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안긴 나의 진주

너의 태몽과 두 줄이 주는 떨림

by 린꽃

2024년 늦가을,
일 년간의 임신 실패로 지쳐 있던 나는 홀로 며칠간 동해 바다를 찾았다. 여행을 하면서는 잠시나마 임신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으면 좋았겠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행길에서도 이노시톨이나 엽산, 임신 준비를 위한 영양제들을 챙기고 처방받은 한약을 챙겨 다니며 음식 하나까지 조심했다. 좋아하던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한약을 복용하는 동안 밀가루나 고기를 피하며 임신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여전히 여행지에서 아기들을 마주치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도망치듯 피했고, 밤이면 혼자 울다 지쳐 잠들곤 했다. 새벽에는 악몽에 시달려 깨어나며, 점점 여행에서 기대했던 힐링이 아닌 고단함만이 쌓여 갔다.



이대로는 제대로 여행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여행 일정을 앞당긴 마지막 날 밤, 그날 잊지 못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바닷가를 걷다 커다란 조개를 발견했는데, 그 속에 아주 큰 진주가 있었다. 내 두 손으로 안아도 다 감싸지지 않을 만큼 크고 하얀 진주였다. 홀린 듯 소중히 진주를 품에 안고 가던 와중에 누군가 다가와 나의 진주가 너무 예쁘다며 달라고 했다. 절대 안 된다고 하며 진주를 품은 채 다급히 달아났다. 꿈속에서 한참을 달리다 눈을 떴을 때는 본능처럼 두 손부터 확인했다. 꼭 방금 전까지 진주가 손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만큼 생생하고 강렬한 꿈이었다.
한동안 꿈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여전히 묵직한 진주를 안은 것 같은 기분에 빠져있었다.



꿈을 꾸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새벽을 다 보내고 난 이른 아침, 바다를 코앞에 두고도 여행 중에는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일출을 보러 나갔다.
해가 뜰 때까지 꿈을 곱씹으며 눈에 보이는 작은 조개를 몇 개 주워 들고, 해 뜨는 바닷가에 앉아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오늘의 꿈이, 태몽이면 좋겠다고.
빨갛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아기가 생기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날 본 바다의 주홍빛 색깔, 그날 아침의 온도, 풍경이 지금껏 선명하게 잊히지 않는다.
이 예쁜 풍경을 다음번엔 아기랑 같이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해가 다 뜰 때까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난 한 달 뒤, 기적처럼 일 년 만에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했다.
이전의 화학적 유산들과는 다르게 점점 진해지는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하며 주저 없이 아기의 태명을 ‘진주’라 지었다.
태명을 지은 이후로는 꿈속에서 내 진주를 빼앗으려던 존재가 오래도록 마음에 걸려, 남편과 가장 친한 지인들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아기를 출산할 때까지 아기의 태명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에는 소중하게 지켜내고 싶은 나의 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진주가 내 곁에 있다.
2년간 내가 그토록 기다린 생명, 내 삶을 가장 빛나게 비추는 선물.
꿈속에서 두 손 가득 끌어안았던 그 진주처럼, 나는 매일 조금 더 반짝이며 자라는 아이를 품고 있다.
너무 소중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까운 나의 진주.
그 어떤 파도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내가 지켜낸 가장 소중한 기쁨이 내 곁에 있는 지금이 내 생에 가장 행복한 날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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