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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Y Sep 02. 2024

새아빠가 바람을 피웠다 #6

나와 내 딸의 평행세계

함께 일을 하는 사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회사 내에서 그가 이끄는 작은 그룹 내에 속해있는 젊은 여자들 중 한 명이었다.


결국 기다렸던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난 아무 대답 없이 그 집을 뛰쳐나왔다.

혼란스러워서 멀미가 나고 뇌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꿈이겠지.


고작 2주 사이에 다른 여자가 생긴 게 말이나 되나.

그동안 내가 아플 때 내 옆에서 간병인이 되어주었고 카드값이 없어서 쩔쩔맬대면 자기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그 큰 어깨를 내주며 기대게 해 주었고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기분만 내키면 바로 짐을 싸들고 여행을 가주는 동반자였고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 같이 천천히 그림을 그려가는 오직 나만의 남자였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날을 맞게 하는 걸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걸었다. 죽고 싶기까지 했다.

지난 모든 순간순간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고,

미친 사람처럼 걷고 있는 이 길이 매일 그와 차로 오고 가기를 반복하던 길이라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 번도 손가락에서 빼본 적이 없던 우리의 커플링은 그날 그 길가 어딘가에 버려졌다.


어떻게 집을 찾았는지 어떻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기억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집안에 들어서자 딸이 나를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그날은 나와 딸에게 아주 기쁜 날이었다.

가고 싶던 대학의 합격문자를 받은 날.

딸에게서 그 연락을 받자마자 너무 기뻐서 호들갑을 떨었고, 회사 동료들에게서 아낌없는 축하를 받았다. 그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오늘 축하주를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맥주를 사들고 기뻐하며 달려오는 엄마를 기다렸을 텐데

칼에 찔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집안을 들어오니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딸을 안고 울었다.


펑펑 울었다.

소리라도 내면 감정이 좀 떨어져 나갈까 싶어 최대한 큰 소리를 내고 울었다.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고. 오늘처럼 기쁜 날 엄마가 누구보다 축하해줘야 하는데 오늘 너무 힘든 일을 겪어서 하루만 울겠다며 목청 높여 울어댔다.


안 봐도 뻔했다.

눈물범벅인 내 얼굴은 보이지 않는 상처로 너덜너덜한 버림받은 늙은 여자의 얼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리라.


딸이 나를 안았다. 그리곤 같이 울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둘이서 한참을 엉엉 울었다.


그렇게 그와 나는 999일이 되던 날 헤어졌다.






새아빠는 가출한 지 몇 달 뒤 딸 같던 그 여자와 헤어지고 엄마에게 잘못을 빌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엄마는 상처 주고 버리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남자를 버선발로 맞이해 주었다.


엄마는 새아빠가 다시 곁으로 왔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했으면 갑자기 은혼식을 한다며 친척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했고, 십몇년동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제주도로 신혼여행도 떠났다. 첫 가족사진이 거실 벽에 걸렸고, 엄마는 몇 달간 소녀 같은 얼굴을 하고 매일 아침 새아빠가 좋아하는 반찬만 만들었다.


그렇게 두 분은 다시 부부사이가 되어가는 듯 보였지만 엄마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몰래 팔고 도망가려던 가게를 엄마가 동업자 아저씨와 결탁해 급히 처분해 버린 덕에 새아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고, 돈을 펑펑 써대다가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늙은 남자는 어린 여자에게 무참히 버림을 받았다.

오갈 데가 없어지자 새아빠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면을 쓰고 엄마를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새아빠는 자기를 버린 어린 여자에게 스토커처럼 굴며 쫓아다니고 집착하다 엄마한테 들켜서 내쫒겼고 가면은 금세 벗겨졌다. 이후 또다시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엄마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다.


나는 새아빠가 다시 싫어졌고, 새아빠랑 마주치지 않기 위해 늘 밖으로 나돌았다. 그리고는 2년 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 집에서 도망치듯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만 4년 만에 이혼을 하고 다시 돌아온 친정집은 그런 새아빠와 다단계로 재산을 전부 탕진해 버린 엄마가 상주하고 있는 가족애를 상실한 일종의 숙소 같았다.






999일에 이별했던 아픈 날이 기억날 때면 나는 오래전 엄마가 울던 그날이 같이 떠오른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서 엄마와 유대관계가 거의 없었다. 엄마는 남들 잘 시간에 일을 했고, 그나마 쉬는 날은 하루종일 잠으로 휴식했기 때문에 나와 마주치는 날도 많지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툭하면 매부터 드는 엄마를 피하고 싶어서 돈이 필요할 때나 쪽지를 써서 엄마방 문 밑으로 넣어놓곤 했었다.


엄마를 여자로 느끼고 함께 감정을 공유하게 된 첫 계기가 고맙게도 새아빠가 바람을 피우면서였다.

그 이후로 엄마랑 좀 친해지려나 기대도 했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일 뿐, 여전히 지금까지도 어려운 일이다. 엄마와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부분이 없었다.


난 늘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고, 엄마는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똑같이 속 썩어보라는 저주를 내렸었다.


난 엄마와 반대로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혼과 이혼, 사랑과 배신의 아픔들까지 엄마와 비슷한 나이 때가 되면 마치 평행세계를 사는 것처럼 점점 엄마의 삶을 내가 똑같이 따라서 살고 있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따라쟁이로 살기 싫다 한들 믿었던 사랑에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고 주저앉은 여자의 모습은 엄마나 나나 다를 게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어둠 속에서 언제 나을지 기약도 없는 마음의 병을 앓던 모습까지도..


다 큰 딸 앞에서 망가진 얼굴을 하고 울다 못해 기어코 딸마저 울려버린 나는 스무 살 딸에게서 오래전 내 모습을 보았다.

나도 스무 살이었다.


엄마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같이 끌어안고 울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우리의 스무 살.


세상에.. 내 딸도 혹시 나와 같은 평행세계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내 딸도 어딘가에서 우리 엄마 같은 초라한 인생이 싫어서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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