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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Dec 19. 2024

시골에서의 택배기사님의 존재

어둠을 밝히는 소중한 빛

내가 사는 강원도 산골에서의 삶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배달 앱을 켜면 '텅-' 비어있어 이사를 온 직후에 배달 앱은 진작에 지워버렸고, 인근에 편의점이나 그 흔한 카페나 편의 시설들도 전무해서 대체로 모든 걸 택배로 주문해서 생활을 한다.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면 슈퍼가 있긴 하지만 작은 규모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인근 도시인 포천이나 춘천으로 나가 일주일 치의 식량을 사 오고, 신선식품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어 당장 먹을 소량만 사 오고 대부분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절인 음식들을 사 오는 편이다.
당장 필요한 게 있어도 한 시간 거리에 매장이 없는 곳도 많다. 도시에는 흔하디 흔한 다이소 조차도 산을 넘어 한 시간을 더 운전해야 한다.
시골의 열악한 생활 환경 때문에 매번 필요한 물건을 사러 도시까지 나가기도 힘들어서 웬만한 건 택배로 주문하곤 한다. 야채들부터 시작해서 정말 별 걸 다 택배로 주문하기 때문에 매일 택배를 주문하는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택배 기사님의 존재는 엄청나게 감사한 존재이다. 폭설이 내리거나 궂은 날씨에도 산골까지 매일같이 와주시는 감사한 분들.


뉴스를 보니 시대가 발전해 도시에서는 당일 배송이나 이름도 생소한 새벽 배송 같은 것들도 된다고 하던데 이곳은 당연히 예외이지만 나는 하루 이틀 뒤에 물건이 도착하는 것만 해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항상 외진  이곳에 배달을 올 때면 해가 진 늦은 시간에 택배기사님들이 오시곤 하는데,
이제는 그 시간을 기억해서 택배가 오는 시간이면 먼저 베란다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도 보기 힘든 무료한 시골 생활을 하면서 택배 트럭이 오는 걸 보는 게 요즘의 내겐 큰 삶의 낙이다.
캄캄한 어둠 속 저 멀리서부터 트럭이 보이면 택배 트럭인 걸 바로 알아본다.
늘 오시는 기사님들이라 어둠 속에서도 길을 척척 찾으시는 것 같은데 논밭을 가로질러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능숙한 운전솜씨에 늘 감탄을 한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들을 환하게 비추며 다가오는 트럭의 빛을 보면 마치 이 세상을 밝히는 큰 빛을 보는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단지 앞에 잠시 멈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택배를 나누시고는 분주하게 작은 아파트 단지 곳곳을 돌며 엘리베이터 하나 없는 곳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신다.
택배 기사님이 계단을 오르실 때마다 어둡던  각 층의 계단 불빛이 환하게 켜진다.
인적 드문곳에서 택배 기사님들이 밝히는 빛에 나는 늘 위로를 받는다.



이 시골에 모든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마트에 가면 캔 음료도 몇 개씩 사 와서 우리 집까지 와주시는 택배기사님에게 드린다.
기사님이 우리 집 쪽으로 오실 때 즈음이면 현관 앞에서 기다리다가 음료를 드린다.
얼마 전에는 내 택배는 없었어도 윗집에 배달을 하러 오신 기사님과 집 앞 계단에서 마주쳐 음료를 가지고 나와  ' 늘 여기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얘기하며 건넸더니 이 집에 배달을 온 게 아닌데 주시냐며 감사하다고 하셨다.
제가 더 감사하다고 얘기하며 늘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서의 삶은 여전히 막막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기사님들의 존재가 있어서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다.
마치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듯 괴로운 내 삶 속 따뜻한 빛을 가지고 와 주시는 분들 덕에 일상 속 큰 위로를 받는다.
불편한 이곳의 삶에 편함을 가져다주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해 주시는 택배기사님들께 정말 감사하다.
열악한 이곳에서 택배 기사님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그 어떤 발걸음보다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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