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어도 되었던 날들
친정집에 잠시 머무는 며칠간 육아가 여전히 힘들긴 했어도 이만하면 조금은 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침 일찍 출근 전에 일어나 밤새 쌓인 젖병과 유축기 부품들을 닦고 낮 동안 내가 먹을 밥을 밥과 반찬을 해두고 나가셨고, 퇴근 후에는 서둘러 아기를 안으며 집 앞 카페라도 얼른 다녀오라고 하시면서 하루 종일 아기와 단둘이 집에 있으며 답답했을 나대신 아기를 봐주셨다.
아기를 두고 나가기 죄송해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시골에는 갈 수 있는 카페도 없고 혼자 아기를 보다 보면 갈 시간도 없지 않냐고, 여기 있을 때 많이 가두라는 엄마의 말이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씁쓸했다.
다시 돌아가면 이런 일탈의 시간도, 혼자 보내는 잠시의 시간도 없을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집에 온 며칠 뒤부터는 아침부터 오늘 가고 싶은 카페를 하나 찾아둔 뒤 엄마의 퇴근시간 전에 미리 나갈 준비를 하고 밖을 나섰다.
기껏 나갔어도 집에 있는 아기가 마음에 걸려 매번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서둘러 들어오긴 했어도 좋아하는 카페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여유롭게 읽으며 혼자 보내는 잠시의 시간들이 지쳤던 나를 조용히 위로해 주고, 서서히 살게 했다.
내가 아기와 함께 집에 왔다는 소식에 할머니도 시골에서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고 아기를 보러 오셨다.
김치며 직접 만드신 묵, 올해 농사지어 얼려둔 옥수수와 내가 좋아하는 쑥개떡도 가져오셨다.
언젠가 내가 오면 주려고 쑥개떡을 미리 만들어뒀다며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두 손 가득 들고 온 할머니를 보니 문득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차마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오시자마자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던 아기를 잠깐 보시고는 내게 밥은 먹었냐고 하시며 서둘러 떡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옥수수를 찌기 시작했다.
밥을 먹은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고 지금 안 먹어도 괜찮다고, 아기를 보시라고 해도 할머니는 내내 조금이라도 뭘 먹으라며 내 걱정에 안절부절못하시다가
기어코 내가 옥수수를 한입 먹는 걸 보고 나서야 안도하고 아기를 보시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정말 감사했다.
누군가 내 생각을 늘 해주고 있다는 게, 그래도 이 세상에, 내가 지치기 전에 먼저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 이상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따뜻해졌다.
마냥 무뚝뚝한 것 같았던 아빠도 퇴근 후에는 내내 아기만 안고 계셨다. 내 품에서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서둘러와서 나 대신 아기를 안고 온 집을 돌아다녔다.
남동생도 저녁 즈음 집에 오면 아기에게 먼저 달려와 아기를 안고,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장난감을 흔들어주며 놀아줬다.
나와 매일 시골에서 단둘이 생활하던 아기도 처음엔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에 낯설어하는 것 같더니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싱긋싱긋 웃고, 처음 듣는 까르르 웃는 소리도 내며 점점 표정도 밝아졌다.
아기에게도 다른 가족들의 손길이 필요했구나, 내심 전에 없이 밝아지는 아기의 표정을 보며 미안하기도 했다.
아기도, 나도 며칠간 집에 머물며 점점 가족들의 품 안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 품이 어찌나 따뜻했던지 원래 5일 동안 머물다 가려고 짐도 조금 챙겨왔는데, 머물면 머물수록 더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매일 조금만 더, 눈이 내렸으니 며칠 만 더,라고 자꾸 온갖 이유를 대며 미루고 필요한 걸 그때그때 사며 돌아가는 날을 미루다 보니 벌써 열흘이나 지났고 이젠 정말 집으로 가야 하는 날이 가까워졌다.
내가 친정에서 보낸 며칠은 누군가 나를 대신해 아기를 안아주고,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내어주던 시간이었다.
늘 나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던 가족의 품에서 나는 처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다시 시골로 돌아가면 또다시 혼자 버텨야 할 날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친정에서 보낸 따뜻했던 시간들은 분명 앞으로의 나를 단단히 받쳐주며 조금 덜 무너지게 해줄 것이다.
친정집에서 보낸 이번 며칠의 시간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도움을 받았던 시간이자, 혼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건네받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