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처음 사랑했던 사람을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여자는 가장 많이 사랑했던 사람을 첫사랑으로 기억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나의 첫사랑은 아마도 999일째 헤어졌던 그분이다.
사십 대에 들어 한 사랑이었지만 마치 그런 감정을 처음 겪어보는 사춘기 10대보다 더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걸 다 쏟아부어 사랑했었다.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기도 했었고.
하느님께서 그동안 힘들게 살았던 내 젊은 날에 대한 보상으로 그 사람을 내게 내려준 거라고 늘 생각했었다. 그날이 있기 전까진..
대학교 때 처음 사귀었던 군인 남자친구는 그 사람과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만난 지 1000일을 전후로 이별을 했다는 것과 이별의 이유가 그들에게 나 몰래 생긴 다른 여자 때문이라는 것.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밤새 놀 수 있었다.
이것도 내가 딱 스무 살일 때의 이야기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후반에는 남자들이 길 가다가 괜찮게 차려입은 여성무리에게 다가가 같이 술 한잔 하자고 하는 '헌팅'이라는 게 흔했다.
나와 내 친구들 4인방은 매일밤 당연한 듯이 꽃단장을 마치고 모였고, 길에서 잠시 수다를 떨다 보면 금세 한 명 한 명 남자들이 말을 걸어왔다.
미리 약속이 있는 날이나 말을 걸어온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우리끼리 놀겠다며 거절했고, 착하고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대표선수로 오게 되면 우리는 바로 수락할지 말지 조용히 논의에 들어갔다.
그렇게 밥이며 술이며 진탕 얻어먹어도 그 당시는 전화번호를 물어보기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순진한 남자들이 태반이었고, 우리는 그걸 이용하듯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만나지 않겠냐며 쿨한 척을 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갔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보면 나갈 때 준비했던 돈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쌀쌀한 3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어쩌다 보니 4인방의 의견이 반으로 갈려 둘은 어디론가 갔던 것 같고, 나는 절친 S양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데 뒤에서 남자 둘이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한 명은 청바지를 입은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고, 옆에 있던 키 작은 사람은 트레이닝복 같은 걸 입고 있었다.
대표선수로는 둘 중 청바지의 남자가 나왔어야 당연한데 오히려 그는 쭈뼛거리고 있었고, 정작 말을 건 사람은 멸치 같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청바지 남자에 호기심이 생겼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S양이 그날따라 밝은 표정으로 흔쾌히 수락을 하면서 넷이서 정류장 근처의 술집도 아닌 24시간 영업하는 밥집으로 향했다.
그 집에서 시킨 메뉴는 닭볶음탕이었고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처음 본 남자들 앞에서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청바지를 입은 남자는 목소리만 좋았지 영 재밌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오빠였고 군인인데 잠시 휴가를 나온 상태라 며칠뒤면 다시 부대로 복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 주변엔 군대 간 선배나 친구들이 수두룩 했다. 오랜만에 휴가를 나왔다고 만나보면 볼품없이 쌔까매져서 몇 달 만에 마시는 술 몇 잔에 만취가 되어 길거리에 토를 하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녀석들뿐이었는데, 그 오빠는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묵묵하고 절제된 군인의 느낌이 강했고, 긴장감을 내려놓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운동을 많이 하는 듯 단단해 보이는 어깨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수다스러운 남자에겐 별 매력을 못 느낀다.
그 오빠는 말대신 잔잔한 미소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오빠와는 나중에 절친이 되었지만 그날은 본인이 직장인이라는 것 외엔 무슨 얘기를 했고, 본인 소개를 어떻게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관심은 묵묵한 그 오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술자리 말미에 말이 없던 군인오빠가 조심스럽게 내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S양은 바로 나서서 늘 우리의 준비된 멘트를 꺼냈다.
"오늘 기분 좋게 만났으니 오늘은 이렇게 헤어지시죠. 인연이면 다시 만날 수도.."
라는 말 중간에 내가 나도 모르게 내 번호를 내뱉었다.
곧바로 S양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내 번호만 주고 나는 그 오빠의 번호를 묻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지곤 또 일상이 찾아왔고, 며칠이 지났다. 평소처럼 학교에 있는 시간이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군인 오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