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km를 달려 만난 따뜻한 시간
지난 주말은 아기와 내게 엄청난 도전이었던 날이었다.
아기와 단둘이 외딴 시골에 산 지도 벌써 세 달째에 접어들던 날, 익숙해진 줄 알았던 외로움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아쳤다.
크리스마스도 남편이 당직이라 아기와 단둘이 보내고, 그다음 주인 올해 마지막 날도 당직이라 집에 오지 못한다기에 별수 없이 연말과 연초도 또다시 아기와 둘이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내게도 가족이 있는데 왜 혼자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길게 갈수록 짐이 더 많아져 짧게라도 다녀오고 싶어서 5일 정도를 다녀올 생각으로 최소한의 아기 옷과 내 옷, 수유 잠옷, 아기 띠, 히프 시트, 분유 쉐이커, 아기 장난감과 치발기, 젖병 건조대, 딸랑이, 몇 개의 책들, 기저귀, 유축기, 젖병소독기, 젖병 보관함과 아기욕조들, 목욕 물품들과 수유 시트를 비롯한 수유 물품, 중탕기, 분유 포트와 분유를 챙기고 나니 트렁크를 비롯한 조수석과 카시트 옆까지 온갖 짐들로 가득 찼다.
아직 혼합수유로 유축을 하고 있으니 이미 수유 물품만 해도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아기 체육관이나 모빌도 챙길까 하다가 짐이 너무 많아져 챙기지 못했는데도 이미 차 안엔 아기 짐이 한가득이었다.
혼자서 오전 내내 분주하게 짐을 나르며 움직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영문도 모르는 아기에게 출발 직전 수유를 하고 서둘러 카시트에 태우고서
드디어 제천까지 180km, 약 세 시간의 여정을 떠났다.
화천은 전날도 눈이 많이 내려 아직 다 녹지 않은 눈길을 뚫고 겨우 춘천까지 나왔을 때, 춘천 시내에서 차가 꽉 막힌 통에 겨우 춘천 ic를 빠져나왔을 땐 이미 예정 시간보다 시간도 많이 지체되고 진이 다 빠진 채였다.
고속도로 중간중간 졸음쉼터나 휴게소가 나오긴 했지만 네 시간 텀인 아기 수유시간 전에 집에 도착하려면 쉴 시간은 없었다.
수시로 긴장한 채 백미러로 아기를 살피는 동안 다행히 아기가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있었던 덕분에 걱정했던 것보단 비교적 수월하게 운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 아빠가 주차장에 마중을 나와있었다.
얼마 전 백일 이후로 처음 보는 아기를 엄마가 안아서 먼저 집으로 올라가고, 아빠는 차 안의 남은 짐을 나르고 나는 서둘러 분유와 젖병을 챙겨 급하게 아기 수유를 했다.
낯선 곳에 와서 놀랐는지 수유시간이 지났어도 아기는 악을 쓰고 울며 분유도 먹지 않고 두 시간을 내리 울었다.
겨우 달래 조금 먹이고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거실에 앉아 있으니, 주말 근무를 하고 저녁 늦게 퇴근한 남동생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기를 처음 보는 동생은 신기한 듯 잠든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아기를 내려다보는 동생의 얼굴에는 놀람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몇 시간을 짐을 나르고 운전하느라 유축할 시간도 한참이 지나 서둘러 유축도 하고, 그동안 엄마는 나대신 잠든 아기를 안고 집 안을 걷고, 아빠는 아기 짐들을 서둘러 정리하고선 부엌을 분주히 오갔다. 그날 저녁상에는 내가 좋아하던 아빠표 떡볶이와 내가 좋아하던 치킨집의 파닭이 올라왔다.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어서 긴장했던 마음도 잊고 모처럼 배부르게 실컷 먹었다.
연말이라는 사실도,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사실도 그제야 실감이 났다.
용기내어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또다시 시골에서 아기와 단둘이 남겨져 외롭다고 울고 있었을 텐데.
아기와 단둘이 버텨온 날들 속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천천히 풀어졌다. 혼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안도감,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허락 같은 것들.
폭풍 같던 외로움이 내게 선물해 준 따뜻한 날들이었다.
그렇게 이번 연말은, 외로움 대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아기에게 행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