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분만취약지에서의 임신

의료시설의 부재

by 린꽃

일 년 전 화천에 처음 왔을 땐 내가 첫 유산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당시의 유산이 내겐 큰 충격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의 교대 근무는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이곳에 이사를 오며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임신 준비에만 매달렸다.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분만취약지'라는 것도 알았고, 우리나라에 병원이 없는 곳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늘 병원에서 일을 했고, 병원이 있는 곳에서만 살아온 내가 병원 하나 없는 곳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사는 곳은 산부인과까지 왕복 두 시간 반은 운전해야 하는 시골이기 때문에 임신 준비를 하며 매달 배란 초음파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매일 대추차나 흑염소 즙, 웬만한 임신에 좋다는 건 다 챙겨 먹었고, 매달 배란테스트기와 임신 테스트기를 하며 임신에 집착했다. 그래도 일 년간 임신이 되질 않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신이 잘 된다는 경주의 한의원을 다녀오고 나서야 임신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한 임신이었는데.. 최근에 임신을 한 후로 나는 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신을 하자마자 아기집만큼 큰 피고임으로 인해 지속적인 출혈이 있어 한동안 절대안정을 해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피고임 양상을 확인하러 병원을 가야 하지만 남편이 평일에 휴가를 쓰기 어려워 매번 나 혼자 두 시간 반을 운전해 산부인과를 다녀와야 했다.
도시까지 구불거리는 산길을 넘으며 멀미가 심해 중간중간 차를 멈춰 토를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운전을 해 산부인과로 향했다.
아플 때도, 괴로울 때도, 힘들 때도.. 결국 난 여기서 혼자였다.




임신을 했다고 상황이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 년간 늘 혼자였던 것 그대로 대부분의 시간을 벽을 보고 지내고 힘들어도 혼자 견뎌내야 했다.
남편은 늘 밤늦게 들어오는 게 일상이라 이곳엔 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입덧을 겪는 와중에도 혼자 장을 봐오고, 음식 준비를 해야 했다.
음식 냄새를 참으며 고생해서 겨우 음식을 해도 전부 맛이 없게 느껴져 먹질 못했다.
딱 엄마가 해준 음식 한입만 먹었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았지만 집이 멀어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당장 아무것도 먹고 싶진 않았지만 아기를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먹자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었다.
임신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처음 겪어보는 심한 입덧과 물만 먹어도 토를 하는 바람에 불과 이주 사이에 사 킬로가 빠졌다. 잘 먹지 못하는 와중에도 먹는 족족 토를 하는 바람에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입덧 약을 처방받아왔지만 그것도 며칠이 지나자 먹기를 포기했다.
입덧 약을 먹자마자 못 먹던 밥도 먹고 확실히 괜찮아지긴 했지만 난 내가 괜찮은 상태가 더 두려웠다.
산부인과가 먼 이곳에서, 그나마 입덧이 아니면 내가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초기인데 이곳에선 모든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요즘 뼛속 깊이 체감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료시설도 없는 곳에서의 임산부로서의 삶은 공포 그 자체다.
이번 주는 임신을 확인한 이후 처음으로 병원을 가지 않는 주인데 하루하루가 초조하다.
산을 넘어 병원을 가는 것도 너무 힘든데 그렇다고 아기가 잘 있는지 알 방법이 없는 건 너무 괴롭다.
이렇게 걱정을 하는 와중에 다행인지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을 마시고 다 게워냈다.
마신 물을 모두 게워내면서 괴로웠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순간도 견디기 힘든 입덧이지만 아기가 잘 있다는 신호인 것 같아 처음으로 안도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티는 게 힘들다고 느껴져 최근엔 밤마다 운다.
며칠 전엔 친정에 가고 싶어서 밤중에 혼자 차 키를 들고나가 기껏 한 시간을 운전해 도시까지 나가놓곤 거기서 더 두 시간을 넘게 운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며 돌아왔다.
아직 초기라 아무에게도 임신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다고, 괴롭다고 어딘가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분명 임신은 너무 좋고 행복해야 하는 일인데..
사실은 너무 지치고, 외롭고, 힘들고 두렵다.
갑자기 피가 나올까 봐 두렵고 매일이 초조하다.
당장 이벤트가 있어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병원도 없다는 거.. 그게 이렇게 무서운 일일 줄은 몰랐다.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9화반가운 시골의 트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