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꽃 Dec 16. 2024

외로운 시골의 긴 밤들

외로움엔 약이 없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추위가 반겨주는 시골에서의 아침,
어김없이 남편의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남편이 출근해서 먹을 과일이며 간식을 쌌다.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옆에서 가방 안에 도시락통을 주섬주섬 담으며 오늘도 늦냐 물으니 일러도 밤 여덟시가 넘을 거라며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할 테니 어디든 놀러 갔다 오라고 한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냐고, 나라고 혼자 매일 돌아다니고 싶어서 돌아다니는 줄 아느냐고.
원망 섞인 말을 툭 뱉어내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또다시 남편이 1층에 도착하기 전, 하얗게 입김이 불어지는 추운 베란다 앞에 서서 남편의 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고 어김없이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다들 분주하게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출근길에 분리수거도 하고 앞 유리창의 성에를 긁고 일터로 떠났다.
 
 
 
그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출근길 사람들을 보는 게 남편 배웅과 마찬가지로 꽤 오래된 루틴이다.
동네 사람들과 서로 인사는 하지 않지만, 가끔 출근길에 늘 보던 사람들을 동네에서 볼 때면 혼자 반가워하곤 한다.
그나마 있는 번화가와도 동떨어진 산골짜기에서의 삶은 일상이라고 얘기할 만한 게 딱히 없어서 이젠 남편 출퇴근을 지켜보는 것도 나의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항상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갈 곳이 있어서 부럽다..’ ‘나도 출근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매일 아침이면 일자리 사이트를 들어가 화천읍이나 근처 지역들에 간호사 공고가 있는지 본다.
기대조차 하지 말라는 듯, 역시나 병원 하나 없는 이 시골에서의 일자리란 하늘에 별 따기이다.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자리도 찾기가 쉽지 않다.
처음 간호학과를 갔을 때 어느 교수님이 ‘병원은 어디에나 있으니 어디서든 취업할 수 있다’ 말씀하신 게 얼핏 생각난다.
그래, 나도 남편을 따라 화천에 오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병원이 없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렇게 처참한 일자리 공고를 보고 나면
나는 세상에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잠깐 우울해하다가 글을 쓴다.
그래도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다보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금방 지나간다.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하루를 어떻게 빨리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내 일상의 대부분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거나 혼자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어딘가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한동안 책도 많이 읽었는데 책을 읽다가도 어딜 가야 하고, 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요즘 집중을 잘 하지 못해서 책은 읽지 않는다. 시골에 살면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불안한 마음 만큼이나 이곳에서 더 바빠졌다.
 
 
 
목도리를 몇 개나 만들자마자 또다시 목도리 털실들을 잔뜩 주문한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하루에 목도리를 두 개씩 만들었다.
뜨개질로 다양한 모양의 수세미도 만들고, 모루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트리를 만들기도 했다.
집에는 내가 만들어놓은, 앞으로 만들 것들이 구석에 쌓여갔다.
남편은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해서 나도 꼼짝을 하지 않고 집에서 다양한 것들을 했다.
이것저것 만들던 중간에는 수시로 청소를 하거나 집에서 홈트레이닝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에 또다시 손을 뜯기도 하고,
끝내는 늘 그렇듯 내가 왜 이렇게 살게 된 건지 과거의 날 탓하며 울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텐데- 생각하면서.
그렇게 내 삶을 비관하며 울다가도 바깥에 누가 차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베란다로 부리나케 나가봤다.
가끔 지나가는 고라니 외에 그 어떤 동물도 보이지 않는 이곳.
사람이 돌아다니는 걸 보는 것 자체도 내겐 온통 신기한 일상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나조차도 안타까웠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다 혼자 잠들던 밤에는, 옆집에서 주말이라 손님들을 초대했는지 왁자지껄 시끄럽게 깔깔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밤늦게 사무치는 외로움에 귀를 틀어막고 잠들었다.
오래된 낡은 아파트라 소음하나 차단되지 않는 이곳에
벽을 타고 더 크게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은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새벽 한시가 넘어서야 요란하던 소리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꼭 소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온 이후에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간신히 잠들어도 이곳에 산 일 년간 꾸준히 악몽을 꾸는 탓에 매일 가위에 눌린다.
긴 밤을 뜬 눈으로, 다시 악몽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잠들지 않는 날도 늘어갔다.
항상 피곤하고 늘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와 있다.
요즘엔 거울을 보기 힘들다.
수척하고 침울한 얼굴을 한 거울 속 내가 너무 낯설다.
 


온갖 외로움들로 점철된 이곳에서의 삶이 지겨움으로 느껴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외딴섬 이방인’
 
나는 이곳에서 외딴섬의 이방인이다.
얼마 전 불현듯 떠오른 이 단어는 떠오른 직후부터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물론 섬과는 다르게 구불거리는 가파른 산들을 넘어 내가 사는 곳으로 올 순 있지만 길이 있어도 굳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이곳이다.
벌써 이곳에서 산 지 일 년이지만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고, 날 볼 수도 없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투명 인간일 뿐이고, 언젠가 떠날 이방인일 뿐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 산골짜기에서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수단은 가끔 글을 올리는 이 브런치가 내겐 전부였다.
일 년간 이미 익숙해진 외딴섬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떠날 날이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나는 기약 없는 떠날 날만 바라보며 산다.
외딴섬의 이방인의 삶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곳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대도 아무도 내가 사라진 줄도 모를 거다.
언젠가 떠날 이방인이었으니까, 떠날 때가 되어 떠나버린 줄로만 알겠지.
아니다- 내가 여기 살았는지조차 모르겠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떠날 이방인일 뿐이니까.
시골에서의 외로움은 독이다. 서서히 퍼지는 독에 나 스스로도 내가 죽어가는 걸 알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지독한 독.
더 이상 내게 외로울 마음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끝없이 외로운 걸 보면 아직 더 외로워야 하나보다.
외로움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외로움엔 약이 없다.
나는 너무 외롭다.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