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기습
새아빠는 본인보다 24살 어린 30살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중이었다.
애가 하나 있다는 서른 살 이혼녀는 심지어 그 가게의 종업원이라고 했다.
그저 전화로나 시시닥 거릴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와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것도 어제오늘 벌어진 일이 아니라 벌써 몇 달째 죽고 못 사는 사이라고 했다.
새아빠를 사장님으로 만들어 준 그 가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부터 가게가 늦게 마무리되어 피곤하니 근처 사우나에서 자다가 집에 오겠다는 핑계로 외박을 하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었는데, 동업자는 그 외박의 이유가 다른데 있음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새아빠가 외박을 하는 날이면 장사가 잘되는가 보다 하며 좋아하기만 했지, 그 핑계들을 바로 어제까지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새아빠는 자신의 수입을 한 번도 엄마에게 오픈한 적이 없었는데 동업자의 말에 따르면 언젠가부터 버는 족족 여자에게 갖다 바치고 있고, 그 덕분에 여자는 진작에 종업원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며칠 전 새아빠가 짐을 싸들고 가출했다는 것도 동업자는 알고 있었다.
울고 싶은 아이의 뺨을 제대로 때려준 격이었다.
엄마 곁을 언제 떠나야 적당할지 계산을 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얼마 전부터 동업자에게 처음 투자했던 비용을 빨리 돌려달라는 재촉을 시작했다고 했다.
엄마 몰래 그 돈을 챙겨 도망가서 여자와 함께 살림을 차릴 계획을 했단다,
동업자는 당연히 당장 투자금을 빼줄 수가 없었고, 백번 양보해서 딴 데 정신 팔려 가게를 돌보지 않기 시작한 새아빠에게 계속 수익을 나눠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그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났고 사람 성질 뒤집는 어투가 전문인 새아빠가 그날따라 동업자의 심기를 쎄게 건드린 것 같았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 길로 곧장 엄마에게 그 끔찍한 사실을 폭로하려 한달음에 달려와 새벽에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까.
엄마는 무너졌다.
가출하던 날까지도 새아빠는 내가 건네준 그 전화번호를 빌미 삼아 욕설을 퍼부으며 엄마의 의심을 병자 취급 하며 짐을 쌌었다.
난 그 소리를 밖에서 듣고 있다가 참다 못해 눈이 뒤집혀서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부부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새아빠 배 앞에 들이밀며 짐 다 쌌으면 욕하지 말고 당장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었다.
엄마는 얘기 끝에 끝내 눈물이 터졌다.
포효하듯 울었다. 그렇게 큰 울음소리를 들어본 건 20년을 살며 처음이었다. 그 울음에 걸맞게 일그러진 엄마의 표정이 나도 외할머니도 같이 울게 만들었다. 같이 우는 것 외에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왕년에 연예인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미인이었던 엄마의 늙어버린 얼굴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저 한 남자에게 배신당한 늙은 여자의 얼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엄마가 저렇게 집이 떠나가도록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딸의 심정을 누가 알까.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심장이 아파서 미칠 것 같았다.
엄마가 젊고 예쁘던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남자는 파렴치하게 엄마가 늙자 다른 젊은 여자를 찾았다. 새 여자의 어린 자식까지 같이 키우며 셋이 알콩달콩 살기 위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엄마를 물고 배반할 타이밍만 가만히 노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알고 말았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청부살인이라도 해서 새아빠를 죽이고 싶었다.
끔찍한 2022년이었다.
해가 바뀌자마자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한 달 중 열흘 이상 병원을 들락날락거렸다. 아픈 곳도 매번 달랐다. 수술도 두 번을 했고, 코로나와 몸상태 때문에 회사를 관둔 지 1년이 넘어가니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내 곁에 고맙게도 이 모든 상황을 묵묵히 함께 지켜내 주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기댈 수 있는 곳이라곤 사랑하고 의지하는 그 남자 하나뿐이었다.
그 역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백수 아닌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좋은 직장은 일을 못하는 동안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만큼을 지급해 주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내게 아낌없이 나누었고, 더 어려운 때에는 대출까지 받아 내 생계를 책임져주었다.
2020년 초에 만났던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사랑이라며 사회격리 분위기에 맞물려 꼼짝 않고 집안에 매일 붙어있는 게 그저 행복하고 좋았다.
내가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되는 여자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그는 나를 많이 사랑했고, 다정했으며 나와 모든 걸 함께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둘 다 결혼의 아픔을 한 번씩 겪은 상태였다.
그래서 더욱 깊이 서로를 이해하려 애썼고, 남자친구였지만 남편이었고,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가족이었다.
우리는 매일밤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해 밤새도록 대화를 나눴다.
그의 집은 우리 둘만의 공간이기도 했고, 특별한 일이 아닌 날을 제외하고는 우린 늘 함께였다.
1년 반 만에 새 직장을 얻었다. 몸도 좀 나아졌으니 가장 시급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너무 미안해서 더는 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잘 흘러가지 않았다.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회사는 갑자기 여러 문제가 생겨 어려워졌다. 빨리 다시 직장을 옮겨가야 했는데 내가 마땅히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애가 탔다.
반면에 그는 그즈음 회사에서 좋은 입지를 갖추었고 슬슬 코로나 종식을 대비한 업무가 시작되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매일매일 붙어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우리는 자주 싸우는 편이 아니었다.
가끔 말싸움을 하게 되면 둘 다 자존심이 세긴 했지만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주는 게 일상이었다.
선후배들을 만나러 갔던 날,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면서 주는 선물을 차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의 전화를 두 번 놓쳤던 것이 고작 싸움의 시작이었다.
그가 그날따라 계속 짜증을 부리자 새직장을 찾으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던 있던 나는 오랜만에 같이 짜증을 냈다. 그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며 그날 저녁 만나기로 한 약속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저 그것 뿐이었다.
이상했다. 이쯤이면 전화가 올 때가 되었는데 이번엔 너무 오래가는 느낌이었다.
세어보니 열흘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