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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Oct 08. 2024

부유하면서 개구진 얄개의 개과천선

고교 시절의 추억, <고교 얄개>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반 친구들 얼굴이 채 눈에 익기도 전에 ‘고교’라는 단어를 머리에 붙이고 출현한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미 서울에서 대성공했다는 카피까지 신문광고에 달고 나타났으니 같은 처지에 있는 고교생인 바에야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얄개’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고 있었으니 더욱더 그랬다. 보러 가긴 가야겠는데 고교생 교복 입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런지 혼자서 가긴 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고민 끝에 같은 반 친구를 꼬셔서 갔다. 그 영화의 제목은 <고교 얄개>였고 '고교'나 '얄개'를 제목 서두에 달고 줄줄이 나왔던 시리즈의 신호탄이었다.     

     




<고교 얄개>의 원작은 조흔파 원작의 <얄개전>이다. 소설 <얄개전>은 1954년에 학생 잡지 ‘학원’에 연재된 소설이었다고 하니 참 오래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꽤 인기가 있어서 이미 1965년에도 영화화된 적이 있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안성기 주연이라고 하니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영상자료원의 기록을 보면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당시에 5만 관객이 들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관객이 들었던 것 같은데, 크게 히트했던 <고교 얄개>에 10여 년 앞선 얄개 영화여서 그때는 어떻게 얄개를 묘사했는지 보지 못해서 아쉽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주인공은 두수 역의 안성기와 여자 친구 인숙 역의 안인숙인데 이들의 모습은 포스터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대신에 당시 유명했던 배우 김승호와 조미령의 사진이 크게 실려있다. 유명 배우를 간판으로 내걸어야 손님이 더 들 것 같아서 그랬을 것 같지만 그런 모양의 포스터를 보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영화였을지 더 궁금해진다.


1965년 영화 <얄개전>의 포스터


개인적으로 ‘얄개’란 단어를 처음 듣게 된 건 TV에서였다. 1965년의 영화 <얄개전>은 보지 못했지만, 1969년 KBS-TV에서 제작된 드라마 <얄개전>은 봤기 때문이다. 당시의 신문 기사에 이 드라마의 방영 취지라면서 방송국이 밝힌 내용이 재미있다.


교육 중인 어린이 탤런트를 출연케 하여 아역 연기 진을 보강하고 어린이 연속극 붐을 조성케 하자는 것과 어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프로를 제작해 보자는 것이다. (1969년 9월 4일 동아일보)


드라마 <얄개전>을 챙겨보긴 했지만 내용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의 기사를 보면 극본은 원작자인 조흔파 작가가 맡고 있었으니 원작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중학 시절에 소설 <얄개전>을 읽게 되었다. 그때 “흔파 학생 소설 선집”이나 “한국 소년 소녀 명작 선집“이라는 제법 거창한 타이틀을 걸어놓고 청소년이 주인공인 가벼운 소설들이 시리즈로 발매되었었다. 그 시리즈의 애독자이기도 했던 경험이 <고교 얄개>을 바로 달려가서 보게 된 동기로 작용한 것 같다. 그런 시리즈의 소설집을 이것저것 보며 사 모으기도 했지만 지금은 없어져 버려서 어느 정도의 양이었는지 가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고교 시절 그런 내용의 영화들이 붐을 일으키면서 그런 선집 속에 있던 소설들이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요안 원작 <남궁 동자>, 조흔파 원작 <에너지 선생>, 오영민 원작 <내일 모레 글피>등이 그때 영화화된 소설이다. <내일 모레 글피>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제목은 <네가 좋아>였다. 이런 소설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서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지만 특히 그런 시리즈 소설을 사게 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신동우 화백이 그린 표지 때문이기도 했다. 신동우 화백이 그린 홍길동 만화를 좋아했던 팬으로서의 여파가 거기까지 미친 셈이었다.       

  



고교 얄개 (1977)



<고교 얄개>의 영화화가 결정되면서 신문에서도 그런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신문기사로 알려지길, 처음에는 얄개 역할을 공모를 통해 뽑으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아역 출신 연기자 이승현에게 맡기게 되었고 교장 역할을 맡은 이는 이탈리아 사람 라 비토리오라는 사실도 전해주고 있었다. 그때 이승현은 인터뷰에서 “내가 바로 얄개여서 연기하기가 좋다.”라고 했다고.


<고교 얄개>가 개봉되는 사실을 알리는 기사들에서 이 영화의 원작을 소개하는 문구들을 보면 조흔파 원작소설 <얄개전>이 얼마나 많이 읽혔는지를 말해준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본 조흔파 원작의 <얄개전> (1977.1.16. 조선일보)

지난날 10대 소년소녀들이 즐겨 읽었던 조흔파의 명랑소설 <얄개전> (1977.1.15. 동아일보)

   

경향신문에서 연재된 「장수양서(長壽良書) 순례」라는 칼럼에서는 <얄개전>은 그때까지 50만 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1954년에 단행본으로 발매된 것이 시작이니까 70년대까지를 생각하면 20년간인데 그렇게 대를 물려가며 인기가 있는 청소년 대상 소설이 <얄개전> 외에도 있는지가 궁금할 정도다.

     


<고교 얄개>를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 본 게 사실이다. 그때까지 까불며 설레발이치는 고교생이 주인공인 영화를 달리 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지금 보면 25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친 영화로서의 큰 특징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처음 볼 때도 세월이 지난 원작을 기반으로 한 각본이라지만 ‘낙제’라는 제도도 없어진 시점에 그런 내용을 그대로 옮긴 점부터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면을 느끼기도 했고, 선생님 앞이라면 꼼짝도 못 하던 시절의 수업 시간에 얄개 짓을 일삼는 행동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그때로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 봐도 역시 그런 스타일의 영화가 그때까지 없었기에 색다르게 느꼈던 것이란 생각이 우선 들었다. 임예진이 등장하며 성공한 하이틴 영화는 여학생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얄개의 등장으로 남학생이 주인공이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흥행 요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여고생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주로 예쁘고 조신한 소위 범생이 주인공이 대부분이었고 그 옆에 있는 친구가 주로 별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남학생이 중심인 얄개 영화에서는 주인공 자체가 별나다는 점에서 남학생들에게 더 어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저항하고 반항하는 사춘기의 절정이기에 뭔가 반항하는 모습을 드러냈던 게 어필하지 않았을까. 반항하는 모습을 거칠고 폭력적으로 표현한 영화들은 있었지만, <고교 알개>에서는 그것을 개구진 모양으로 바꾼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두수(이승현)의 과한 개그도 그렇지만 두수의 절친 영호(진유영)의 모습은 장난으로 그치는 별난 학생보다는 불량스러운 학생의 전형이라는 걸 누구나 보면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러나저러나 주인공들이 기성세대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 반항적인 면을 보인다는 면에서 우선적인 공감을 얻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에다 또 한 가지를 들자면 당시 도회지소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잘살아보자는 표어를 걸어놓고 살던 시절이었다. 인숙(강주희)의 조그만 가게, 호철(김정훈)의 옥탑방, 백 선생(하명중)의 자취방은 그때로서는 익숙한 서민들의 모습이다. 그 속에는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인숙은 전형적인 서민층, 누나가 공원인 호철은 전형적인 하층민, 조그만 단칸방에 자취하는 백 선생은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상경한 시골 출신 이주민의 모습이다. 결과로 보자면 풍요로움 속에서 얄개 짓에 빠져 있던 교수 아들 두수나 의사 아들 영호가 그런 서민들의 의기(意氣)에 무릎을 꿇고 만다는 메시지도 들어있던 셈이다. 굳이 그런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에 담긴 구도로 따지자면 그런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면에서는 권선징악이란 전형적인 메시지가 담긴 영화도 되는 셈이다.


<고교 얄개>는 그렇게 보자면 이중적인 측면이 있는 영화다. 기득권이랄까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란 면에서 얄개 짓에는 박수를 보내놓고선, 그 얄개 캐릭터들의 환경을 보자니 부유하기에 가능했던 짓이라는 판단에 최종적으로는 그런 오만과 불성실에 대하여 철퇴도 내렸던 셈이다. 간단하게는 얄개의 개과천선으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얄개 두수가 일인다역으로 참으로 바빴던 영화였다. 얄개 짓으로 어른들을 놀려 먹으며 박수받는 듯하다가 결국은 그런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행태에 대한 보답(?)으로 쥐어 터지기도 하고 우유 배달도 하고 그렇게 싫던 공부도 하고 심지어 교통사고 당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했으니. 그래도 마지막은 즐겁고 행복한 얄개 짓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얄개로서의 명분을 갖춘 해피엔딩이었다.



반항의 웃음으로 시작해서 참회의 눈물도 흘리고 개과천선한 열정으로 뿌듯함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명분을 갖춘 웃음을 되찾는 것으로 끝을 맺었던 영화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어지간한 건 다 금지시켰기에 사방이 꽉 막혀있었던 그 시절 청소년에게 숨통이 트일 여지를 가상적 공간에서나마 보여줬던 게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현실과 동떨어진 면은 있어도 얄개의 방정에 웃고 얄개의 선행에 박수를 보냄으로써 대리 만족감을 주었던 그 시절 영화였다.




보태는 말

얄개 두수가 친구 호철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벽에 걸려있던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은 당시 이발소든 식당이든 가게든 어디를 가더라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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