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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Jul 05. 2024

2. 기적이야!

기적이야!

고풍스러운 카페 안. 말쑥하고도 세련된 느낌의 정장 차림인 그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맞은편에 앉은 후, 작은 보석함을 열고, 눈부신 다이아 반지를 꺼낸다. 반지는, 내 손가락에 꼭 맞았다. 다행이네! 소리치는 순간,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참으로 야속했다. 그 달콤한 꿈,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독히 독한, 프렌치 커피만, 사발만 한 잔으로 마셨다. 맛있는 바게트로 불어난 체중과 먹은 후, 몽롱한 정신으로, 하루 분량의 단어 암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불불사전(어린이용?, 대략 870페이지)을 들고 스튜디오를 나섰다. 평소처럼. 강변, 나무 그늘 편안한 곳에 자리 잡는다. 오늘, 암기 분량(30페이지) 속에는, 부디 어려운 단어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화살기도와 함께,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열면서, “개꿈만 꾸고” 구시렁구시렁~~.     

오늘 분량을 무사히 마친 오후 6시. 오늘 암기한 부분, 발음 교정 수업 장소인 카페로 가는 길이다. 길 저쪽에서, “쁘띠킴”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의  과외 선생님인 욜랑이, 큰 몸집을 좌우로 흔들며, 달려오는 모습. 나를 부둥켜안은,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대며, 연신 뺑뺑이를 돌려댔다. 마치 작은 팽이처럼 돌아가던 내 귀에 들린 말, “대학원 입학시험 합격! “어? 발표는 내일, 월요일인데?” 카페 단골인 고교영어 교사인 오셀부인이 전화했단다. 그녀 친구인 학장과 만난 자리에서, ‘유일하게 합격한 외국인, 그 신기한 동양인’이 바로 나라는 것! 공식 발표 전날인, 8월 말 마지막 일요일봄날 제비처럼 날아든 희소식! 우리는 친 모녀처럼, 서로 부둥켜안고는, 울다가 웃어댔다.       

6월 30일, 한국에서 미리 지불한 랭귀지스쿨 수업은, 이미 종료됐다. 수표가 든 손가방의 귀환을 기다리는 질식할 것 같은 긴 여름. 다음 단계에 등록할 돈도, 귀국 행 비행기 표를 구입할 비용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던 나에게, 강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백조는 참으로 부러웠다! 누군가, “왜 귀국하지 않으세요?”라는 직구 물음에, 수표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대신 “대학원 학비가 일 년에, 단돈 68,000원이라니… 대학원 입학시험, 시도해 보려고요.”     

7월 1일, 강변 그늘이, 나의 야외 교실이 된 첫날이다! 새벽부터 시작된 기도와 더불어, 불불사전을 소리 내어서 외우는 지옥 훈련으로 인해 식욕까지 소멸된, 어느 저녁에 들려온 노크 소리. 문 밖에 서있는 처음 보는 한국 남자. 파리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거주지는 강 건너 구역이란다. 소문 듣고 찾아왔다는 그가, 두꺼운 책 한 권을 나에게 건넸다. ‘세기별로 묶은 프랑스 문학사’다. 어려운 대학원 입학시험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따뜻한 말을 남기며, 떠난 그와 함께, 내 감동도 뒤따라갔다. 그 책을 펼치는 순간, 흰 종이에 작은 검은 글자가 빼곡하다는 것뿐인 현실 앞에서, 나는 절망했기 때문이다! 그가 주고 간 책과, 하루 종일 씨름한 후, 결국 눈물을 훔치면서, 아예 덮었다.      

그가 떠나면서 중얼거린, ‘시험은 주어진 주제에 대한 논술’이라는 말은, 막막한 바다 위에 표류하는 나에게, 그나마 등대의 희미한 불빛 같았다. 나의 생각대로, 몇 문장씩, 매일 완성했다. 내가 임의대로 선정한 주제에 따라, 논술 답안을 만들어가며, 쓰고 지우기 매일 반복했다. 드디어 논술 답안지 완성! 수정과 동시에 필사 시작, 처음엔 5시간, 3주 후에는 1시간 30분 정도.      

드디어, 시험 당일, 내 앞에 놓인 A4 3배가 정도의  큰 종이. 

주제는 프랑스 문학사 중에서가장 좋아하는 세기와 작가 및 작품을 소개하고좋아하는 이유와 특징을 작가와 작품을 접목해서 논술하시오 ‘.

(2시간 동안, 4~8페이지 분량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무슨 조화일까? 논술 주제가 동일하다, 큰 맥락에서! 그런데, 아뿔싸! 긴장 탓인지, 수도 없이 썼던 논술 내용이,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심호흡부터 했다.  

나의 신원 소개를 필두로프랑스에 온 이유를 전개하고중반부터 19세기 불문학 매력을 어필한 후매료된 시인 보들레르와 그의 시집 악의 꽃에 수록된시인의 자화상인 시 알바트로스를 인용한 결론으로마무리했다

다행스럽게도, 5페이지 분량을 꽉 채운 논술이 끝난 시간은, 1시간 45분!      

미운 오리 새끼, 백조로 신분 상승? 

냉기는 사라지고, 초대된 친교 모임에서 들은 나의 모습은 “강변 나무 그늘에서, 하루 종일 앉아 펑펑 노는 그 또라이가, 대학원 시험 칠 거라네!”였다. 연이어 알게 된 사실은, 박사과정은 석사 논문만 제출하는 대신, 대학원만 논술 시험이 있다는 시스템도. 시험장에 프랑스인들뿐인 광경이, 비로소 이해된 순간이다. 

기적? 사람의 간절한 염원, 그 위에 피 눈물 나게 노력하는 손과, 하늘의 자비로운 손이 맞닿는 순간,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

안간힘으로 쥔 펜에 짓눌린 반쯤 납작해진 손가락들! 하루에 20시간 이상, 새로운 문장을 만들고 수정하며 그리고 필사한, 그 끝에 생긴 후유증이다. 우스꽝스럽게 납작해진 손가락들 생김새조차, 그분께서 꼭~! 눌러 찍어 주신 인장 자국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아이처럼 마냥 기뻤다, 몇 달 동안은!

그해, 8월 마지막 일요일, 나의 캡틴이 기쁨으로 외친 말, 

7년간 글바트로스를 생존시켜 준, 그 강력한 말,

기적이야

C'est un mi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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