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일상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내 삶은 지독하게 단조로워졌다.
단조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의욕을 잃고 점점 시들어갔다. 지나가는 차나 사람 하나 보기 힘들고 주변을 돌아보면 산 밖에 없는 이곳에서 딱히 앞으로 뭘 하고 싶지도, 희망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느냐'가 관건인 채로 하루를 흘려보내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우울도 심해졌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커졌다. 나는 세상에서 쓸모없고, 잊힌 사람이라는 생각에 거의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다.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싫었지만 한번 무력감에 빠지니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처음 사랑해 마지않던 자연은 거대한 감옥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최근엔 날 집어삼키는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다.
남편이 긴 시간 집을 비운 요즘엔 혼자 생활을 하면서 아침을 시작할 때 내게 몇 가지 미션을 주고 1일 1 챌린지를 하려고 한다.
거창한 것들은 아니고 하루에 한 권 책 읽기나 필사를 하거나, 하루 30분 요가를 한다거나 오늘은 화장실 청소를 한다던가, 현관 정리를 한다던가 하는 아주 간단한 일들이다. 내가 생각한 그날의 미션을 한 뒤에는 꼭 매일 적는 일기장의 마지막에 오늘 해낸 걸 적고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해준다. 내게 오늘도 잘 살아냈다는 인사를 건네고 나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엔 새벽마다 깨며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나 스스로의 미션을 시작한 요즘엔 푹 자고 일어난다.
3월엔 한 달간 인터뷰 캠프를 참여하면서 아침마다 매일 글을 쓰고 있는데, 글을 쓸수록 생각도 정리되고 인생의 방향이 보이는 듯하다.
최근엔 아기에게 만들어줄 그림책을 구상하고 낮 동안 집을 가득 메우던 티브이 속 사람 소리 대신 클래식을 틀어두면서 나름의 태교도 하고 있다.
임신하고 시골에서 긴 시간 혼자있는게 두려웠는데 한편으론 뱃속의 아기가 함께라는 생각에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것 같다.
그 밖에도 매일 나와 내 주변을 돌보는 일상들- 예를 들면 밥을 먹고 난 뒤에는 30분 정도 홈트레이닝을 한다던가 매일 씻고 난 뒤에는 팩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향긋한 바디로션을 바르는 사소한 일상들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달고 살던 과자를 줄이고 대신 매일 과일과 하루 한 끼는 야채를 먹으며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기도 한다.
아직 고기는 못 먹지만 최근엔 입덧도 나아지고 있어 먹고 싶은 게 떠오르면 직접 요리도 하고 있다.
우리 집은 내 취향으로 온통 화이트톤 인테리어로 꾸며놓아 매일 닦고 청소를 하지 않으면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보여서 한 번씩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자주 청소를 하고 가구들을 닦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일정과도 같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집 안의 식물들 물 주는 날에는 몬스테라의 잎과 줄기도 닦아주면서 이만큼 자라줘서 고맙다 이야기하곤 한다.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몬스테라는 처음 왔을 때보다 잎도 많이 피워냈고, 최근에도 예쁘게 찢어진 잎 하나가 더 자랐다.
식물을 키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살아있는 건 뭣도 볼 수 없는 이곳에서 집안의 몬스테라와 함께 나도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은 에너지를 받는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나와 내 주변을 살피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소소한 성취감을 이루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점점 더 큰 목표들도 생겨나고 있다.
시골살이를 하던 초반엔 매일 이렇게 살 바엔 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요즘엔 하루가 조금씩 재밌어지려 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은 또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날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아등바등 노력해도 캄캄한 밤이면 물밀듯이 찾아오는 우울과 공허함은 당해낼 재간이 없지만
항상 나는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언제까지나 내가 나를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