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너무 먼 이웃
시골이라고 당연하진 않은 이웃간의 정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웃에 대한 정의는 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아파트 같은 층 라인의 이웃들과 인사를 하고 지냈고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자녀는 뭘 하고 지내는지, 경조사 등등을 다 알고 지냈다.
종종 함께 밥을 먹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누고 서로가 곤란한 상황일 때도 거리낌 없이 도왔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아파트 단지에는 지금도 친정 부모님이 살고 있는데, 정겨운 그곳만의 환경 때문에 부모님은 앞으로도 그곳에 살고 싶다고 한다.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근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주변의 이웃분들 대다수가 그대로 살고 계신다. 내가 결혼을 할 때도 본인의 자식인 양 진심으로 축하해 주던 이웃분들은 피로연에도 와 주셨고, 지금도 가끔 집에 내려갈 때면 오랜만에 내려왔냐며 엄마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 했겠네- 사는 건 어때? 물으며 반겨주신다.
나도 환하게 웃으며 익숙한 이웃분들과 반갑게 얘기를 하다가 온다.
오랜 시간 가족같이 지내온 이웃들을 보며 살아온 터라 그 모습이 내겐 너무 당연했다.
나의 다정한 이웃들은 나 또한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생각하게 된 큰 이유였다.
성인이 된 이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일 년씩 살고 싶은 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홀로 자취를 했다.
그때도 나의 이웃들은 본래 살던 곳만큼은 아니었지만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빌라의 같은 층 사람들이나 옆집, 윗집 사람들과도 늘 인사를 하고 지냈다.
얼굴을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인사는 당연했다.
종종 내가 장을 보고 올 때 이웃을 마주치면 맛있는 빵을 드셔보라며 나누기도 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웃의 정의가 늘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항상 따뜻하고 다정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내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지, 혼자 살던 시절에도 늘 다짐해왔다.
결혼을 하고 강원도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힘들 거라 했다.
텃세도 심할 거고, 여린 나는 여기서 적응하지 못할 거라 했다.
이 근방의 사람들에게 ' 거기 살았던 사람이 얘기해줬는데-' 로 시작하는 소문만 무성하던 이곳의 편견 가득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잔뜩 겁을 먹고 온 이곳의 생활은 역시나 녹록지 않았다.
마주치는 이웃들은 하나같이 먼저 시선을 피하고 지나가거나 경계하듯 훑어보고 지나갔다.
반갑게 인사를 해도 늘 내 인사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 겪는 이 상황이 너무 낯설었다.
누구든 친해지길 바랐는데 당장 이웃간에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삭막한 이곳에서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이웃들과 친해지기보다 외로움에 적응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누군가의 관심과 인사가 불편해 보이는 이웃들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시선을 피하고 지나가던 중에 사람이 내려오면 핸드폰을 보는 척을 했다.
늘 사람을 좋아하고 반기는 내겐 너무 낯선 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동네 특성상 일 년간 이곳엔 많은 이웃들이 오고 떠났다.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옆집 사람들도 이사를 가고, 이사를 왔다.
하지만 나는 이사를 간 사람들도, 몇 달 전 이사를 온 사람들도 아무도 모른다.
얼마 전 마주친 옆집 사람들은 내가 먼저 건네는 인사에 역시나 대답없이 묵묵히 지나가기에 바빴다.
허공에 흩어지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이젠 익숙해졌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한번을 돌아오지 않는 인사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처음엔 이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궁금한 마음이라도 들었었는데 사실 이제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어차피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일 뿐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부터 종종 공동현관 앞에는 쓰레기가 버려져있다.
먹다 만 커피컵일 때도 있고, 과자 봉지나 음료 페트병이 굴러다닐 때도 있다.
쓰레기를 발견할 때마다 내가 먼저 나서서 치우는 편인데 얼마 전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저 페트병이 언제까지 돌아다니나 보자- 하는 생각에 치우지 않았는데, 한 일주일쯤 지나서 결국 보다 못해 내가 치울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굴러다녔다.
아마 그렇게 늘 아무 곳에 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의 마음이 이곳에 사는 이웃들을 대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 구겨지고 더럽혀진 마음을 치우면서 늘 착잡한 마음이 든다.
내가 생각한 이웃들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다정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적어도 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쓰레기를 남기는 사람이 내 이웃이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미 내가 오기 전부터 고착화된 이 곳의 삭막함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 같다.
내겐 벽을 사이에 두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의 이웃들이 세상 그 누구보다 멀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