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난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by 홍미

나는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들부터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까지 그래도 주변에 꽤 사람이 많은 편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는 그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이렇게 모두 고마운 존재들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속엔 친분의 레벨이 자연스레 자리 잡혀있긴 하다.

'속사정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편한 사람, 모임이 있을 때 보는 사람'

정확하게 구분 짓기는 어렵겠지만 , 두루뭉술하게 정리하자면 이렇게 나눠져 있는 셈이다.


그리고 예전만큼 누군가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내 인간관계도 지금처럼 흘러갈 줄만 알았다.

새로운 인연이 아닌, 내게 있던 인연을 떠나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최근 내가 속사정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친구의 꿈은 일러스트 작가로, 본인만의 특색 있는 캐릭터 굿즈 등을 만들어 제작하는 것이 목표였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이십 대 후반 조금은 늦은 나이에 시작을 했다.

난 그런 친구를 볼 때마다 그녀의 용기와 추진력에 감탄하며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작가 활동을 준비 중이지만, 사실상 수입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 회사의 사무 보조로 채용 중인 공고를 슬쩍 내밀었다.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친구는 작가 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위치도 가깝고 더 단순한 일을 찾고 싶다고 했다.

실질적으로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친구의 고민만 들어주다 왔는데,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밤샘 야근으로 지쳐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이 들어, 친구의 전화 한 통을 놓쳤다.

콜백을 했지만 돌아온 건, 짧지만 강한 카톡 메시지 한 줄이었다.

'내가 요즘 너무 힘들다고 말했었는데, 너는 나를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기에, 몇 번의 전화를 더 한 끝에 그녀의 속마음을 들었다.

결론은 '아르바이트는 구했는지,작가 일은 잘 되어 가는 건지' 먼저 걱정해 주지 않았다는 친구의 울분이었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내 마음이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통화를 마무리하고, 난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평소에 연락하거나 만나서 대화를 할 때도 대부분의 주제는 그 친구의 고민과 걱정거리였다.

혹여나 친구의 자존감이 낮아질까 봐, 회사에서 승진을 하거나 수상을 했을 때도 직접 말하지 않았다.

난 항상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어 했고, 그 친구는 그런 내게 기대며 더 많은 것들을 바라게 된 것 같았다.


만약 우리가 좀 더 어렸다면 서로 삐지고 화해하며 어떻게든 이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애썼을 테지만,

지금 그러기엔 각자 처한 상황과 가야 할 길이 서로 너무 다르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친구와 내가 함께 해서 좋았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그래서 나는 훗날 멋진 일러스트 작가로 성공해 있을 친구에게 미리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난 네가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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