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트롬소가 어디야?

착하게 살았으면 꼭 볼거예요

by 늘보

오로라를 보기 위한 우리의 이동 경로:

프랑크푸르트(in)-뮌헨-잘츠부르크-빈-베를린-스톡홀름-트롬소-코펜하겐-암스테르담(out)


제발 트롬소를 들어가기 전까지 아무일 없어라 없어라 없어라... 여행 내내 계속 기도했다. 오로라를 보러 왔으면 트롬소까지 가는 여정은 무사히 계획대로만 되길. 엄마가 건강하길. 가장 먼저 내가 바란 건 그뿐.


오로라를 보는거야, 하늘의 운이라고 하니, 내가 만들 수 있는 운이라면 노르웨이까지 가는 길에 아무 일 없는 것이었다. 이미 앞선 여행에서 두 차례나 해외에서 응급실을 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의 일 순위는 노르웨이까지 무탈하기, 였고, 다행히 엄마가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노르웨이까지 올 수 있었다.

노르웨이 너무 추웠어요...으츄

물론 트롬소에 도착하고 보니, 북극 지역의 겨울이라, 일단 춥기도 춥고, 길이 너무 얼음길이었다. 미끄러운 얼음길에서 버스를 타고 언덕 위까지 이동해서, 우리가 묵을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이 상당히 가팔랐는데, 우리가 낑낑 거리며 올라가니까, 거구의 여성분이 성큼성큼 오셔서 계단까지 그 무거운 27일치 캐리어를 단숨에 들고 옮겨주셨던게 기억에 남는다. 낯선 나라에서 누군가 베푼 친절의 기억은 신기하게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우리도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게 얼마나 큰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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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2연어. 냠냠냠.

내가 주로 갔던 숙소들은 기본적으로 주방이 있는 곳을 예약했다. 외국에서의 물가를 생각하면, 어휴,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우리가 직접 요리해서 먹는게, 아니, 그렇게 먹으면서 가끔 외식해야 그나마 비싼 물가의 나라에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노르웨이는 연어가 저렴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해서, 매일 1일 1연어를 구워 먹었고, 주방에서 가끔 만나는 외국인들과도 간단히 대화도 하고, 너네는 오로라 봤니? 그런 이야기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옆방에 젊은이들이 나한테 인사를 했었는데, 일본어로 인사를 해서 나는 코리안이야, 했더니, 한국어 인사말을 일부러 물어보고 배운 청년들도 기억이 난다. 그땐 조금 정색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라면, 좀 더 친해져서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물어봤지 않았을까...


아무튼, 무슨 여행자 센터 같은 곳을 찾아가서 소규모로 운영되는 한 업체에 오로라 헌팅을 예약하고 왔다. 오로라가 잘 관측이 되는 날씨인 날을 추천받고, 다행히 우리가 트롬소에 있는 4박 5일 중에 딱 하루가 날씨가 좋은 날이 있어서, 그날이 오로라 관측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트롬소는 특이한게, 늦잠을 자서 12시쯤 일어나 보면, 금세 하늘이 깜깜해진다. 아니 이제 이른 오후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깜깜하다고??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거지?? 햇빛은 언제 보나?? 눈은 항상 오니까 길은 미끄럽고, 우째 살아가는거지?? 싶기도 했던 트롬소지만, 4일 정도 지켜보니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들만의 루틴이 있었다. 나름대로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럼에도 이른 오후에 깜깜해지는 건 여전히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로라 헌팅 날이 됐고, 약속장소인 한 호텔 입구로 모였다.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작은 봉고차를 타고 이동했다. 아, 차를 타기 전에, 가이드 할아버지께서 점프수트를 주셔서 내가 서투르게 입으니까, 직접 입혀주셨던게 기억에 남는다. 나를 아마도 10대쯤으로 아셨던 것 같은데, 저 사실 나이 많아요...라고 차마 이야기는 못하고, 얌전히 옷을 입었고, 함께 오로라를 보러 떠났다.


우리가 선택했던 곳은 작은 업체라서, 가이드분이 사진도 직접 찍으시고, 운전도 직접 하시고, 오로라도 관측하시고,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하셨다. 계속 하늘을 보시고, 오로라 관측 사이트도 매분마다 확인하시고, 어디에서 관측된다 싶으면 바로 그쪽으로 운전하셨는데, 우리에게 하시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 내가 착하게 살았으면 오늘 오로라를 볼 거고, 나쁘게 살았으면 오로라를 보지 못할 거라고. 그때 나는 속으로 ‘음, 나는 몰라도, 엄마는 착하게 사셨으니까, 아마도 오로라를 보지 않을까?’


그래서 오로라를 보았느냐고?


보았지요.

옅은 오로라도 보고, 짙은 오로라 커텐도 보았지요.


짠.

자동차 옆에서 샥샥 지나다니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예요 샥샥

유럽 여행을 하면서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어보면, 단연 오로라를 실제 눈으로 본 것과 스위스에서 스카이다이빙 했던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카이 다이빙 이야기도 후에 하겠지만, 무튼 맨날 영상으로만, 사진으로만 보던 오로라를 실제로 쌩눈으로 보니까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엄마나, 나나, 오로라를 보면서, 이 광경을 우리만 보고 있으니, 좀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가족들도 함께 봤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눈에 오래오래 담고 싶은 풍경이었다.


실제로 보면 실감이 나지도 않아서, 내가 정말 보고 온게 맞나, 할만큼 좀 SF 영화 같기도 했는데, 그때 가이드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을 보면 우리가 오로라를 보긴 봤구나,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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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갔던 날의 오로라 관측 예상 시간. 세 번째 사진은 휴대폰으로 찍은 오로라 사진. 폰으로도 찍힐 만큼 매우 선명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속으로, 앞으로 좀 더 착하게 살게요, 그런 다짐 같은 것도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신혼여행이란 걸 가게 된다면,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기에도 오로라만한 것이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래서 트롬소는 한 번 더 오고 싶은 곳이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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