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사십 중반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거울 속 내가 늙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가 보다.
꾸밈 30 : 젊음 70 의 비율로 꾸미는 것에 그다지 큰 공 들이지 않아도 젊음이 뒷받침되어 완벽한 외모로 보이는 순간에서 스코어가 반대로 뒤집어져서 아무리 꾸며도 부족해 보이는 것을 알아채는 때가 그즈음인 건가.
늙은 것 같다는 푸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건지 아마도 우리 딸은 지금은 모르리라. 20년은 지나야 알게 되겠지. 지금 너는 아무렇게나 꾸며도 ‘쌈빡’ 하단다.
대학교 때 군인이었던 남자친구가 나에게 처음으로 옷을 사줬던 적이 있다.
그는 갈색 치타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호피무늬 스커트와 베이지색에 깊게 파인 브이넥 니트를 골라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지극히 군인 취향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힙합만 입고 다닐 줄 알았던 나에겐 꽤나 어색하고 불편한 스타일이었지만 첫 옷선물에 신이 났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함께 길을 걷다 말고 멈춰 서서 나를 몇 초간 바라보더니 ‘너는 화려한 것보다는 수수한 게 어울리네’라는 말을 했다.
그 옷이 너무 성숙해 보여서 스물이 갓 넘은 나에게 영 안 어울렸던 것이다.
네가 그 옷을 입으려면 몇 살 더 먹어야겠다는 말을 하기가 뭐해서 수수한 게 어울린다는 말로 대신했던 것 같다. 소심하면서 착한 사람이었다.
네 살 많았던 남자친구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린 내가 싫어서 빨리 나이가 들고 싶었다.
그래서 길바닥을 빗자루질하며 입고 다니던 힙합 바지와 스모선수가 입어도 맞을 것 같은 헐렁한 티셔츠들과 바로 이별했다.
엄마의 머리를 매만져 주던 날, 엄마는 늙은 얼굴에 쌈빡하게 화장이 되지 않아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했지만, 나는 화장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엄마가 부러웠다.
나는 사실 그전부터 엄마가 출근하고 나면 몰래 엄마 화장품으로 엄마처럼 화장을 해보곤 얼른 지우는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엄마가 마스카라를 어떤 표정으로 하는지, 입술은 어떻게 벌리고 립스틱을 바르는지 그동안 자세히 관찰해 온 엄마의 화장법대로 나름 트레이닝을 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엄마처럼 화장한 뒤 거울에 비춰보면 내 얼굴이 미인인 엄마를 살짝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즐겨 바르던 진달래색 립스틱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이라는 것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
빨리 나이가 들고 싶었다. 당당하게 화장품을 집어 들고 엄마랑 최대한 비슷한 얼굴로 보일 수 있도록 화장을 마음껏 하고 싶었다.
엄마처럼 예뻐 보이고 싶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매일 아침이면 화장을 하는 직장인이지만 얼굴에 그리는 것조차 귀찮아서 십여 년 전부터 반영구 화장을 했으니 거의 반자동 화장이다.
게다 늘 어두운 정장을 교복처럼 입다 보니 블라우스색을 고르는 것 외에 별다른 꾸밈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옷이 유행인지 관심에서 워낙 멀어진 지도 오래다.
심지어 사계절 내내 정장을 입다 보면 계절 관념도 사라져서 겨울이나 여름이나 같은 정장을 입고 있기도 한다.
가장 쌈빡했을 나이엔 불행히도 애를 키우고 일을 한 기억밖에 없어서
내가 얼마나 성숙해 보이는지, 공들여서 엄마처럼 화장을 하면 엄마를 닮긴 했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갔다.
엄마정도의 미모는 아니더라도 나름 괜찮았을 텐데.. 빨리 나이가 들고 싶었던 그때가 정작 찾아왔는데 순식간에 지나가 진짜 예쁜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몇 달 전 자른 머리가 벌써 어깨까지 내려오면서 이젠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뻗침 머리가 만들어진다. 비록 엄마를 닮은 미인의 얼굴은 아니지만 40대 중반에 뻗침 머리를 했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리곤 거울 속에 화장으로 더 이상 가릴 수 없이 늙고 쳐지고 파여있는 얼굴이 내 눈과 마주한다.
이제는 화장을 해도 예쁘지가 않네. 나 늙었구나.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자꾸 엄마에게 머리를 해주던 그날이 떠오른다.
'내 쌈빡함은 언제 어떻게 지나간 거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