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나 혼자만.
욜랑도 필립도 생선보다는 육류를 더 좋아한다.
필립 하루 일과는 오전 10시경에 정육점에 가서, 그날 입고된 고기 중에서 가장 품질 좋은 육질을 사 오는 일이, 가장 생산적인 업무다.
필립이 구입해 온 고기에 따라 점심 메인 메뉴가 정해지는 셈.
물론, 출발 전에 필립은
“베베(bébé;아기), 고기는 뭘로 사와?”
‘베베'는 욜랑의 애칭이다.
카페 식구로 합류하고 얼마 지난 뒤, 서빙 직원 카트린느가 내 귀에 대고 쑥덕쑥덕,
"필립보다, 욜랑이 17살이나 더 많아. 말하면 절대 안 돼."
그날 이후, ‘베베’라는 호칭이 무척 낯설게 들렸고, 가끔은 불편하기조차.
시간과 함께 닭살도 더 이상 돋지 않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들릴 정도다.
점심식사 메뉴는 요리 방법이 가장 간단한 스테이크 위주다.
생전 처음 맛보는 다양한 스테이크를 먹는 점심시간은 처음엔 아주 만족했는데, 날이 갈수록 스테이크 양도 부담스러웠고, 더 이상 새롭지도 흡족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내 옆에서 앉아 먹는 필립의 접시를 보면, 식욕이 싹 가셨다.
고기 표면만 겨우 익힌 상태를 즐겨 먹는 그가 나이프 질을 할 때마다, 접시에 묻어나는 피는 비위가 약한 나의 식욕을 깡그리 사그라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광경.
우리 둘 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필립 식습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도,
“너, 최고 품질의 육질을 너무 구웠네. 숯을 만들어서 먹는구나!”
아버지는 밥상에 육류가 없는 날은 생선이라도 있어야 화를 내지 않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육류를 많이 먹고 자란 만큼, 좋아하는 육류인데도 식탁에 매일 올라오는 바람에 질려버렸다.
다행히 눈치 빠르고 심덕 좋은 욜랑이 나를 위하여, 마무트 갈 때마다 포장된 손질 생선살을 사다가 냉동 전용 냉장고에 늘 보관해 놓는다.
대부분 나 혼자 먹는 냉동실의 생선은 한국에서 명절이나 제사 때에, 생선 전으로 주로 먹었던 맛이다.
따라서 냉동된 흰 살 생선 맛은 담백하지만 정제된, 내 입맛에는 절반 정도의 생선 맛으로 느껴져서 좀 아쉬웠다.
유년시절 남해섬 고향집.
그 앞으로 흐르던 강은 만조 때가 되면, 밀고 올라온 바닷물로 작은 다리가 잠겼고, 바닷물 따라 올라온 숭어 떼가 달빛아래 튀어 오르곤 했다.
청년시절, 처음 들었던 슈베르트의 송어가 낯설지 않았던 것은, 고향집 강물과 숭어 떼 풍경이 떠올랐던 덕분이다.
20대부터는 거주지도 직장도 부산 영도였던 만큼, 바다냄새는 고향집 냄새처럼 친숙할 뿐 아니라, 비린 갯냄새가 코끝에 와닿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다.
어제, 마무트에서 태종대 바다 빛깔 같은 싱싱한 고등어를 발견!
반가운 와중에도 눈동자 상태까지 꼼꼼하게 점검한 후, 날것 그대로 사 왔다.
시퍼런 고등어를 보는 순간, 북적대던 자갈치 시장광경도 떠오를 정도로 향수병이 깊어지던 시기.
프랑스에서는 다듬지 않은 상태의 생선이 엄청나게 싸다는 것을 이미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거 웬 떡이야!”
날것 그대로인 등 푸른 고등어를 주저하지 않고 냉큼 샀던 것은, 그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손질한 후, 요리해서 먹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 점심에 프라이팬에 한 마리를 굽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오래간만에 만족한 점심을 먹고 나서, 느긋해진 맘으로 다시 도서관에 왔다.
카페로 점심 먹으러 올 때에 대부분 책이랑 가방을 그대로 두고 오는 것은
자리가 바뀔 때마다, 낯선 느낌으로 시간이 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함에서다.
지정석 같은 자리에 앉은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졌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계속 하품이 나온다.
이미 3잔째 맛없는 자판기 커피를 마셨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효과는커녕 몸에서 힘이 자꾸 빠져나가면서, 잠수함처럼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는 이상한 느낌이다.
결국, 책을 대충 챙겨서 가방에 넣고, 카페로 돌아왔다.
다소 놀라는 욜랑에게
“그냥, 좀 피곤해요. 내 방에서 좀 쉬면, 곧 괜찮아지겠지요.”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욜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필립, 빨리 911 전화해서 앰뷸런스 불러요.”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아요.”
“거울 한번 봐. 정말 괜찮은지.”
거울을 보니 웬 낯선, 처음 보는 괴물 같은 얼굴이다.
“얼랄라 아! 내 얼굴이 왜 이래요?”
너무 부어오른 나머지, 눈은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모를 정도이고, 위아래 양 눈꺼풀이 서로 맞닿은 채로, 그냥 금만 그어져 있는 형국!
엄청나게 부어오른 볼 때문에 콧구멍도 보이지 않고, 입도 어디론가 숨어버린 더 이상 사람의 얼굴이 아닌, 참으로 기이한 몰골이다!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사실은 얼굴 전면이 팽창한 나머지 실제로 웃을 수는 없었다.
웃고픈 나의 느낌은 전달됐던지, 웃음보를 터뜨린 욜랑.
곧바로, 도착한 앰뷸런스 응급의사는
“고등어 식중독이네요. 지금부터, 1시간이 고비입니다! 독이 식도로 올라오면, 호흡기가 막혀서 질식사가 올 수도. 목구멍이 팽창되기 시작하면, 곧바로 목을 절개해서 독을 뽑아낼 겁니다!”
나의 희한한 얼굴 몰골에 웃고 있던 욜랑도 필립도 그리고 나까지, 우리는 동시에 얼어붙었다.
1시간이 지난 뒤에야, 염려되는 모습으로 떠난 의사,
“옆에서 계속 지켜봐 주세요. 호흡 곤란이 오는 즉시, 앰블 부르고. 아주 드물게 독성이 강한 고등어가 있는데, 운 나쁘게 그놈을 먹었나 봅니다. 만약 면역체계가 손상됐다면, 푸른 생선 알레르기 반응이 올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심각해요. 더 이상, 등 푸른 생선 먹지 말아요.”
다행히, 다음날 아침까지 호흡기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얼굴은 더욱더 부어올랐고, 그 팽창된 얼굴 위에 빨간 좁쌀 같은 것들이 잔뜩 돋아나, 흉물스러운 괴물 그 자체!
화장실 갈 때는 앞이 보이지 않아, 두 손으로 눈꺼풀을 벌리고 걸을 정도. 그야말로 목불인견!
정말로 별의별 수난을 다 겪는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긴 여름 방학 초여서,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끔찍한 부은 얼굴은 거의 40일 넘게 지속되었다.
어쩔 수 없이, 두문불출해야 하는 지루하고도 갑갑한 칩거!
대학 도서관에도, 시립 도서관에도, 갈 수 없었다.
두 곳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을 걱정하며, 카페로 전화한 박사과정 동급생 아니(Annie).
욜랑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서 병문안을 왔다.
노크 후, 들어서던 그녀.
처음엔 기이한 내 모습에 잠깐 주춤하다가, 곧바로 방을 박차고 나갔다.
문 밖에 서서 한참이나 웃고 나서야, 겨우 진정될 정도로 뭉개진 내 얼굴!
사려 깊은 그녀가 가져온 소나무 분재!
“동양에서 온 끈질긴 생명력의 나무래요. 이 나무처럼 끈질기고 강해지길 바라는 내 맘, 알지?”
그날, 우리는 그동안 나눈 적 없었던 깊은 속내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떠나면서, 그녀가
“완쾌되는 대로, 노르망디지방 수도원 순례여행 가자.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몸만, 오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