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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Sep 18. 2024

13. 아나이스의 꿈

 

지난해 성탄 때, 처음 봤던 아나이스의 얼굴과 사뭇 달라진 표정.

초등학교 5학년 유급당한 억울함으로 잔뜩 뿔난 있던 꼬맹이의 얼굴, 그저 피하고 싶은 맘으로 마치 가재처럼 나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던 그날과는. 

오늘은 금방 핀 아침 나팔꽃처럼 환한 얼굴로 다가와 내 옆에 앉더니, 곧바로 어린이용 미용 도구를 보여준다. 

“난, 기필코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꼭 될 거야. 네 머리도 예쁘게 해 줄게.”

“그래? 고마워. 기대할게.”

오늘 헤어숍에서 있었던 일과 개나리빛깔 꿈을 참새처럼 쉬지 않고 짹짹. 

그 나이 또래다운 아나이스의 쫑알대는 수다를 듣고야, 비로소 안도한 나.   

   

꼬맹이가 자러 간 뒤에 이자벨, 

“헤어디자이너는 5번째 꿈이야. 또 바뀔걸, 아마도.”

우리 둘 다, 소리 내어 웃었다. 

‘미래 직업’에 관한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하여 헤어숍으로 현장견학을 다녀온 뒤, 내일 곧바로 헤어디자이너가 될 듯이 들떠 있던 아이.  

꼬맹이가 제출한 현장답사 내용을 토대로 교사가 개별 상담하며, 단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라는 이자벨의 설명을 들은 후, 떠오른 나의 유년시절.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이 느닷없이, 

“너희들, 꿈이 뭐냐? 차례대로 말해 봐, 반장부터.”

“대통령요!” 하고, 주저 없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래의 대통령 옆에 있던 나에게,

“부반장, 너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요!”

“국어 선생 하지 말고, 기자 해라!”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섬마을 초등학교에 처음으로 도서관이 생겼다. 담임은 매일 책을 골라서 나에게 준 후,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했다. 

미처 다 못 읽은 책은 수업시간에라도 마저 읽고 나서, 완성된 독후감을 제출한 뒤, 귀가하라고 지시했다. 

수업 듣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내 취향인 동화대신 역사이야기나 신화만 골라주는 것은 별로였다. 

그 기간 동안에 계속된 이런 특별 훈련 덕분에 책 읽기에 몰입했고, 글쓰기도 또래들보다는 앞서는 결과로 나타남으로써, 어느새 나의 특기가 되었다.     


시퍼런 청 보리 같았던 20대, 글 중에서도 돈 안 되는 ‘시를 쓴다는 것이 배부르고 등 따신 자’의 호사스러운 사치처럼 느껴졌던 시기.

빈농의 늦둥이로서 효도도 급박했고, 미래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나의 20대  삶의 무게는 그다지 녹녹하지 않았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대기업 비서실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오직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묘책으로 느껴졌던 시절.

이런 야무진 결단에도 불구하고, 시적 영감이 시도 때도 없이 비 온 뒤 봄날 아침, 들풀처럼 고개를 쑥쑥 내밀었다. 

충동대로 무심결에 갈겨쓴 나의 메모를 읽은 총무이사로부터 혼쭐 난 후부터, 이물질을 제거하듯이 낙서들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림과 동시에,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고개 내미는 영감들을 몹쓸 잡초처럼 깡그리 뽑아댔다.

어떤 영감도 다시 움트지 못하도록 언저리를 꼭꼭 밟아 누르며, 실적인 필요에 집중하며 확실한 무게로 짓누른 대가로, 내적 속삭임도 어느덧 잠잠.     


순진한 꿈으로 그린 청사진대로, 나의 미래는 화답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사별로 흙벽처럼 무너졌던 나, 다시 일어나 별다른 목적도 없는 채로, 계속 직장을 다녔다.

노쇠한 부모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채무감이 사라진 그 빈자리, 넘치는 허망함으로 오랫동안 골골. 

자신의 뚝심대로 성공한 사람을 보며, 바람이 불어오기도 전에 미리 드러눕는 풀잎처럼 느껴지는 내 모습을 무던히 구박하던 그 시기.  

결국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속심대로 출발한 프랑스!

그 프랑스에서 만난 아나이스와 한국 태생인 나.

전혀 다른 교육 시스템으로, 아주 다른 방식으로 정해진 우리들의 꿈.

비단 꼬맹이와 나, 우리 둘의 꿈만 그럴까? 

    

이란 유학생의 꿈.

처음 만나던 날부터, 자신은 국비 장학생이라고 당당히 소개했던 그녀.

박사과정 필수 과목 수업에서 만난 뒤, 당시 유행하던 레깅스 차림이 아닌 내 모습에 안도했던지, 꼭꼭 숨겨두었던 자신의 꿈을 털어놓았다.

사춘기 소녀처럼, 내가 꼭 들어주기를 신신당부한 그녀의 작은 꿈. 

“한 번만 나와 함께 댄스클럽에 동행해 줘. 제발 부탁이야!” 

“거기 왜 가려고 하는데?”

“한 번도 안 가봐서, 정말 궁금해.”

“한국에서 몇 번 가봤어. 그래서 궁금하지 않아. 아니 1도, 관심 없어.” 

“귀국 전에는, 꼭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

“남자친구랑 가세요.” 

“남자 친구 없어. 잘 알지 못하는 남자와 갈 수도 없고.”

“왜 못 가는데? 구경하고 싶다며?”

“혹시 사고(?) 친 후에 헤어지면, 나 결혼 못해.”

“왜 결혼 못하는데?” 

“들통 나는 즉시, 부모 집으로 쫓겨 가. 그뿐만 아니고, 부모님은 손해 배상도 해야 돼.”

“뭐가 들통나? 또 뭘 배상하고?”

이해도 믿기지도 않는 낯선 소설 같은, 자초지종을 들은 나. 

“야~! 뒷골 땡 긴다! 그만해~!"      


그날 이후에는 그녀와 멀어지고 싶을 만큼, 내 생존도 벅찼던 시기였다. 

피할수록 더 적극적으로 내게 다가서며, 실토한 실존적인 그녀의 꿈.

“지난번 도서관에서, 너랑 이야기하던 키 큰 한국유학생 전공은?”

“꿈 깨. 그 사람, 지금 신혼이야. 부인은 동급생이고.” 

“그 옆에 있던 얼굴 하얀 사람은?”

“그 사람도 유부남이고. 그 부인도 박사과정이야”

“싱글인 유학생은 아무도 없어?” 

“다른 동양인 유학생들은 다들 프랑스인에게 끌린다는데? 넌, 왜 한국 유학생에게 유독 관심이 많아?  

“한국에서는 남편이 직장에서 벌은 돈, 그 부인이 관리한다며?”

“그렇지. 그건 어떻게 알아?”

“너희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게서 들었어.”

“그런데, 한국남자의 월급과 너와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어. 나 한국남자랑 결혼하고 싶거든. 소개해줘.”

“그래도, 너희 나라 사람과 결혼하는 하는 게 더 좋지 않냐?”

“아니야. 내가 박사학위 받고서 귀국한 후, 결혼하더라도 모든 경제권은 오직 남편에게 있어. 내 몫은 남편이 시장에서 사다 준 재료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오직 순종하며 육아에 열중하는 것뿐이야.”

그녀가 갈망하던 꿈은 다소 씁쓸했지만, 경멸할 수 없었던 나.     


베트남 새댁, 린의 꿈

베트남에서 고교 프랑스어 교사였던 40세인 올드미스.

그녀는 57세인 프랑스남자 파퐁에게로 국경 너머, 멀리까지 시집(?) 왔다.

거리가 너무 먼 나머지, 상대방에 대해 세세히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만큼이나 태어난 나라를 떠나고픈, 로맨틱한 영화 화면으로 유혹당한 나머지, 몽환 속으로 날아온 것이었을까?

꿈은 언제나 공짜다! 꿈은 공짜로 맘대로 그릴 수도, 또 공짜로 색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이 현실과 맞붙는 순간부터 격렬한 투쟁, 지불해야 하는 지점이다!     

린의 남편 파퐁은 멀리서 보면, 은백색 머리와 푸른 눈이 잘 어울리는 호인  같은 풍채로서 손색없는 외양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미식가인 그.

마무트에서 최고의 갖가지 비싼 요리 재료를 사는 바람에, 언제나 쇼핑카가 기우뚱거릴 정도로 넘친다.

아주 흐뭇해진 그가 번들거리는 목소리로, 아내인 린에게,

“오늘 구매한 한 금액이, 린이 재직했던 고교 월급보다 훨씬 많지?”

애매하게 웃는 린에게, 분명한 답을 듣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이.

“두 달 벌어야만, 이 만큼 살 수 있을 걸. 내 말 맞지~?”

왕처럼 군림하는 파퐁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지던 린을 보며, 씁쓸했던 나.  

어떤 꿈도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의 그 비정함을 목격한 오후!  

이런 모습이었을까, 린의 꿈?        


기나에서 유학 온 외과수술 전문의.

프랑스남자만큼이나 옷차림에 신경 쓰는, 그 나름대로 멋쟁이.

그가 실습하는 종합병원이 카페 바로 뒤쪽이라, 참새 방앗간처럼 거의 매일  드나들며, 웃는 모습으로 먼저 인사를 하는 태도에 결국 서로 말문을 텄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오늘 저녁, 나랑 함께 식사할까요?” 

“같이 자려고?”

“너무 직선적이다!”

“이방인이 맨홀에 빠지지 않으려면, 표현은 명료하게!” 

당황해서 말문이 막혀서, 일순간 멍해진 그에게

“자고 난 뒤, 나랑 결혼하나?”

“네가 원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

“지난번에 욜랑과 얘기할 때, 본국에 부인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3명이니까, 한 번 더 결혼할 수 있어.”

“너, 완전히 강도구나!”

“소 1마리 값이면, 언제든지 새 신부는 구할 수 있어.” 

아무튼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이란도 베트남도 아프리카도 아닌, 한국에 태어난 불변의 현실에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주먹구구식 미흡한 교육시스템일지라도!     


프랑스 교육 시스템에 ‘미래 직업’ 과목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그날,

꿈을 미리 경험하는 선진교육 혜택을 누리던 아나이스가 부러웠던 나.

매료된 실제 이유는 적합한 직업을 찾아가는 이런 교육시스템을 통해, 상대방을 통한 ‘대체 발광체’가 아닌 개인 존재가 ‘자체 발광체’ 임을 자각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나이스의 꿈은 또 바뀔지도 모른다. 

꼬맹이가 더 적합한 꿈, 존재감이 빛나는 업종을 발견하는 그 순간에는!

‘자체 발광체’로서 꿈을 달성한, 자존감 넘치는 그 예쁜 얼굴이 보고 싶다.      


사거리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사거리(carrefour)’라는 논문 제목을 택했던 한국 유학생의 생각이 뜬금없이 궁금해진 나.

살아오면서 좌절된 꿈 앞에 서서, 여러 번이나 멈춰 섰던 사거리!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진정으로 가고 싶은 길일까?” 묻거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이 길로 가면, 더 성공할까?” 

아니면 더 추상적으로 “다방면으로, 더 번듯한 길일까?”

철 지난 도덕적 관점으로 “더 옳은 길일까?”

수많은 의문으로 지그재그로 헤매다가, ‘글바트로스의 표류기’를 쓰는 나. 

아나이스처럼 어릴 적부터 단계별로 미래직업훈련을 받았더라면, 더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자존감 있는 존재로서, 노동의 성취감을 느끼며 살았을지도.      

그 예전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지시(?)대로, 기자로서 통전면 기사를 필두로 다양한 기사도 써봤으니, 그분이 어쩌면, 내 꿈의 등대지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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