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 버티는 시골의 겨울

외로움과의 끝없는 사투

by 린꽃

강원도 산골에서 혼자 생활을 한 지도 벌써 두 달째이고 3월이 시작되자마자 이곳엔 며칠 폭설이 내렸다.
집 바로 앞의 산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하루 종일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마다 잠옷 위에 패딩 하나를 걸치고 나가 익숙하게 눈삽을 들고 집 앞의 눈을 치우고, 전날 치웠어도 여전히 차에 묵직하게 쌓인 눈들을 치웠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수록 허리가 아파서 삽질이 힘들어 이전처럼 오랜 시간 제설을 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제설차가 오지 못하는 곳에 살며 대신 제설을 해 줄 남편도 없는 내겐 선택지가 없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눈을 퍼내느라 손과 볼이 빨개질 때까지 밖에 있어도 수북하게 쌓인 눈은 여전해 눈을 치우다 말고 들어오기 일쑤이다.
뭐든 혼자인 생활이 이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씩 이곳에 폭설과 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면 너무 막막하고 두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이후에 내가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하는 역할은 결혼했음에도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지는 거였다.
남편은 항상 바빠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적었고, 그나마 집에 들어오는 날도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집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지금처럼 한 번씩 긴 업무로 오래 집을 비울 때도 잦았다.
결혼 전에도 내내 혼자 살긴 했지만 결혼 이후에 혼자 사는 건 느낌이 달랐다.
더군다나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직장이 있는 강원도 끝자락의 시골로 이사를 오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고립된 채 혼자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동안 혼자 살 때는 집 근처에 편의점이나 마트, 문화시설들도 있었을뿐더러 내 직장과 지인들이 근처에 있었던 반면에 남편을 따라 내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온 이곳은 지나가는 차나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산골짜기의 허허벌판 그 자체였다.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이곳에 적응하며 혼자서 내리 울던 날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나는 항상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노력했다.
대체로 나는 남편이 없던 긴 시간 동안 혼자서 뭐라도 만들어본다던가, 드문드문 민가가 있는 근처 산길을 산책을 하며 묶여있는 강아지들에게 말을 걸거나 산 동물들의 흔적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밤마다 어느 곳보다 더 깜깜한 이곳에서 매일 달이 차오르는 걸 바라보거나 빼곡하게 별이 들어찬 밤하늘을 바라보는 걸 그나마 낙으로 삼으며 남편이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내가 사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작년 한 해 동안엔 근처 지역들을 혼자 여행도 다니면서 적응해 보려 했다.
분명 열심히 살아보려 아등바등 살아냈는데 일 년을 넘게 살았어도 나는 이곳에서 아직도 이방인일 뿐이다.
이웃들에게 건넨 인사가 아직도 한 번을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나는 떠날 때까지 이방인일 것만 같다.
외로움도 충분히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집에서 낮 동안 멍하니 티브이를 켜두고 시간이 흐르는 걸 그저 바라만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자책하고 싶지 않은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선택으로 외로워진 내 모습이 견디기 힘들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더라면 지금보단 덜 외롭지 않았을까, 매번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한다.



이달 말까진 남편이 긴 업무로 두 달간 집을 비우고 있다.
두 달 동안 나는 시골에서 혼자 이 모든 생활을 감당해야만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다. 임신을 한 이후엔 아침마다 뱃속 아기에게 혼잣말을 하곤 한다.
' 아가 잘 있지? 우리 오늘도 잘 살아내 보자! '
주문 같은 말을 외우고는 잠깐씩 눈이 녹은 날엔 산책도 하고, 인터넷에 임산부 요가 같은 것도 찾아보고 하는 편이다.
임신을 하기 전엔 혼자 있을 때 종종 굶다 폭식을 하거나 온갖 인스턴트로 식사를 대충 때웠는데 임신임을 알고서는 혼자서 자주 장도 보러 가고, 영양소를 맞춰서 식사도 하려고 한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다.
도시의 마트까지 왕복 두 시간 반은 운전을 해야 하는 데다
아직 입덧이 심해 얼마 전 간 마트에서 정육코너를 지나다 말고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생고기 냄새가 역해 토를 하러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고, 시식코너 앞을 지나다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껏 먼 곳까지 장을 보러 가서도 대충 손에 집히는 것만 사 들고 오기 일쑤였고
장을 보고 온 이후엔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를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리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장 보는 것도 어느새 내겐 큰 산이 되어있었지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뭐든 혼자 해내야 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최근엔 이곳까지 배송이 가능한 앱들을 몇 가지 찾아 식재료를 주문하는 법을 익혀서 마트를 가지 않고 웬만한 음식들은 주문하고 있고, 도시에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가는 날엔 시골길 운전이 힘들어 하루씩 방을 잡아 자고 오는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쯤 되면 혼자여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떤 밤은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눈물이 난다.
하루에 딱 한 번, 기껏해야 밤중에 몇 초 정도 짧게 생존신고를 하듯 통화하는 남편과의 전화 시간엔 힘들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
한껏 지쳐 보이는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파서 힘내라 한마디를 하고 서둘러 끊는다.
혼자서도 무너지지 말아야지, 생각은 하는데 어떤 밤엔 아무리 날 달래도 뭐든 서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아무리 울어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울음을 내뱉다가 불현듯 뱃속의 아기에게 내 슬픔이 전해질까 울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더 이상 울지 말고 잠들자고 생각하며 그나마 나를 푹 잠들게 해주는 입덧 약을 삼킨다.
입덧 약을 먹고 난 다음날에도 잠에 취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지만 차라리 그렇게라도 시간이 더 잘 가는 편이 낫다.
너무 힘들다.
눈뜨자마자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있는데 전날 치웠어도 한가득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도저히 눈을 치우러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더 이상은 외로운 이곳에서 버티기가 너무 힘이 든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5화시골 강아지의 순수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