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저녁, 불빛이 켜진 창문들

by 린꽃

한동안 친정집에 다녀온 사이에 동네엔 부쩍 이사 온 사람들이 늘었다. 늘었다고 해봐야 몇 집 안되긴 하지만, 텅 비어있던 같은 라인에 두 집이나 이사를 왔다.
집으로 올라오는 동안 내내 빈집이던 집들의 앞에 택배가 놓여있던 게 어색하고 이상했다.
그래도 사람 하나 없이 을씨년스럽던 동네에 누군가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덜 외롭긴 했지만, 이웃이 새로 이사를 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내가 건네는 인사는 돌아오지 않고 외로운 이곳에서 늘 혼자인 건 똑같았으니까.



이곳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나와 아기 둘뿐이다.
하루가 언제 시작되는지도 모르고 그저 매일 아기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종일 낮 동안 혼자 아기에게 말을 걸고 놀아주다가 이내 다시 조용해진다.
주말부부를 시작한 이후 처음 몇 달 동안은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베란다에 아기를 안고 서 있곤 했었다.
다른 집에서라도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덜 외로울까 싶어서였지만 어차피 우리 집에 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아는 지금은 남들의 출퇴근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고, 더 이상 사람들이 돌아다닐 시간에 창밖을 내다보지도 않는다.
이곳에서 아기와 단둘이 몇 달을 지내다 보니 나와 아기 말고 다른 사람을 보는 일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친정집에서 돌아온 날부터 며칠 동안 아기는 분유도 모유도 잘 먹지 않았다.
이 앓이인 건지 온종일 치발기만 까드득 소리를 내며 씹기 바쁘고 하루 종일 침을 흘리면서 손도 연신 입에 넣고 있었다.
물고 있는 손이나 치발기를 빼면 짜증을 내면서 모유를 먹이려고 해도 고개를 뻗대고 젖병의 젖꼭지를 급하게 바꿔 먹여보거나 다른 브랜드의 젖병을 사도 뭐든 밀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5개월간의 유축 수유에 지칠 만큼 지쳐있던 터라 이제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에 슬슬 단유를 하려고 했는데 아기가 먹질 않는 걸 보니 단유고 뭐고 종일 주야장천 젖만 물리고 중간중간 유축도 하며 유축한 모유나 분유를 번갈아 먹였다.
그나마 직수를 하면 뭘 먹고는 있는 건지 삼키는 소리는 났지만 그래도 양이 적을까 중간중간 젖병 수유를 시도하는 게 짜증이 났는지 나중엔 젖병을 보기만 해도 울었는데, 안아주면 조금 진정되기에 요 며칠 하루 종일 조금이라도 먹어보라고 설득하면서 계속 아기를 안고 있었다.
성장하며 낯선 변화를 겪고 있는 아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저 안아주는 것 밖에 없어 미안했다.



내내 내 품에 안겨있던 아기는 이제 내가 아닌 낯선 사람에게 쉽게 안기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는 딱 하루 남편이 왔다 갔는데, 남편도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로 자주 보지 못하다 보니 아기에게는 익숙한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안으라고 안겨줘도 금세 몸을 빼고 다시 안기려고 하지 않았다.
친정집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 품에도 먼저 웃으며 팔을 벌리던 아기였는데 남편만 보면 낯을 가리고 운다.
아마 아기도 자주 보지 못하고 먼저 안아주지 않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은데, 남편도 그런 아기를 적극적으로 안으려고 하거나 바라봐 줄 생각이 없다. 안아보라고 건네면 '아기가 안기는 걸 싫어해'라며 되려 먼저 거부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면 세상에 안기는 걸 싫어하는 아기가 있나 싶다.
그래도 안아보라고, 또다시 가면 언제 볼지 모르니 왔을 때라도 안아보라고 억지로 안겨주고 나면 남편의 품에서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기의 눈빛이 보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아기를 안는다.



부쩍 화천으로 돌아온 이후에 아기는 웃지도, 꺄르르 웃는 웃음소리를 내며 옹알이를 하지도 않는다. 모빌을 틀어둬도 금세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집안일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있는 아기의 얼굴이 신경 쓰여 다시 아기에게 돌아가 토닥이며 말을 걸다가 아기 띠를 하고 아기를 안고나서야 집안일을 마저 한다.
아기와 무사히 하루를 살아낸 똑같은 하루의 저녁, 오늘 밤엔 눈이 정말 많이 온다.
소리도 없이 쌓이는 눈 때문에 동네는 더 조용해지고 길은 금세 하얗게 덮였다.
저녁이 되고 여기저기 창문에 불이 켜지는 걸 보면서 누군가는 저 불빛 아래 가족의 온기가 함께할 텐데, 하루 종일 말할 사람도 없고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는 내 하루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져 또다시 슬퍼지기 전에 하루를 끝내며 유축도 하고 젖병도 닦고 소독하고, 중탕기와 분유 포트도 닦고 다시 채워놓고 어질러진 아기 장난감과 책들도 정리한다.
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는 아직 잠들지 않은 아기의 옆에 누워 토닥여 재운다.



아기가 잠들고 나면 집 안엔 다시 나 혼자 남는데, 그때가 하루 중 유일하게 내 시간이 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전 같았으면 이 시간에 잠깐이라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요 며칠 수유 거부하는 아기 때문에 같이 진이 다 빠져서 늘 피곤해서 같이 자려고 누웠다가도, 오래도록 잠이 안 와서 또다시 거실로 나와 찬 베란다에 서서 온통 하얗게 물든 세상을 한참을 바라본다.
창밖에 소복이 쌓인 눈과 맞은편 아파트에 군데군데 켜진 불빛, 가로등 아래의 불빛들을 보며 우리 집의 불빛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불빛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루일지라도, 오늘도 아기와 단둘이 보내는 우리의 하루가 그저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났음에 안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