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 May 13. 2024

40년 만에 우리집에 처음 들어가봤습니다

개포주공1단지가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로 바뀌는 순간

2019년, 개포주공 1단지가 37년 만에 다시 맨살을 드러냈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모델하우스를 찾은 날, 주위를 둘러싼 아파트 숲 사이로 드러난 개포주공 1단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도 달아올랐다. 뭔가 꿈꾸지도 않았던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다녀온 어머니와 동생은 연신 투덜거렸다.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 그저 돌아가신 아버지도 함께였다면 얼마나 같이 투덜거렸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모델하우스 현장


계약을 마치고, 중도금 대출 상담차 은행 임시 창구에 갔더니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좋은 부모님을 두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나는 "우리 가족이 그동안 어떻게…"라고 말하다 말았다. 안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동생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 집을 지켜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 집에 다시 대출을 일으킨다는 것이 부모님께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공동명의니 각자 반반씩 중도금과 잔금을 내기로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재건축 과정을 지켜본 나는 직장을 옮겼다. 꿈과 돈은 함께 잡을 수 없는 토끼와도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걸 새치가 아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에야 깨달으면서 이제야 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경매 공매 상가 토지 신축 청약 세금은 물론 각종 사업 이야기들을 편집하고 공부하는 사이 붉게 물든 땅은 회색빛 콘크리트로 다시 뒤덮였다. 




2023년 가을, 우리 가족은 사전점검 초대장을 받았다. 


재건축 직전까지 다투던 사람들은 또 등장했다. 로열동 로열층이 어디인지부터 조경, 시세, 옵션, 커뮤니티, 구룡마을 개발 등 주제도 많았다. 우리는 어찌됐든 1층 아닌 게 어디냐며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 사이 40년 만에 우리 가족이 진짜 우리집에 첫 발을 내딛는 날이 다가왔다. 거대한 규모 때문에 아파트 입구를 찾아가는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엄마와 동생은 골프카트까지 얻어 타고 간신히 찾아왔다. 


고층이라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남산타워에서나 타봤던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놀라고, 공용 복도가 대리석인데 놀라고, 현관문 무게에 놀랐다. 그리고…



가족 모두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경치에 놀랐다.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굳어버렸다. 


산이 그림처럼,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안내차 함께 방문한 매니저도 함께 놀랐다. 가족들 모두 거실창에 얼굴을 붙이고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말 40년 전에 이걸 예상했다는 건가."


엄마도 동생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 흩어져 하자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생은 기어이 100개도 넘는 목록을 정리했다. 아직 인테리어가 한참 남았다고 해도… 


아마도 아버지를 향한 제 나름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삶이 불안하고, 때로는 힘에 부친 시간도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 동료들은 모두 아파트를 팔고 떠났다. 누군가는 '지금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며 매도를 부추겼다. 


그냥 아버지가 세상에 남겨놓은 유일한 자산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엄마도 우리 형제도 그 임대하기에도 죄송했던 집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집을 사고 돌아오던 날 어머니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30년만 갖고 있어라. 이 집은 자식 장가 밑천이다."


개도 포기한 동네였다가 개도 포르쉐 타고 다니는 동네로 천지개벽한 개포동 우리집은 그렇게 40년 만에 진짜로 아들의 신혼집이 됐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40년이 지나니 아파트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빠르게 흘렀다. 

이전 08화 재건축하면 이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가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