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첩첩산중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근처에 편의점이나 배달을 시킬 곳도 마땅히 없다. 혼자 살던 시절엔 교대 근무를 하며 불규칙한 식사시간과 잘못된 식습관에 굶다 폭식할 때도 많았고, 그마저도 늘 배달 앱이나 외식에 의존해 오곤 했었기에 그동안 맵고 짠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져 있던 내겐 그야말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첩첩산중의 시골에 오자마자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고기 굽는 것부터 음식 하는 방법과 간 맞추는 걸 혼자 터득해야 했고, 설상가상 회나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이곳엔 마땅한 횟집도 없어서 늘 인근 지역들을 나가면 초밥집을 가거나 들어오는 길에 마트를 들러 회부터 사 오곤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도시의 마트를 가는 날은 모처럼 예쁜 카페를 가기도 하고 이곳에선 구할 수 없는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날이라 내가 좋아하는 날이기도 하다.
내가 도시에서 누려온 모든 일상들이 시골에선 어쩌다 한 번씩 오는 소중한 순간이 된 지 오래다. 도시에 갈 때면 꼭 내가 좋아하는 새우도 사 와서 그날은 남편이 새우를 구워주고 하나하나 까준다. 도시에 다녀온 이후에만 마주할 수 있는 이런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이 늘 기다려진다. 시골에서의 삶이 여러모로 불편하고 싫긴 하지만 일상 속 일주일에 한 번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닫고 있다.
내가 만든 고구마빵와 고구마케이크
처음 시골살이를 할 땐 외롭다는 이유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하루 종일 과자를 달고 산 탓에 늘 부어있고 피부도 안 좋아지고 살이 쪘다. 시골살이를 하면 건강해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말과는 다르게 그 무엇도 채울 수 없는 고질적인 외로움은 배가 불러도 무언가를 밀어 넣게 만들었고 자꾸만 나를 망가뜨렸다. 눈떠서 잠들 때까지 항상 자극적인 것들을 먹고 있었고 종종 토하기도 했다. 울면서도 무언가를 밀어 넣는 내 모습은 나조차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건강해지겠다는 결심을 한 뒤, 요즘엔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로 디저트나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편이다. 대체로 구하기 쉬운 구황작물로 된 디저트들이다. 다양한 고구마 빵 레시피를 찾아서 남편과 내 입맛에 맞는 고구마 빵을 종종 만들어 먹는다. 과정이 조금 귀찮기야 하지만 맛있게 먹어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늘 요리를 할 때면 열중해서 만든다.
직접 만든 감자칩
끊기 힘든 과자는 더 이상 직접 사진 않지만 에어프라이어로 올리브유와 소금만 약간 둘러 감자칩을 직접 만든다. 하나하나 직접 썰고 만들고, 모양도 다양하게 만들어보며 뭐가 더 맛있는지 비교해 본다. 종종 실패해 보기도 하면서 만들다 보면 먹을 때도 기쁜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먹게 된다. 내가 직접 요리하며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이후로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여드름도 사라졌고 부기도 빠졌다. 매일 아침을 가벼운 몸으로 일어나는 느낌이 얼마나 산뜻한 기분인지 이제야 알았다.
요즘의 식단들
원래 샐러드는 입에 대지도 않던 내가 요즘엔 혼자 먹을 때도 꼭 샐러드나 야채는 조금이라도 곁들이며 건강하게 식탁을 채우려고 한다. 하루 한 번은 과일도 챙겨 먹으려 한다. 면이 먹고 싶을 때면 밀가루 대신 두부 면으로 파스타도 만들어 먹고, 두부로 그라탕을 만들어 먹는다. 좋아하던 유부초밥도 최근엔 두부로 채워 먹고 있다. 식사 시간에 나름의 규칙도 만들어 하루 여덟 시간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나 스스로 음식을 통제하는 느낌이 생각보다 좋았다. 음식을 통제하고 나니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요즘엔 음식들을 의미 없이 밀어 넣어 힘들어하던 시간에 홈트레이닝도 하고, 독서를 한다거나 글도 쓴다. 조금씩 변화되는 일상 속에 내게 찾아온 다른 일상들은 나 스스로도 놀라웠고 기뻤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간헐적 폭식에 시달리고 있고,
참지 못하고 밀가루라도 먹은 날은 하루 종일 죄책감에 힘들어한다. 음식과의 사투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아마 고착화된 습관이 고쳐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당장 시골에 살며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는 이점이 있으니 굳이 멀리까지 나가 찾지 않으면 먹지 않을 수 있다. 이 과정이 너무 힘들긴 하지만 부디 내가 이 순간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언젠가 반드시 건강해질 거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