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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Sep 17. 2024

돌이켜 생각하고 싶은 일

중학교 시절의 추억, <추상>


개인적인 영화 감상기에서 충격이었던 영화를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추상>이다. 아직 영화 감상 경력이 일천했던 시절에 본 영화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이 그렇게 처절하게 최후를 맞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그렇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녀의 처참한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비춰준다는 점에서 잊어버려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 때문인지 어지간히 감동받은 영화라면 더 싼 극장에서 다시 보기를 감행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볼 엄두를 내기 힘들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추상 追想 (Le Vieux Fusil / The Old Gun, 1975)

 

<추상>을 처음 보았을 때 놀란 점은 두 가지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여자 주인공의 죽음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이 그 하나고, 또 하나는 나치 군인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주인공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실 중학생이던 당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독일군과 싸우는 투쟁적인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원제목을 영어로 ‘The Old Gun’이라고 크게 써 붙여두었기 때문에 불의의 적과 맞서 싸우는 총잡이 비슷한 주인공을 생각했던 면이 있었다. 2차 대전에서 나치군과 싸우는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필립 느와레(Philippe Noiret)의 첫인상이 그런 이미지에 어울려 보였을 리가 있겠는가. 하여튼 그런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주인공이 끝까지 복수를 해낸다는 점도 흔치 않은 경우라서 인상적인 측면도 있었다.




너무나 단란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자전거 하이킹 장면이 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그런 오프닝 타이틀에서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내 클라라(로미 슈나이더)가 화염 방사기에 맞아서 시커멓게 녹아내린 듯한 모습으로 죽은 장면을 본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저렇게 단란한 가족의 포근한 분위기를 이렇게 비참하게 해체해 버리다니 이런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안전한 곳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그곳 마을 주민들은 깡그리 교회 안에서 총에 맞아 죽어 있고, 사랑하는 딸과 아내는 총과 화염 방사기에 맞은 흔적을 절절히 밝히는듯한 모습으로 눈앞에 놓여 있으니... 처음 볼 때의 그 충격은 정말 묵직했다. 아내와 딸이 당하는 모습에 충격받은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 줄리앙의 마음이 전해 오는 감정이입의 순간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추상>이란 영화에서의 이성은 거기까지였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제정신이 몽땅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다음에야 둔하고 순해 보이는 줄리앙이 어떻게든 녹슨 총 한 자루로 제발 견디어 주길 애태우며 쳐다봤을 뿐이었다. 당신 신문광고에는 “볼 때는 통쾌하고, 보고 나면 슬퍼지지만”이라는 선전 카피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통쾌는 무슨 통쾌인가 살아주면 다행이고 어떻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미 단장지애(斷腸之哀)와 분기탱천(憤氣撐天)이라는 사자성어를 쓰고도 남을 일이 벌어진 마당인데 더 슬프고 안타까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1976년 3월 14일 조선일보
신 유럽기 "전쟁유적의 보존" (1982년 12월 15일, 경향신문)


<추상>에 대해서 “전쟁 때 실화를 다룬”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당시 신문 칼럼을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보도하거나 선전에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1944년 6월 10일 프랑스의 오라두르(Oradour)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참사가 배경이 된 영화였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는 중이었던 독일 나치군들이 레지스탕스를 핑계로 한 마을 사람들을 기관총과 폭탄으로 몰살시킨 사건이다. 그때 희생자 수는 공식적으로는 642명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천명에 가까울 거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그 비극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존하자는 여론에 따라 당시부터 그 마을의 모든 것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추상>에서 비극의 규모는 줄여서 보여준 셈이지만, 줄리앙의 아내와 딸이 희생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강한 임팩트를 싣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다.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지켜보았기에 잊을 수 없는 영화로 기억은 하지만 한편으로 아내와 딸을 잃은 주인공의 심정을 생각할 때 저 정도로는 분노의 ‘ㅂ’ 자도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아서 가슴을 친 영화 중의 한편이었다.



<추상>을 생각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그 영화는 <쎄븐 엎스>라는 제목이었는데 당시에 본 이후로는 전혀 보지 못한 영화다. 그럼에도 계속 두 편을 묶어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생뚱맞은 이야기 같지만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답답함을 감수시킨 영화였다는 점에서다. <추상>은 필립 느와레라는 배우가 등장함으로써 시원한 액션을 기대하기는 힘든 영화로 보였지만, <쎄븐 엎스>의 주인공은 스파게티 웨스턴 <쟝고>로 유명한 프랑코 네로가 경찰로 나오고 있었기에 뭔가 통쾌한 해결이 될 걸로 기대했던 게 답답함을 느끼게 한 더 큰 원인이었다. <추상>과 마찬가지로 <쎄븐 엎스>에서도 프랑코 네로의 딸이 악인에 의해 희생된다. 하지만 그 악인을 쫓아가는 주인공이 손에 든 것은 작은 권총 한 자루뿐이었고 안타까운 딸의 희생을 생각하면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액션으로 마무리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즉 두 영화 다 끔찍이 사랑하는 가족의 안타까운 희생이라는 엄청난 슬픔을 줘놓고는 그것을 지켜봤던 관객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강력한 카운터펀치는커녕 비슷한 것도 없어 보였다는 점에서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생각하자면 당시 통쾌한 액션의 최고봉이었던 이소룡 신드롬 때문에 그런 기대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총이나 칼도 아닌 맨몸과 곤봉으로 무참하게 적을 제압하는 그것도 아주 현란한 기술로 뭉개버리는 그런 맛에 길들여진 중학생의 철없는 불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당시에 그렇게 느꼈던 기억이 있는 거야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추상>을 다시 보면서는 그런 답답함을 똑같이 느꼈던 것은 아니다. <쎄븐 엎스>를 다시 보더라도 예전 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슬픔을 시원하고 통쾌하게 지울 방법은 없다. 특히나 <추상>에서 보았던 슬픔과 분노의 무게를 어떻게 줄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제는 <추상>이나 <쎄븐 엎스>의 그런 상황에 대하여 표현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는 나쁜 놈들을 더 확실하게 밟아주지 못해서 답답한 심정이 가득했던 영화라고 했는데, 이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 분명하게 전해졌던 영화라고 해야겠다고.



<추상>은 전쟁의 비극을 정면으로 보여주며 그 처절한 참상 속에서도 일구어간 사랑과 행복을 회상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성공을 거둔 영화였다. 당사국이어서인지 프랑스 최고 권위의 영화상인 세자르상을 3개 부문 – 작품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 에서 수상했고, 프랑스에서의 흥행도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영화였기에 그만큼 다시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 다르게 생각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제목이다. 예전에는 <추상>이란 제목보다 원제인 <오래된 총>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희생과 복수의 장면에 중심을 두었던 탓이다. 희생 장면에서 받은 충격과 동시에 일었던 분노를 복수 장면에서 덤까지 끼워 되돌려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안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줄리앙과 클라라의 사랑이 진행되는 과정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장면에 더 눈길이 갔다. 저런 사랑이 없고 저런 행복이 없었다면 무슨 충격과 분노가 그리도 강하게 다가오겠나 싶은 생각에. 그런 생각이 드니 처음과 끝에 나오는 자전거 하이킹 장면처럼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을 회상하는 장면이 총부리 겨누고 싸우는 장면보다 더 소중한 걸 보여준다는 생각에 <추상>이란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만드는 것도 가지가지다. <추상>을 보면서 새삼 느낀 세월의 한 가지는 시선이 머무는 곳의 변화 즉 보기 나름이란 것이었다. 살다 보면 말하긴 쉽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많은데, 영화는 간접적 경험이어서 그런지 세월 따라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가 더러 있다. 예전에는 <추상>을 보며 슬픔과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꼈었는데, 지금은 똑같은 영화를 보며 사랑과 행복의 과정에 더 많은 눈길이 가니까 말이다. 사전의 뜻을 보니 예전에는 ‘상기’할 것을 보았고 지금에야 ‘추상’을 보았구나,라는 느낌이다.


추상(追想)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상기(想起)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여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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