질문했다.

"데이트 신청은 해봤나요?"

"데, 데이트요?"

동그래진 이월의 눈은 그가 들고 있는 유리잔과 닮아 보였다. 손님에게 어울리는 잔을 바로 캐치하는 젝스의 실력에 그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없나 보네요. 오늘처럼 단체로 모일 때만 사피를 보는 거군요."

머리를 긁적이며 이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은 따로 하나요?"

 이월은 안 봐도 될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초에 둘이 만날 기회가 없었네요. 대화할 기회는 더욱이 없었고요."

말하는 와중에도 그의 손가락이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걸 보면 감 스낵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젝스도 안주를 집으며 말했다.

"우선 단 둘이 있을 시간부터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만일 사피가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이건 고백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둘이 만나는 시간을 약속하는 것뿐이에요. 뭐든 시도는 해봐야죠."

"알겠어요."


이월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화를 떻게 주도해야 할지… 또 버벅거릴 것만 같아…"

속삭이듯 말했지만 울리는 이월의 낮은 목소리는 그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월은 크고 두툼한 손으로 유리잔을 만지작거렸다. 중간사이즈의 유리잔은 이월의 손에 감춰졌다 보이기를 반복했다.

젝스는 냅킨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대화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거라고 생각해 봐요. 쉽진 않겠지만 사피의 내면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목소리가 떨려도 괜찮아요. 목소리의 떨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목소리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니까요."


그도 이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떨지 않는 방법은 없어요. 몸에서 반응 오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떨림이 있다고 해서 대화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떨림 있는 대화가 서로를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죠. 그러니 떨림은 그대로 두고 서로의 호흡과 목소리에 집중해 봐요.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 그녀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요."

"그렇군요."

"그래도 떨림을 티 내고 싶지 않다면 주문을 걸어봐요. '난 지금 고민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난 지금 고객의 사연을 듣고 있다. 그러니 차분하고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라고요. 그러면 최소한 그녀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아들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전에 썼던 방법이에요."

"하하, 좋네요."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상황을 망칠까 무서워 그녀와의 시간을 피한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버벅거릴지라도 그녀와의 소중한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의 소중한 순간을 공유해 봐요.

"소중한 순간의 공유라… 고마워요."

젝스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자, 기운 내요. 뭐든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잔을 들며 이월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을 소중하게 다뤄줘요. 떨림조차도요."

이월은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잔을 들었다. 그때 그들의 잔이 내려지는 동시에 풍경이 크게 울렸다. 그들은 긴급 사이렌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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