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기 지옥, 자라나는 너를 보며
4개월이 되자마자 아기는 하루 종일 뒤집기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 육아를 하면서 뒤집기 연습도 제대로 시켜주지 못하고 뭣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는 것 같은데 아기는 알아서 뒤집는 법을 익히고 뒤집기 시작했다.
백일쯤부터 역류 방지 쿠션 위에 올려놓으면 몸을 활처럼 옆으로 꺾으면서 고개를 치켜들고 위를 보기에 벌써 뒤집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디 신경에 문제가 있나?' 생각하며 걱정스레 지켜봤었는데, 역류 방지 쿠션에서 혼자 구르다 뒤집는 걸 시작으로 이젠 바닥에서도 하루 종일 굴러다니고 있다.
아기가 뒤집으면서 역류 방지 쿠션에서도 자꾸 떨어지니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서 방 한편에 치워뒀다.
아기는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매트 한가운데에서 시작해 금세 바닥까지 굴러간다.
분명 중앙에 눕혀두었는데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몸을 비틀고, 팔을 휘두르고, 이내 쿵— 하고 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신기한 건 머리를 바닥에 아무리 박아도 한 번도 울지 않는다는 거다. 어느 순간 보면 매트에서 내려와 바닥에서 팔과 다리를 파닥거리며 버둥거리고 있을 뿐이다.
항상 뒤늦게 발견하고 놀라 달려가면 아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씩 웃는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급하게 산 머리 쿵 보호대를 착용시켜봤는데, 아직 아기에겐 너무 커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뒤집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분명 기쁜 일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컸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고 아기가 뒤집은 이후로 내 하루는 계속 아기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보는 게 일상이 된지 오래다.
아는 사람이 없고 근방에 사는 사람조차 없는 시골에서 혼자 아기를 키우며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내 빨래와 아기 빨래도 매일 돌려야 하고, 밥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하고 유축도 하고 젖병도 수시로 닦고 가끔 이렇게 글도 써야 하는데 요즘엔 정말이지 아기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4개월 넘게 지속하던 유축수유를 관두고 단유를 하리라 마음을 먹은 것도 아기가 뒤집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매트에 눕혀두면 뒤집고, 또 뒤집고, 그러다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고 혼자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조금 뒤면 힘이 다 빠진 채로 매트 위에 얼굴을 파묻고 낑낑거리며 나를 찾는 간절한 눈빛을 하며 올려다본다.
뒤집는 건 척척하다가도 아직 되집는 게 익숙지 않아 다시 되집어주면 순식간에 다시 뒤집는다.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눕혀놓으면 곧장 뒤집는 통에 이전보다 더 게워내서 옷도 자주 갈아입히고 턱받이도 수시로 갈아줘야해서 이전보다 손도 많이 간다.
뒤집기 시작한 후로 항상 내가 필요한 아기를 보면 아무 일도 못 한 채 또다시 한참을 옆에 앉아 있게 된다.
하루 중 유일하게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은 아기의 낮잠 시간이다.
아기가 졸릴 때에 옆잠 베개에 조심스럽게 눕혀두면
아기는 그제야 뒤집지 않고 잠든다.
그때 집안일을 몰아서 하거나 내 밥도 먹고, 유축도 하고,
진이 다 빠진 채로 대체로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
아기가 잘 때 같이 자고 싶어도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지 못하니 항상 일이 쌓여있어 잘 수가 없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혼자 아기를 키운다는 건 이렇게 하루 종일 긴장한 상태로 살아가는 걸까 하고.
정말 출산한 이후로 하루도 제대로 자 본적도 없고,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오늘도 아기는 일어나자마자 어제보다 조금 더 힘차게 몸을 굴린다.
조금 덜 서툴게, 조금 덜 아슬아슬하게.
그걸 보면서 알게 된다.
아기가 뒤집기를 배우는 동안 나 또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걸.
아기가 몸의 균형을 익히는 동안 나도 마음의 균형을 잡고 일상을 다시 정리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아기가 자는 사이에 빠르게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해내면서 나도 경험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뒤집기 지옥 한가운데에서 아기만 크는 게 아니라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언젠가 이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불안과 긴장은
“그땐 정말 힘들었지”라는 문장이 되어 웃으며 꺼내게 되겠지.
그래도 오늘은, 지옥은 지옥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신나게 뒤집는 아기를 또다시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