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 살아가기
얼마 전엔 지상파 뉴스에 우리 동네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이곳을 ‘육지의 섬’이라 칭한 채 시작하는 기사의 내용은 동네의 한산한 거리를 비추며 우리 동네에서 경기도로 가는 길의 광덕 고개에 몇 년 안에 터널이 생기기 시작할 거란 꽤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곳에서 경기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광덕 고개는 꽤 험한 고갯길이라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산을 넘으며 굽은 길과 급경사가 많아 누구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여름에서 가을 즈음이면 다양한 라이더들이 광덕 고개를 도전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낭만이라도 있지만 겨울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이다.
길이 험해 제설도 제대로 되지 않는 탓에 스노타이어로 교체했어도 차가 제자리에서 구른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꽁꽁 언 산길에 요지부동이라 겨울에 광덕 고개를 넘을 때마다 잔뜩 긴장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동네에서 철원으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하는 ‘수피령’도,
가평까지 나가는 길의 ‘화악산’도,
춘천까지 나가는 길의 구불구불한 길도 여러모로 힘들다.
도시까지 가기 위해 험난한 산을 넘다 보면 온몸에 힘을 주고 운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근방에 의료시설이나 마트도 없어 병원을 갈 때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장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시로 가야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서 타지로 가는 건 언제나 엄청난 부담이다.
도시에 나가기 전부터 사방에 둘러싸여 있는 높은 산들에 가로막혀 있는 답답함이 몰려온다.
더군다나 우리 동네에서는 군청이 있는 읍내도 산을 넘어 한 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고립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사를 온 후 초반에야 먼 고향 친구들이 나를 보러 오곤 했지만 하나같이 굽이진 고갯길을 운전하기 힘들다며 혀를 내두르고 또다시 오지 않는다.
일 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이곳의 운전을 힘들어하는 나도 누군가 이곳으로 온다고 하면 기어코 거절하고 인근의 도시에서 약속을 잡는 편이다.
흔하디 흔한 카페나 도시엔 널려있는 편의점도 차를 끌고 한참을 나가야 하는 이곳.
가끔 있는 인근 부대의 수료식이나 입소식 외에는 거리마다 사람을 보기도 힘들다.
이곳으로 연결되는 터널이 뚫린다면 지역 활성화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기사를 보며 허탈한 웃음만 났다.
당장에 있던 가게들도 닫기 시작하고 텅 빈 상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적막한 이곳에
터널이 뚫린다고 한들 여러모로 열악한 이곳의 다른 문제들이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곳을 ‘육지의 섬’을 만든 거대한 산맥과 오랜 시간 굳어진 문화가 인력으로 어찌한들 결국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길이 있어도 굳이 찾고 싶지 않은 곳이 내가 사는 곳이지 않을까 싶다.
아마 나는 광덕 터널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곳을 떠날 테지만 지금도 일 년을 넘게 살았어도 이곳에 마음 붙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떠난 뒤에도 두 번 다신 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긴 시간 동안 적막한 이곳에서 혼자서 모든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눈물로 지새웠고 어느덧 이곳은 내게 외로움의 성지가 되어있었다.
아파도 병원도 없는 곳에서 열이 나거나 다쳤을 때도 혼자 차를 끌고 굽이진 산을 넘으며 괴로워했고 임신준비를 하면서는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야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당장 아기가 아플 때 인근에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큰 공포로 다가왔다.
처음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자연은 곧 자연 빼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의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외로운 시골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동물들을 비롯해
도시에선 겪을 수 없는 시골생활 속 모든 사소한 일상들이 너무도 감사하긴 했지만 반대로 도시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일상들이, 차와 사람이 다니는 걸 볼 수 있는 곳에서의 삶이 너무도 그립다.
기본적인 인프라가 없는 삶이 얼마나 두려운 삶이고 공포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당장의 내겐 도시까지 거대한 산맥들이 가로막고 있는 이곳이야말로 거대한 감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