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의 추억, <닥터 지바고>
<닥터 지바고>의 개봉 소식에 기분이 들떠있었다. 소련 – 영화 볼 때는 러시아를 그렇게 불렀다 – 을 배경으로 하면서 눈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영화,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아름다운 멜로디 ‘라라의 테마’가 심심하면 흐르는 영화, 인기 좋았었던 국어 선생님도 감탄을 거듭하며 감상평을 펼쳤던 영화, 언론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일색인 노벨상 수상 작가의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 얼마나 기대가 되었겠는가. 그래서 단숨에 달려가서 보았다. 세상에 가득 쌓인 눈도 좋았고, 라라의 테마 멜로디를 요모조모 변주하여 들려주는 음악도 좋았고, 커다란 대륙을 낀 서사의 장대함에도 압도를 당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생각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는 느낌에 다소 아쉬웠다. 로맨틱 코미디라면 몰라도 진지한 갈등이 끼어있는 애증의 서사에는 약한 면이 있었던지라 이 역시 그런 정서가 부족한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다시 보니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그때는 철이 덜 들어서 그랬나 보다 했다. 그런데 러닝 타임 또한 그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1965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영될 때의 러닝 타임도 3시간 17분으로 나와 있고, 그 뒤에는 좀 더 장면을 추가한 버전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3시간도 채 상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시 극장의 상영 시간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긴 그때의 버전으로도 좋은 평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고려하면 감성이 부족했던 탓은 맞다.
<닥터 지바고>라는 제목은 1978년에 두 번째로 개봉될 때의 제목이었고, 1968년 처음으로 개봉했을 때의 제목은 그냥 <지바고>였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해는 1965년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상영이 결정될 즈음인 1968년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면 제목을 ‘의사 지바고’로 소개하고 있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원작이 알려진 것이 1957년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한 해가 1958년이었는데, 우리나라 신문을 검색해 보면 그때부터 줄곧 소설 제목을 「의사 지바고」라고 붙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막상 개봉할 때의 제목은 <지바고>라고 고쳤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그 이유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1978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닥터 지바고>라는 제목으로 통용되고 있고, 더 이상 바뀔 일은 없을 것 같다.
<닥터 지바고>를 처음으로 수입하는 데에도 벽이 있었음을 예전 신문 기사로 알 수 있었다. 그때가 미국-소련 간의 냉전 시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입사에서는 1966년에 수입을 신청했지만, 정부는 나름의 이유를 대며 수입을 사실상 거부했었다. 그때의 신문 기사를 보면, “소련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과 공산권을 배경으로 한 화면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수입허가를 보류했었다.”라고 하다가 “문공부는 동남아에서 한국만이 상영을 보류했고, 또 「의사 지바고」는 사실상 반공영화라는 여론을 참작, 이번에 수입추천을 하기에 이르러 연말쯤엔 상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에서 상영 예정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영화 한 편 보는데도 눈치를 봤던 셈이다.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생각해 둔 게 하나 있었다. 러시아에서 기차여행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날 동안 기차만 타고 계속 달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역에서 역까지가 제일 먼 두 도시를 왕복해도 하루면 충분한데, 기차로 몇 날 며칠을 여행한다면 얼마나 큰 대륙인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영화에서 눈발은 강하게 날리는데도 드넓은 광야를 가르며 계속 달리는 기차를 보고 있으니, 거대하고도 황량한 대륙을 눈 속에서 횡단하는 여행이란 얼마나 근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비슷한 것도 시도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 시도할 계획도 잡지 않고 있다.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포기한 것이다. 미국 영화 <자이언트>로도 큰 땅덩어리의 거대함을 나름 간접 경험한 적이 있지만, 미국 텍사스의 모래바람보다는 하루 종일 눈이 휘날리는 러시아의 풍경이 더 낭만적으로 보였기에 들었던 생각이다. 하여튼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얼어붙은 땅에 대한 척박함보다는 눈 내리는 낭만적 이미지로 접근하려 들었던 건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와 라라 안티포바(줄리 크리스티)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 애썼던 탓이었을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순결한 사랑의 멜로디로만 들었던 ‘라라의 테마’ 탓이기도 했다.
라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묻기도 했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는지. 라라가 상상했던 만큼 사랑스럽던가, 라고 다소 공격적으로 물어본 적도 있었다. 물론 원작을 읽지 않았던 때라서 영화에서의 라라에 대한 것이었다. 라라의 이미지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좀 다르게 보였고, 그런 이미지만 가지고는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라라의 테마’의 모델로 삼기에 전반부의 라라는 사춘기 소년의 눈으로는 순정파 소녀로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라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라라의 테마’의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스스로 안은 것이다. 물론 그 답은 찾지 못했다. 라라 캐릭터에 대한 아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라’라는 캐릭터는 도무지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고, 별로 애처롭게 보이지도 않더라는. 유리 지바고와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영화 속에선 안타깝고 원통하게 유리를 죽게 만든 원인 제공자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애처로운 죽음 같은 건 나오지도 않았고, 묘 앞에서 만난 유리의 형의 도움을 받다가 또 사라졌다는 점도 그런 생각을 더 부추겼다. 착하고 예쁜 부인 토냐(제랄딘 채플린)를 떠나보내고 선택했던 라라였음에도 그녀의 안전을 생각해서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리였다. 그런 라라를 눈앞에 두고 쓰러지는 유리를 보는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럼에도 그 자리를 피하듯 씩씩하게 걸어서 멀어져 가는 라라의 뒷모습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등 뒤에서 유리가 쓰러지는 걸 모르고 걸어갔던 라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단순한 결과론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유리가 라라보다 편하게 태어났음에도 고생도 더 했고, 짐도 더 많이 졌고, 삶도 더 짧았고...... 여러 말이 필요 없이 유리가 더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닥터 지바고>를 처음 봤을 때는 먼저 본 선배들의 말만 믿었고, 감미로우면서도 애절한 모리스 자르의 음악만 떠올린 탓에, 유리와 라라의 사랑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려다 아쉽게도 뭔가 빗나가고 흐려진 듯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나마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코드를 꼽으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 있는 순간이면 등장하는 ‘발랄라이카’ 장면이었다. 어린 꼬마 유리가 혼자서 잠들어야 하는 방 한쪽 구석에 걸린 발랄라이카는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민의 적 부르주아로 몰려 모든 살림을 빼앗기는 순간에도 다른 건 몰라도 그 발랄라이카만은 지키려 애쓰는 유리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유리가 라라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자신이 같이 갈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건넨 물건이 발랄라이카였다. 최종적으로도 유리와 라라의 딸 토냐(리타 터싱햄)가 발랄라이카를 메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유리의 어머니로부터의 전설이 이어질 것을 예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닥터 지바고>를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발랄라이카’라고 주장하고 싶다.
영화 <닥터 지바고>는 처음과 끝을 유리의 형 예브그라프(알렉 기네스)가 조카 즉 유리 지바고의 딸을 찾으려는 장면으로 이어놓았다. 그 사이는 예브그라프를 내레이터(narrator)로 내세워 동생 유리와 그들이 살아냈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곱게 태어난 유리 지바고였지만, 그 시대의 매서운 눈보라와 거센 바람을 휘몰아치는 대로 맞으며 살았던 사람이었으니 그 시대를 들려주기 좋은 캐릭터였을 것이다. 그것은 곧 한 인물의 굴곡진 개인사이자 질곡의 세월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런 시대를 의사라는 신분으로 살면서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일은 펜으로 시(詩)를 쓰는 일이었고, 손에서 놓치지 않았던 물건은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전통 악기 발랄라이카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사람들에게 전수한 것은 시와 음악이었던 셈이다. 그런 시절에 그런 일을 하게 만든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이 사랑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토냐와 같이 자라고 살았던 것이 편안한 시절에 이루어진 고운 사랑이었다면, 라라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격랑의 세월을 함께 헤쳐 가며 이루어진 거친 사랑이었다. 전선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같이 돌보면서 싹이 튼 숨겨진 사랑이었고, 전장에 끌려갔다가 모진 추위를 뚫고 죽을힘을 다해 돌아와서야 들켜버린 애절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닥터 지바고’는 그 모진 세월을 라라와의 사랑으로 버텨낸 셈이다.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소설 <닥터 지바고>는 그가 살아가면서 지켜보았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도 번복하면서 자신의 모국을 떠나지 않으려 했었고, 눈에 보이는 압박을 받아가면서도 기어이 거기서 생을 마쳤다. 라라의 모델이었다고 하는 올가 이빈스카야도 그의 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혔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는 그들이 보았던 그들 모두의 이야기였다. 유리 지바고와 라라 안티포바의 안타까운 사랑, 그 사랑의 열기를 군불 삼아 매서운 추위 속에서 그들이 버텨냈던 세월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유리와 라라가 어떻게 사랑했는지만 열심히 보려 했을 때는 그들의 사랑이 제대로 보이지 않더니, 그 세월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기 시작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절실했을지의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라라의 테마’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노래의 제목은 ‘Somewhere, My Love’였다. 그것은 참 잘 지은 제목 같다. 내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를 막연히 떠올리는 그런 사랑은 아니다. 눈앞에 두고 싶은 나의 사랑이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는데, 세상 어디에 있을지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절실한 사랑이어야 한다.
유리와 라라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