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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Oct 15. 2024

스텔라의 뺨에 맺힌 눈물 한 방울

고교 시절의 추억, <라스트 콘서트>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등장했다. 그해 3월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그 영화를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하는데 누구랑 봤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랑의 영화 그것도 눈물 줄줄 흘릴 수 있는 영화라면 아무나 보고 가자고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질질 눈물 짜내기 위한 영화라고 생각되면 패스하던 시설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만큼은 두말없이 개봉관으로 달려가서 보았다. 그때까지 전혀 몰랐던 여배우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내 타입으로 예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눈물 한 방울이 뺨에 흘러 있는 그 모습이 뭔가 믿음을 준다고 할까 확실히 울 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뭐 그런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제목도 한몫 거들었다. <라스트 콘서트>라고 하니 마지막으로 어떤 콘서트를 열어서 사람들을 울릴지 그것 또한 궁금했다.



   

    

<라스트 콘서트>의 주인공 스텔라 역은 파멜라 빌로레지(Pamela Villoriesi)라는 이탈리아 사람이라는데 처음 보는 배우였다. 광고에는 “이태리 최고의 신성(新星)”이라고 쓰여 있지만 관객들 관심 끌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남자 주인공 리처드 존슨을 “할리우드 여배우 킴 노박의 전 남편”이라고 소개하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남자 배우 역시 잘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방점을 찍었던 결정적인 한 방은 일본 영화 잡지로부터였다. 중학교 때부터 시내 외국 서적 골목에 가서 일본 영화 잡지를 뒤적거리곤 했었는데, 투표한 건지 어쨌는지 매달 그달의 최고 인기배우 사진을 싣고 있었다. 파멜라 빌로레지라는 처음 보는 얼굴이 최고 인기 여배우에 올랐던 페이지를 본 적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기억으로는 그녀와 인기 1, 2위를 다투던 여배우가 제시카 랭(당시에는 제시카 렌지라고 불렀다)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시카 랭 역시 신인이었는데 그녀를 주목하게 한 영화는 <킹콩>이었다. 일본은 <라스트 콘서트>를 우리보다 먼저 상영했기 때문에 잡지에서 봤을 때 파멜라 빌로레지는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우리나라에 <라스트 콘서트>가 상영되면서 포스터의 눈물 한 방울 그녀가 바로 일본 잡지의 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매력 있길래 일본에서 그토록 인기를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의 리처드(리처드 존슨) 그리고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지)



라스트 콘서트 (Dedicato A Una Stella, 1976)     



<라스트 콘서트>는 원작이 있는 영화였다. 소니아 몰테니(Sonia Molteni)라는 작가의 소설이었는데, 영화의 성공을 짐작했는지 영화가 개봉하기 무섭게 소설도 번역 출판되었다. 번역자는 당시 영화 평론으로 유명했던 조선일보의 정영일 평론가였다. 영화의 성공에 힘입었는지 이 소설은 금주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런 사실로 미루어봐도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먹힐 수밖에 없는 이야깃거리였나 보다. 그때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원작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조금 궁금하긴 하다. 


소설 '라스트 콘서트' 기사 (1977년 2월 22일 조선일보, 1977년 3월 29일 매일경제)

         




<라스트 콘서트>의 주인공 스텔라는 비련의 주인공이긴 해도 슬프지 않은 쪽으로(?) 굉장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였다. 그냥 예쁘다기보다는 귀엽고 장난스러운 표정이 어울리면서, 커다랗지만 선한 눈매에 길지 않은 머리 모양까지 순진하고 발랄한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외모에, 주로 바지를 입고 제 맘대로 굴며 상대방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말괄량이 면모까지, 보고 있으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소녀 캐릭터였다. 그런 아가씨가 자신의 삶은 저물어 가는데도 늦게 만난 아저씨뻘 연인을 돕기 위해 끝까지 응원하는 순수한 모습에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스텔라는 비운의 슬픔이 반전 역할을 하기에 최고의 캐릭터였다. 


<라스트 콘서트>의 서사적 구성은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부터 사랑을 확인하기까지가 전반부, 리처드의 재기를 위한 노력으로 마지막 콘서트가 이루어지기까지가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스텔라의 발랄함과 리처드의 퉁명스러움이 부딪히며 이루어내는 묘한 모습들을 웃음을 지으며 지켜보게 되는 전반부야말로 이 영화에 많은 관객이 공감하게 만든 부분이다.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밝고 개구쟁이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움직이는 스텔라의 몸짓에는 화창한 삶이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밝은 듯 애잔한 느낌이 드는 주제 음악의 멜로디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가는 스텔라의 삶을 위로하려는 듯 스텔라에게 항상 붙어 다녔는데 그 멜로디가 이 영화에 미친 영향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라스트 콘서트>의 성공에는 우선 스텔라라는 캐릭터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 파멜라 빌로레지의 선택도 기가 막혔고. 그 둘 못지않게 그 캐릭터와 그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던 주제 음악 역시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 음악이 없었다면 그 영화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봤을 정도니까. 결국 주인공 캐릭터, 주연 여배우, 주제음악 그 세 가지가 잘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포스터의 눈물 한 방울로 그 천 배 만 배나 되는 눈물범벅을 만들었으니 그만하면 성공이었다.




<라스트 콘서트>의 주제곡도 둘이라고 볼 수 있다.  OST의 제목으로는 ‘세인트 미셸(St. Michel)’과 ‘스텔라를 위하여(Dedicato A Una Stella)’로 되어 있는 두 곡이다. ‘세인트 미셸’ 쪽이 주제곡이라면 이 곡을 꼽을 정도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클래식풍의 ‘스텔라를 위하여’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분위기로 보면 '세인트 미셸'은 전반부, '스텔라를 위하여'는 후반부의 분위기를 끌고 간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라스트 콘서트>는 우리나라에 영화 OST만으로는 발매된 음반이 없었고, 주로 영화 주제음악 모음집에 끼어있는 형태의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불법 음반이었던 빽판 형태로 발매된 음반도 부지기수였지만 공식 OST 음반의 복제 음반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시절 그 영화"라고 하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그 음악"의 대명사가 바로 <라스트 콘서트>의 주제 음악이었다.


영화 음악 모음 공식 음반 (왼쪽), 복제 음반 (오른쪽)
일본에서 공식 발매된 OST 음반


귀엽고 발랄하고 애틋한 스텔라를 연기했던 파멜라 빌로레지는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는 제대로 보질 못했다. 출연한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관객의 주의를 끄는 주인공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영화 단 한 편으로 기억되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스잔나>의 진추하도 그런 배우인 셈인데, 묘하게도 두 영화는 만들어진 해(1976년)도 같고 두 배우의 생년(1957년)도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적 히트는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라는 점도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표현했던 여배우의 모습을 더 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서 더 뚜렷한 추억으로 남았다는 좋은 면도 있다. 




어쨌든 주인공의 눈물 한 방울에 말려들어 눈물 한 바가지를 퍼준 영화가 <라스트 콘서트>였다. 슬픈 결말을 각오하고 봤음에도 기어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영화 볼 때 옆자리에서 하도 울어대서 그때 울었는지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머리 다 큰 머슴애 자존심에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겠지만 그 결과가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참 슬픈 영화였다는 기억은 있지만 옆 사람들의 엄청난 슬픔에 파묻혀 버려서 본인의 슬픔은 어떻게 주체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아이러니가 생긴다. 이런 결말을 원할 리는 절대 없음에도 그런 사랑 즉 스텔라 같은 사랑스러운 소녀는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이라면 자꾸 보기 싫지만, 스텔라 같은 소녀는 보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럼 스텔라 같은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없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수밖에! 여전히 스텔라는 귀엽고 예쁘고 발랄해서 매력적이지만 항상 애틋한 여운을 남겨놓고 떠나버린다. 보고 또 봐도 똑같은 결말이구만 언제나처럼 슬프다. 슬픔을 남기고 떠날 줄 알면서도 지겹지 않은 캐릭터의 그 소녀를 보기 위해서는 그 슬픔을 계속 감수할 수밖에. 


이런 경우를 놓고 보면 영화란 게 제법 잔인한 구석도 있다. 그래서 눈물 한 방울을 떨구는 모습이 제일 마음에 드나 보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이자 바로 이 모습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싶어서.  


스텔라의 눈물 한 방울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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