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20년 가까이 유지해 오던 긴 머리를 미련 없이 싹둑 잘라냈다.
별 의미 없는 내 생일이 코앞이었다.
일도 안되고 우울한 마음이 지속되는 게 싫어서 이 기분을 뒤집을 뭔가가 필요했다.
그 처방으로 가장 좋은 것이 쇼핑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기분전환을 위해 소비를 할 만큼 금전적 여유가 있지 않았다.
큰돈 안 들이고 어떤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고작 커트였다.
젊은 디자이너 선생님은 왜 갑자기 단발할 생각을 했는지, 아깝지는 않은지 물었다.
"그냥요.."
그리고는 내게 가위를 쥐어주며 손으로 가리킨 곳까지 직접 한번 잘라보라고 제안했고 그 모습을 휴대폰 영상으로 촬영해 주었다.
싹둑.
20년 만에 단발을 하는 이유는 가난한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었고, 아깝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때쯤 '뻗침머리'라는 헤어스타일이 유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단발머리 끝부분을 바깥쪽으로 고데기를 말아 올려 뻗치듯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신촌을 나가보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의 10~20대 푸릇한 여자들이 그 스타일을 많이 하고 다녔다.
중학생이라 단발이긴 했지만 아무리 유행이고, 해보고 싶어도 감히 해볼 엄두를 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 튀는 유행을 따라 했다가는 엄마에게 머리채를 쥐어 뜯길게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엄마도 나처럼 엄마의 외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폭군 같았다던 나의 증조할머니 영향 때문인지 엄마는 고운 외모와 다르게 폭력적이었다. 새벽에 깨워 시험공부를 시키던 엄마 앞에서 졸다가 따귀를 맞고 울면서 학교를 갔던 날도 많았고, 친구를 따라 과산화수소로 염색을 했다가 머리채를 잡힌 채 창문에 여러 번 내리쳐져서 창문이 깨진 적도 있었다.
그런 내면을 숨기기만 한다면 엄마는 겉으로 봤을 땐 여배우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절세미녀였다.
엄마와 함께 어딜 가든 사람들은 내게 이모냐고 물어봤고 (닮지 않아서다)
내 엄마라는 걸 알게 된 후엔 모든 사람의 반응이 똑같았다. 엄마가 미인이라서 부럽다. 좋겠다.
저녁에 출근을 하는 엄마는 내가 학교를 일찍 마치고 오는 날엔 화장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출근 준비가 완성되어 가는 엄마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유행하는 뻗침 머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거다.
나는 늦었다는 엄마를 부득이 앉혀놓고 고데기를 들이댔다.
외할머니는 나더러 엄마 나이에 그게 무슨 주책이냐며 나무라셨지만, 완성이 되었을 때 손재주가 좋다고 칭찬을 쏟아내셨다.
엄마는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한참 거울을 보더니
내 수고와 헤어스타일 만족도에 대한 평가는 전혀 없이
"이제는 화장을 해도 쌈빡한 느낌이 없네. 나 늙었나 봐."
하고 돌연 실망한 표정으로 푸념을 했다.
엄마는 어린 여자들이나 할법한 헤어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나이 든 얼굴이 싫었던 모양이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가장 어려 보이는 파란 재킷을 입고 막 미용실을 나온 듯 기분 좋게 집을 나서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딸의 대학교 입학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이 필요한 면접이라 아침부터 서둘러 미용실에 들러야 했다.
이제 막 교복을 벗은 앳된 얼굴에 전문가가 화장을 입혀놓으니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따로 없었다.
행여 머리카락이라도 한올 내려올까 조심조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하필 정면에 큰 거울이 보였다.
나는 딸을 시간에 맞춰 챙긴답시고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그러면서 정작 나는 늦을까 봐 세수 조차 하지 못했다.
화장기 없는 퀭한 얼굴은 탄력을 잃은 양 볼은 짝짝이로 늘어졌고 다크서클이 앉았다. 팔자주름은 푹 파였고 핏기 없는 입술은 심술이라도 난 듯 입꼬리가 축 쳐져있었다.
그게 선녀 옆에 서있는 나무꾼보다 못한 내 모습이었다.
"예전엔 쌩얼도 괜찮았는데. 나 늙었나 봐."
딸은 웃으며 내 친구 엄마들 중에 엄마가 제일 젊고 예쁘니까 그런 소리 말라고 했지만
그러고 보니 이런 푸념을 언젠가 가까이서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오래전 엄마에게서였다.
거짓말처럼 내 나이가 그때 엄마의 나이와 얼추 비슷했다.
사십 대 중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