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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찾아올 다음 계절

시골의 봄, 봄을 맞는 마음

by 린꽃


겨우내 살을 에는듯한 추위가 이어지다 최근엔 언뜻 한순간씩 봄이 스쳐 지나간다.
꽁꽁 얼어있던 물가엔 반쯤 녹은 얼음 밑으로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텅 비었던 물가엔 오리들이 나타나 날갯짓을 하며 겨울 동안 얼었던 몸을 풀며 목욕을 재개한다.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드디어 봄이 오는구나, 또다시 봄이 왔구나..' 익숙하지 않은 눈앞의 봄을 마주했다.

새삼 기다렸던 봄이 찾아오니 불현듯 슬픈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서의 겨울이 내겐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봄이 오면 마냥 기쁠 것 같았는데 막상 봄이 온다고 생각하니 당장의 다음 겨울이 두려웠다.
겨울 동안의 나는 자주 울고 무력했고 늘 외로움에 사무쳐 괴로워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이곳에서 또다시 일 년을 살아가야 한다니.
이런저런 생각들로 봄이 온다고 한들 전혀 기쁘지 않았고 반갑지도 않았다.
이전 같았으면 계절 따라 자연이 생동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을 텐데, 분명 기뻐야 할 일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내 모습이 나조차 보기 힘들었다.



계절이 변하는 걸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시골에서 산 지 일 년이 지난 요즘엔 이곳의 단순한 삶에 적응하는 중이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골에서 많은 생각은 독일뿐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해지고, 끝없이 이어진 산맥들을 보면서 이곳이 감옥처럼 느껴져 홀로 울다가 끝내는 내 삶은 여기서 끝났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곤 한다.
평온하다 못해 적막한 이곳에서
나 홀로 종종 널뛰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요즘의 나는 되도록이면 단순하게 사는 연습을 하고 있다.
감정이 무딘 사람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사소한 것에 감동하지 않고, 잘 웃던 내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처음 시골에 살며 일 년간은 적응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매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있었고 떠나서도 또다시 떠날 곳을 찾았다.
도망치듯 떠난 여행의 끝에, 마지못해 시골로 돌아오던 길에는 언제나 눈물 바람이었다. 떠나있어도 돌아가기 싫고 떠나서도 떠나고 싶은 곳이 내겐 시골이 된지 오래이다.
겨울이 되기 이전에는 매일같이 타지로 여행을 떠나있었지만 눈이 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그야말로 은둔생활을 했다.
해도 들지 않는 집에서 온 집안에는 하루 종일 암막 커튼을 쳐두고 사는지라 거의 매일을 시간이나 날씨가 어떤지도 알지 못한 채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침대 밖을 빠져나오질 않았다.
잠을 자는 것 외에는 할 것도 없었고 꽁꽁 얼어붙은 이곳에서 나가봐야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겨울 동안 마치 살아있는 시체가 된 것 같이 붕 뜬 느낌이었다.
이곳에서의 난 그야말로 가동성을 잃은 고장 난 로봇과도 같았다.
때문에 계절이 바뀌는 걸 볼 때마다 슬프고 무력한 감정만 들었다. 계절이야 어떻든 나는 이곳에서 꾸준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봄은, 나도 다른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최근엔 낮 동안 집을 벗어나 잠깐씩은 인근을 산책하고 있다.
산책하는 것 외에도 매일 몇 줄씩이라도 일기를 쓴다던가 새로운 식물을 키워본다던가 책을 몇 장씩은 읽으며 자그마한 내 삶의 루틴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봄 앞에 깨어날 준비를 하고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끝나면 곧 봄이 올 테니 다음 계절에 활짝 피어날 나의 내일을 기다리는 수밖에.
부디 곧 다시 찾아올 봄에는 푸른 자연과 함께 나도 예쁘게 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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