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으로 돌아오던 날
집에 돌아오던 날 아침,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이것저것 만들어 싸기 바빴다.
아기는 돌아갈 날이 가까워진 걸 느낀 건지 전날부터 눈에 띄게 칭얼거렸고, 덕분에 떠나는 날까지 밤새 고작 두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났다.
아침부터 천근만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도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제천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날부터 1월 말까지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가셔서 굳이 아기와 단둘이 집에 있을 이유가 없기도 했고 밤부터 며칠간 폭설이 예보되어 있어 눈이 많이 오기 전에 떠나기로 했다.
출발 직전 나를 싸주고 남은 반찬들로 서둘러 아침을 먹는데, 내내 죽상인 나를 보던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밝아야 아기도 밝게 크지. 아기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해. 아기도 엄마 표정을 다 읽어.”
그 말에 나는 시골에서 혼자 아기 키우는데 밝을 수가 있겠냐며 뾰로통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어 아빠는 “예전엔 우리도 그렇고 할머니들도 애들을 다 그렇게 키웠다. 둘, 셋도 키웠는데 애 하나 키우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냐”는 말을 했다.
순간 울컥했다.
근처에 사는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첩첩산중에 애랑 둘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엄마 아빠도, 할머니도 제천이 고향이니 아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아빠가 말하는 그때는 그래도 주변에 사람은 살지 않았느냐고 말을 하다가 결국 눈물이 터졌다.
그 이후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흐르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밥만 계속 씹었다.
다시 그 소름 돋게 외로운 시골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말없이 연신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던 엄마도 울컥했는지
“널 보니까 목이 막혀서 밥이 안 넘어간다”는 말을 하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이럴 것 같아서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냐고,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끝까지 말릴 걸 그랬다고, 이미 다 지난 이야기를 하며 내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결국 나도 눈물만 뚝뚝 흘리다 집에서 먹는 마지막 밥을 다 먹지 못한 채, 도망치듯 짐을 싸 들고 나왔다.
친정에 고작 열흘 머물렀을 뿐인데, 올 때 이 짐을 어떻게 가져왔나 싶을 정도로 짐은 많아져 있었다.
올 때도 혼자였으니 갈 때도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이 어린 아기를 데리고 어떻게 혼자 가냐며 끝내 함께 화천으로 향했다.
화천으로 향하던 길, 아빠 차에 내 짐을 모두 싣고 뒤따라오고 엄마는 내 차 뒷좌석에 앉아 도착할 때까지 내내 아기를 봤다.
운전하는 동안 새삼 제천에서 화천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나 싶었다.
한참 달렸다 싶어 시간을 보면 아직도 도착까지 두 시간 반, 두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제천에 올 때는 정말 짧았는데, 돌아가는 길은 가기 싫은 내 마음만큼이나 너무도 길었다.
춘천에 들어서며 익숙한 길들이 보이자 숨이 턱 막히기 시작했고,
춘천을 지나 굽이진 첩첩산중에 눈이 쌓인 화천의 풍경을 보자 또다시 눈물이 났다.
화천에 가까워질수록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나 차를 세우고 잠시 바람을 쐬다 다시 출발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까지도 내가 다시 혼자 남겨질 집으로 돌아가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근처에 아무것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감옥보다 더한데, 그 감옥으로 내 발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제천에서 출발한 건 아침이었는데 오후 늦게 가 되어서야 여전히 텅텅 비어 있는 동네를 지나 집에 도착했다.
곧 눈이 쏟아질 듯 하늘은 까맣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풍경 속에서 부모님은 짐을 내려주고, 눈이 내리기 전에 세 시간을 내려가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다.
엄마는 떠나기 직전, 내게 혼자 울지 말라는 말을 하고 집을 나섰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아기와 다시 단둘이 남은 집에서 나는 두 시간 넘게 울고 있었다.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실내 온도는 고작 6도였고,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집에서 아기 외투도 벗기지 못한 채 난방이 올라올 때까지 그저 꼭 안고 울었다.
맑은 아기 눈망울은 내가 우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익숙한 듯 낯선 집안을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그런 아기를 보며 더 감정이 북받쳐올라 괜찮다고, 우리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앞으로 엄마랑 잘 살아보자며 주문 같은 말을 계속 되뇌었다.
집에 돌아와 정리도 하지 못하고 내내 울고 보니, 집에서 아침을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뭘 먹으려 냉장고를 열어보니 역시나 안은 텅 비어 있었고, 혼자 생활하며 대신 장을 봐줄 사람도 없기에 결국 아기를 안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면 있는 슈퍼에서 장을 보고, 햄버거도 포장해 왔다.
앉은자리에서 간식까지 먹고 나서야 조금 힘이 나, 냉장고를 채우고 어지럽게 놓인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고 출발할 때 널어두었던 빨래를 정리하며 다시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아기는 더 힘차게 발을 구르고 눕혀둬도 어김없이 계속해서 뒤집고 돌아서면 어딘가에 부딪혀 울며 더 이상 내게 슬플 새가 없게 하려는 듯 혼자서 바삐 움직였다.
모빌을 보고 있으라고 눕혀놓으면 예전과 다르게 모빌을 잡아당겨 놓지 않거나 사부작거리며 고정시켜 놓은 역류방지쿠션의 고정밴드를 풀며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누워서 조금씩 돌아다니는 아기를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아기가 있으니 그래도 이곳에서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아직 화천의 남은 겨울은 길다.
하지만 다시 아기와 단둘이 남겨진 이곳에서
다시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다독이고 싶다.
나는 엄마니까, 잘 해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