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시골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
[Prologue] 막연한 시골살이의 시작
충청도 사람인 나는 늘 자연을 벗 삼아 집 옆에 흐르는 하천이나 바로 뒤에 있는 산을 오르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언제나 근처에 산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선 바로 뒷산으로 그림 그리기나 약수터 체험활동을 갔고, 가을이면 할머니가 메뚜기 튀김을 만들어줬다.
주말마다 가까운 계곡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놀거나 솔밭공원에서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다.
놀다 지치면 풀밭에 누워 그대로 잠들어버릴 때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일어나서 다슬기를 잡거나, 예쁜 돌을 주우면서 놀곤 했다. 내가 살던 곳에선 눈에 띄는 모든 게 놀 거리였다. 장난감이 없어도 열심히 자연을 벗 삼아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저녁 즈음이면 당시엔 핸드폰이 없었을 때인데도 엄마는 귀신같이 내 위치를 알고 동네 아이들과 자연을 누비고 있을 나를 찾아왔다.
항상 주변에 자연이 있는 게 너무도 당연해서 나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진 내가 있는 곳이 시골, 그 자체일 거라 생각했다. 가끔 인근 도시에 갈 때면 휘황찬란한 높은 건물과 빛나는 세상에 놀라워했기 때문에 내가 살던 곳보다 더 한 시골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다.
20년을 시골이라 생각했던 곳에 살았던 나와는 다르게 지금의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기 전까진 한평생을 서울 경기권을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처음 데이트를 하던 때에는 서로의 다른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놀라워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나는 남편은 본인이 어렸던 시절에도 내가 겪은 시골은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며 도시에 대해 들려주는 얘기들은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남편이 새삼 도시 사람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어린 시절에 가족과 같이 놀이공원을 간 얘기나 도시 나들이를 간 것도 내겐 정말 낯선 세상 이야기일 뿐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남편의 삶이, 도시 생활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시골 사람이던 내게 도시 사람인 남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끌릴만한 소재였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품었던 도시와 도시 사람에 대한 막연한 환상 덕에 남편과 빠르게 결혼을 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만 살았어도 지금은 직업 상 어쩔 수 없이 시골을 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 남편은 호기롭게 시골생활이 너무 좋다, 지금껏 시골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시골에서 살고 싶다!를 얘기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시골 얘기를 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이 사람이라면 함께 시골에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고.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시골보다 더 한 시골에 살게 된 지금은 그때의 시골 사랑을 외치던 내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오게 된 이곳은 그간 내가 겪었던 시골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의 고향은 '시' 단위의 지역이어서 병원이나 마트, 편의점이 집 근처에 있었는데,
'군'의 '면'에서도 끄트머리에 위치해있는 '리' 단위인 이곳은 근처에 편의점도, 병원도, 아무것도 없는 '진짜 시골' 그 자체였다.
하다못해 가까운 면사무소도 차로 한참을 나가야 하고, 군청이 있는 읍내는 한 시간을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야 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차로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 비상식량을 쟁여놓듯 일주일 치 장을 봐와야 했고, 아프거나 다쳐도 의료시설이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늘 혼자 해결해야 했다.
가뜩이나 외로운 생활에 설상가상 남편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들어오지 못해서 혼자 울던 시간도 많았다.
일 년에 두세 번쯤 편도선염으로 앓는 탓에 열이 40도 넘게 오르던 때에도 남편이 들어오지 못해 아픈 와중에도 서툰 실력으로 죽을 만들어 먹고, 약을 챙겨 먹었다. 한참을 앓다가 다시 깼을 때도 적막한 집에 나 혼자였을 때는 외로워서 눈물이 났다.
울다가도 정신이 들 때 즈음이면 산을 넘어야 있는 한 시간 거리의 작은 의원까지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운전을 해야 했다.
이쯤 되니 불편함을 넘어서, 나는 이곳이 정말 싫었다.
이렇게 열악한 시골에 살기 전까진 나도 내가 시골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다 보니 이곳에서 일 년간 네 번의 계절을 모두 살아냈고 지금은 이곳에서의 두 번째 겨울을 살아가는 중이다.
살다 보니 살아지긴 하다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의 삶이 불편하다.
일 년쯤 살면 적응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곳에서의 매일매일이 새롭고 낯설고 막막하다.
이곳에서의 불편사항이나 홀로 괴로워하던 시간을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그래서 시골살이를 주제로 한동안 쓰지 않던 브런치 북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산다는건 불편한 것도 너무 많고, 힘들긴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여전히 이곳의 자연을 사랑한다는 거다.
외로운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그래도 철마다 피던 예쁜 꽃들, 함께한 자연 속 친구들로 나는 큰 위로를 얻었다.
지금도 나는 내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그 답은 시시때때로 매번 바뀌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될 때까지 답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시골을 떠날지라도 다음에 만나게 될 시골은 얼마나 열악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중엔 그래도 한 시간 거리에 뭐라도 있던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게 막막하긴 하지만 나는 매일이 도전과도 같은 이곳에서의 삶을 앞으로도 이어가려 한다.
이번 브런치 북으로 진짜 시골에서 살아가며 예상치 못했던 고난들과 도전, 그 속에서의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