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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May 08. 2024

재건축하면 이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가나요?

개포주공 1단지 철거 이야기

30대가 다 되어 처음 개포주공 1단지에 발을 들였을 때, 두 가지 느낌을 받았다.


'낡고 웅장하다.'


집은 낡았고, 나무는 웅장했다. 30년이 넘은 나무들은 아파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층은 나무들에 가려 베란다조차 보이지 않았다. 담쟁이덩굴은 기둥이란 기둥은 모조리 휘감았다. 마치 수목원에 온 것만 같았다. 


'아파트에 메타세콰이어를 심나?' 의아했다. 높게 솟은 나무들이 만든 터널을 지나자 이것저것 심어놓은 미니농장이 나타났다. 오이 호박 대파들이 저마다 손을 들고 뽑아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놀이터 옆 벤치에 앉아 '강남 아닌 강남'을 감상하다 산책 나온 할머니를 보고 말했다. 


"나무들이 참 제멋대로들 자랐네요."


'예이' 하며 할머니는 말했다. 


"어차피 다 잘라낼 거 누가 관리해. 그냥 제멋대로 살다가 가는 거지."


잘라낸다고? 이 거대한 나무들을? 싹 다? 나는 높게 솟아 올릴 새로운 아파트만 생각했을 뿐, 이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감흥 같은 것은 느껴본 적 없던 터였다. 


사진= 개포동 그곳(페이스북)




개포주공 1단지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개포동 키즈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주기적으로 나무들을 돌아보는 짧은 여행을 다녔다. 그들은 산책이라 이름 붙였지만, 개발이익에 밀려 사라지는 추억에 건네는 작별인사였다. 


이문재 시인은 2017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를 두고 '이상한 애도였다. 아직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애도'라고 썼다. 이성민 감독은 그들과 개포동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짧은 다큐로 만들었다. 


브런치, 블로그, SNS를 통해 사람들은 개포주공 1단지의 나무를 이야기했다. 아니, 그건 나의 이야기였다. 아이들과 갓 입주했을 때의 설렘, 학창시절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던 소리, 흙장난하며 맡은 나무와 풀 냄새,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낙엽이 알록달록한 눈처럼 쌓이던 소로길…


그들은 이 마을을 자신의 고향이라 불렀다. 사고팔고, 오르고 떨어지고, 어디가 먼저 공사를 시작하고. 십년 넘게 못된 말만 오가던 아파트에 잠시나마 온기 있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든 나무들을 지켜내고자 애썼다. 일부라도 좋으니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조경은 유지한 채 새 아파트를 짓거나, 나무를 옮겼다가 다시 심거나, 일부만이라도 그대로 두는 설계로 변경하거나. 물론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무를 살리려면 조합원의 분담금이 늘어나게 되고, 그런 선택은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정말 멋진 나무들이 만든 작은 숲이었다. 산속 약수터에 온 듯한 풀냄새가 좋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나무들을 지키자'고 나설 수가 없었다. 개발은 추억을 먹고 자란다. 나는 개포동에 추억이 없는 그저 장기투자자일 뿐이었다. 




철거가 시작되자 금세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들만 남았다. 그 한가운데 20여 그루의 메타세콰이어도 남았다. 활동가들의 마지막 노력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이들 나무와 함께하고 싶어했다. 


사진= 개포동 그곳(페이스북)


그 자리는 가장 넓은 평수 가장 높은 층의 랜드마크 동과 커뮤니티 시설, 그리고 도로가 들어설 자리였다.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하게 씻어, 예쁘게 포장해야 할 자리였다. 


철거 직전 홀로 찾은 개포주공 1단지에서 나는 곧 쓰러질 수천 그루의 생명을 만났다. 그들은 생생했고, 제멋대로였으며, 삶의 의지를 풍겼다. 억울하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하루빨리 다 밀어버리고 새 집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아니, 그래도 몇 그루 정도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오래된 동네의 정자나무처럼 정말 잘 자란 메타세콰이어 몇 그루만 각 획지별 중앙에 이식하면,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상징할 수 있는 멋진 아이템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서울시는 그 대신 뼈대만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 한동을 남겨두라고 명령했다.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겠다면서. 참으로 바보 같은 아이디어였다. 안 살아본 나도 아는데…


2019년 겨을, 개포동 키즈들이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했던 22그루의 메타세콰이어는 결국 베어졌다. 쓰러진 나무들은 서울숲으로 가 시설물이 되거나, 목재가 됐다고 들었다.


개포주공 1단지에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추억은 그렇게 기억으로 남았다.


사진= 개포동 그곳(페이스북)



<글 작성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 (페이스북)

-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별의별 도시기록가] 나무가 있던 집의 기억 / 이성민 (서울도시건축센터)

- [이문재의 시의 마음] 개포주공 1단지, 나무 1만 그루 (경향신문)

- 개포동 주공아파트에서 40년간 살던 메타세쿼이아, 서울숲으로 이사오다. (서울그린트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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