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기 전, 오랜 시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해 온 나는 우리나라에 병원이 없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학 교수님들은 병원은 어디에나 있으니 이사를 가더라도 이직을 하기도 어렵지 않을 거라 말씀하시곤 했지만 그건 병원이 있는 곳에 산다는 가정 하의 일이었다.
가까운 의원도 산을 넘어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강원도 산골짜기에 살며 일자리가 없는 건 둘째치고 이곳에서 아프기라도 한 날엔 혼자서 사투를 해야 했다. 물론 병원이 없는 탓에 각종 상비약은 쟁여둔 채였지만, 여러모로 시골에서의 삶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당장 내가 아프면 갈 곳이 없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처음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작은 번화가의 카페에서 알바를 했었다.
낮 동안 하루 네 시간의 일자리여도 내겐 일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한 번도 하지 않은 분야라 낯설긴 했지만 매일 갈 곳이 있는 게 좋았다.
하지만 웬걸, 일을 한 지 며칠이 지나자 사장님은 갑자기 하루에 세 시간만 일을 하라고 통보를 했다.
하루 네 시간 일을 하면 삼십 분 휴게시간을 줘야 하고, 그 시간도 다 돈으로 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근로법에 관한 건 잘 몰랐지만 이곳에는 다른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내게 다른 선택지가 없어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매일 짧은 시간 잠시 나와 일을 하고 최저임금으로 하루 삼만 원도 받지 못하며 일을 했다.
한 번씩 출근 몇 시간 전에 나오지 말라고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늘 불안정한 일자리의 시간 탓에 어디에도 갈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혹시나 하루 세 시간이라도 갑자기 날 불러줄까 봐 이곳에 늘 얽매여 있어야 했다.
고작 몇 개월간 카페에서 일을 하며 나는 눈에 띄게 시들어 갔다.
이전까진 일을 하며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 느낀 적은 없었는데,
간호사로 일을 하던 때에도 보람 있었고 누구도 내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일을 할 때 사장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나 무례함은 나 스스로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 느끼게 된 이유였다.
툭하면 신경질적으로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비정상적으로 화를 표출해 내는 사장님의 모습은 언제나 내가 긴장하게 된 이유였고 얼마 안 가 하루 세 시간의 일자리는 내겐 더는 가기 싫은 곳으로 자리 잡혀있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의견을 낼 수도 없고, 무기력하게 그저 따라야 하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또다시 화를 낼까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산 사람에게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했을 때 '이곳이 일자리가 없어서 주인들이 갑질을 많이 한다. 어차피 당신 아니어도 할 사람은 또 있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라는 말을 했다.
어느 정도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익숙해진 무례함을 견디기보단 나오는 편을 택했고 이후엔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에 매일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면서도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건지, 이곳의 일자리들엔 어딜가든 외국인 노동자들만 가득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하늘의 별 따기인 이곳에서 늘 일자리 공고가 올라오는 곳들은 대부분 똑같은 곳들이었다.
한 번은 늘 알바 공고가 올라오던 곳에 손님으로 갔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들어가도 이곳의 다른 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인사는 전무하고, 주문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정신없이 옆의 앳돼 보이는 직원을 타박하고 있었다.
나 외에도 이미 앉아있던 손님이 있었으나 신경 쓰지 않는 듯 큰 소리로 '네가 이런 식으로 하니까 일이 안되잖아-'
'너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라며 하이톤으로 다그치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두 사람의 앞에 서 있다가 뒤늦게 내 주문을 받고 나서도 카운터에서 들려오는 하이톤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내게 주문한 음료를 가져다주는 알바를 봤을 때, 그 텅 빈 눈이 어쩐지 얼마 전까지 일하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역시나 얼마 안 가 그곳엔 또다시 알바를 구한다는 종이가 나붙었고 다시 손님으로 갔을 때 사장님은 넋두리로 '이곳은 일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하셨다.
보편적으로 외지인들은 끈기가 없다, 어차피 잘해줘도 떠날 사람들이라는 게 이곳 대부분 사람들의 입장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러니한 마음이 들었다.
알바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은 시골에 일자리가 있어도 사람이 오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
떠나지 않고 계속 일을 하고 싶게 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내가 그곳에 필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 마음일 텐데.
그리고 그 마음은 직원에 대한 존중이나 작은 친절에서 나올 텐데.
사장님들이 직원들에게 바라는 가장 기본적인 역량이 친절이나 기본 예의와 같은 것들이라면 직원들이 사장에게 바라는 것도 다른 마음은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 곁에선 더욱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마음이다.
좋은 직원을 만나고 싶다면, 제일 먼저 좋은 사장님이 될 마음부터 갖추었으면 좋겠다.
시골의 일자리에 대한 인식은 결국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