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흔적 속에서
최근엔 남편이 오래 집을 비우는 바람에 시골집을 떠나 잠시 친정에 내려왔다.
강원도를 벗어나 세 시간 동안 구불구불한 길을 운전해 고향에 다다를수록 점점 끝없는 산이 아닌 건물들이 보이고, 많아지는 차들과 사람들을 보며 연신 신기해했다.
살던 곳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도 보기 힘든 곳이어서 늘 커튼을 쳐두고 바깥을 바라보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눈 돌리는 곳마다 사람이 있는 광경이 내겐 익숙하지 않았다.
친정집 앞에는 큰 도로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라며 이곳에 살던 때는 바라보지 않던 풍경이 새삼 진귀해져 한동안 집에 온 뒤엔 매일같이 차들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에 베란다에 서서 큰 도로에 줄지어 서있는 차들을 구경하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차와 사람이 움직이는 풍경만으로도 그간의 모든 외로움이 사라지는듯했다.
지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홀로 눈물을 훔치다 문득 ' 내가 많이 외로웠구나.. '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같이 집 근처의 산책길을 산책하던 때에는 내 앞뒤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일 년 넘게 외진 곳에서 살며 사람이 익숙하지 않아 사람들 틈에 걸으며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늘 산짐승의 발자국이나 내 발자국만이 유일했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밟은 길을 걷는 것도 낯설었을뿐더러
내 앞에 걷는 사람이 있고,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걸으면서도 혹시나 어색한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걸음걸이도, 행동도 삐걱거렸다.
며칠간 사람들 틈에 걸으며 점점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된 나를 발견했을 땐 정말 기뻤다.
처음 발걸음을 뗀 아이처럼, 사람들 틈에 서 있는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은 인사를 해도 돌아오지 않는 곳이라 고향에서 오래 알고 지낸 이웃분들을 만났을 때 먼저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 짧게 고민을 했는데,
내 고민이 무색하게 처음 보는 이웃분들도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건네셨다.
처음 인사를 먼저 받았을 땐 내게 인사를 건네는 건지 믿기지 않아 우물쭈물하다가 바보처럼 '안녕하세요-' 한마디를 내뱉지를 못했다.
항상 누구에게든 먼저 인사하고 밝던 내가 시골에 산 일 년 새에 소극적으로 변한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며칠간 친정집에 있는 동안 모처럼 만난 이웃분들은 자연스럽게 내 안부를 물어주셨고,
집 앞 마트의 이모님도 오랜만에 만났어도 밝게 웃으며 결혼생활은 괜찮냐, 시골에서 외롭지는 않냐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한껏 어둡고 푸석해진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얼굴이 왜 이렇게 까칠하냐며 걱정하는 밑층의 아주머니에게는 한동안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다 왔다.
거기선 말할 사람도 없고, 너무 외롭다고.
이렇게 사람이랑 얘기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며.
어릴 적부터 나를 지켜봐 온 아주머니는 고생이 많다며 연신 등을 토닥여주셨다.
집에 머문 지 며칠이 지나자 밖에 나가면 오늘은 누구를 마주칠지, 어떤 세상을 마주하게 될지 기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골에 있을 땐 어차피 나가봐야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 외출을 하는 정도였지만 이곳에서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자주 나갔고, 매일같이 마트에 가서는 이모님과 잠시라도 이야기를 하다 왔다.
이웃분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고 내가 건네는 인사는 항상 따뜻한 미소와 함께 돌아왔다.
이 모든 일상이 믿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할지도 모를 일상이지만 폐쇄적인 시골에 사는 동안 나는 철저하게 무너져왔고, 이 평범한 일상을 늘 꿈꿔왔다.
사실은 사람이 항상 그리웠다.
결혼을 하기 이전에도 늘 혼자 살긴 했지만 근처에 따뜻한 이웃들도 있었고 항상 어딜 가든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아예 없는 곳에 살게 되었을 때도 늘 혼자 살아왔으니 자신 있다 생각했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하얀 눈 위에 찍힌 다양한 동물들의 발자국을 보며 홀로 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시골길을 산책할 때도,
혼자 하루 종일 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때도..
나는 늘 사람의 소리가, 사람의 흔적이 그리웠다.
물론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교감하고 시시각각 철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벅찰 만큼 행복한 일이긴 하지만,
사람과 동떨어져 홀로 살다 보면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나는 너무 외로웠다.
사람들 속에 머무는 지금도, 사람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