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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를 향해 달려라!
병태의 꿈! 청춘의 꿈!

고교 시절의 추억, <병태와 영자>

by 김밥


<병태와 영자>만 생각하면, 고교 시절에 교생 실습을 나온 대학생들이 생각난다. 그들 중에 ‘병태’와 ‘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생 실습을 나온 대학생들은 담임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우리 반을 맡게 된 남자 대학생 교생이 바로 ‘병태’였다. 최인호의 소설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병태를 좀 한심한 대학생 이미지로 그리고 있었는데, 그 교생 이미지가 꼭 ‘병태’ 같았다. 물론 그 교생이 한심한 사람이었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트렌치코트를 입고 왔는데도 어디서 빌려 입고 온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고, 같이 온 여자 교생한테 말을 걸 때도 어쩌면 그렇게 촌스러운지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캐릭터여서다. 한편 누가 들어도 남자로 생각되는 이름의 여대생 교생이 있었는데, 이 교생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모든 반에서 한 번씩 초대를 해서 모셔갔는데, 그때마다 고교생 머슴애들이 매점에서 사 온 과자로 교사용 탁자를 꽉 채울 정도였다. 그 여대생 교생에게 붙인 별명이 바로 ‘영자’였다. 놀랍게도 <병태와 영자>를 보러 간 극장에서 마주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인기를 얻었던 이유 그대로 ‘영자’처럼 예뻤기 때문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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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아무것도 모르고 보러 갔던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감동받아 버렸다. 너무 좋아서 인생의 영화로 삼아버린 것이다. 당시 기분으로는 캐릭터들이 웃기기도 했고, 벌어지는 상황들이 재미있기도 했고, 영화 속에 들리는 음악들도 좋았고, 보고 나서 뭔지 모를 뭉클함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그 이후에는 상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모른다. 그 허전함을 영화에 나온 노래로나마 달래고 있었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속편이 등장한 것이다. <병태와 영자>라는 제목으로.


당시 하길종 감독이 연달아 속편 영화 두 편을 찍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영화의 속편을 찍는 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하길종 감독이, 이장호 감독 연출작 <별들의 고향>의 속편 <속 별들의 고향>에 이어서 자신이 연출했던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 격인 <병태와 영자>까지 찍었다는 게 의외라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 기사였다. 그 기사에서 하길종 감독은, “속편은 독립된 작품이며, <바보들의 행진>에서 미흡했던 것을 보완하려 속편인 <병태와 영자>를 연출했다.”라고 밝혔다.


19790106 속편영화 손댄 하길종 감독_경향신문.jpg 속편 영화 손댄 하길종 감독 (1979. 1. 6. 경향신문)





병태와 영자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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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와 영자>에 대한 기사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드디어 그때 행진했던 매력적인 바보들 병태와 영자를 만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비록 가버린 친구 영철은 보기 어렵겠지만 병태와 영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하니 그것만 하더라도 어딘가, 하는 생각에. 그런데 처음 봤을 때의 느낌으로는, 나름 재미있기는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를 들자면, 첫째로는 병태가 그 병태가 아닌 탓이 컸다. 알고는 있었지만 <바보들의 행진>에서 대학생 윤문섭이 맡았던 병태 역할을 <병태와 영자>에서는 대학생 손정환이 맡았었는데, 이미 <바보들의 행진>에 고스란히 바쳐진 마음 때문이었는지 손정환 배우를 ‘병태’로 보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아울러 전편에서는 주로 대학가의 대학생 얘기였는데, 이편에서는 세상 사는 이야기로 바뀐 탓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교생으로서는 잘 몰랐던 대학 문화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에서라면 어떤 모양을 봐도 ‘낭만’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판타지에 젖어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병태와 영자>와의 첫 만남은 반가움이 컸던 만큼 공감이 컸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래도 하길종 최인호 콤비의 영화였고, 예쁜 영자(이영옥)도 그대로였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도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기분이 들었는데, 고교생의 감성으로 생각한 바는 이런 것이었다. 그들의 무대가 대학도 사회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여서, 제대로 웃기는 상황이나 울리는 상황도 없어서, 영자를 두고 벌이는 병태와 준혁(한진희)의 경쟁이 비현실적이어서, 웃기는 이유는 영자가 아기 낳는 모습까지 보고 싶지는 않아서. 말하자면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빠졌던 중학생은 고교생이 되어서 <병태와 영자>를 보면서도 전편에서 느꼈던 감정 그러니까 대학의 낭만을 기대했던 것이었다. 다름 아니라 대학생들의 낭만 캠퍼스가 무대였으면 했던 것이다. “젊은이와 사회”의 이야기를 보면서 초점을 “대학생과 캠퍼스”에 맞추려고 했으니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아쉬움이랄까 뭔가 찜찜함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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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인생의 영화로 점찍었던 <바보들의 행진>의 뒷이야기 격이어서 그토록 반겼던 만큼 <병태와 영자>도 극장에서 두 번 이상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바보들의 행진>에서 느꼈던 만큼의 공감이나 감동은 받지 못했던 터라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다는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영화에 대한 추억보다는 차라리 하길종 감독의 타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남은 영화이기도 했다. 그랬던 <병태와 영자>를 다시 만난 때는 대학 졸업 후였는데, 비디오로 본 것인지 TV에서 본 것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튼 다시 본다는 의미로 별생각 없이 보았는데, 문제는 처음 본 때와 다른 느낌이 확 다가오더란 것이다. 특히나 첫 관람 때 느꼈던 그 찜찜함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슬며시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하길종 감독이 전편에서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려 했다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전편과 속편이 이어지는 코드를 심어놓았다는 생각에 방점을 찍게 되었다. <바보들의 행진>과 관계 지어 생각해 볼 장면들이 <병태와 영자>에 많다는 게 새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영자가 병태에게 행진을 시키는 장면, 다방에서 성냥으로 탑을 쌓는 장면, 바닷가를 방황하는 장면, 가을 캠퍼스에 앉아 고민하는 장면 등등 전편이 생각나는 장면들은 물론 많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술집에서 벌이는 병태의 팔씨름 장면 그리고 병태가 졸업식 때 동상에 키스하는 장면은 전편에서 병태의 술 시합 장면이나 영철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 경례하는 장면과 대비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제일 대표적인 장면은 영자의 졸업식 때 병태와 영자가 영철의 묘에 갔던 장면이다. 그때 병태는 울면서 말한다. 3년 동안 아무도 관심 없어서 풀을 깎아주지 않아서 풀만 장발이야, 라고. 그때 배경에 깔린 음악은 <바보들의 행진>에서 병태와 영철이 장발 단속으로 쫓길 때 사용되었던 ‘왜 불러’를 차분하게 연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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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자면 <병태와 영자>의 기본적인 플롯은 여러 곳에서 <바보들의 행진>과 대비(對比)시키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것을 <병태와 영자>만의 독립적인 장면으로 봐서는 제대로의 느낌을 얻기 힘들다. 첫 개봉 시에는 그런 장면들을 그저 전편과 비슷한 장면으로 대중성에 기대 보려는 속편의 속성으로만 보았기에 제대로의 울림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세월 지나서 보니 영철을 떠나보낸 병태의 마음에서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로, 처음 볼 때와는 훨씬 다른 느낌으로 영화가 다가오더란 것이다. 예전의 찜찜함은 뭔가 느낌은 있는데 그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탓에서 온 것 같다. 병태의 텅 빈 마음에서 비롯된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병태와 영자가 재회해서 벌어지는 즐거운 분위기로만 읽으려 들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즐겁고 유쾌한 청춘 스케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청춘의 우울함과 답답함에서 비롯된 은유적 묘사를 서사의 개연성으로만 보려 들었으니 그 의미가 보일 리 없었던 것 같다.


<병태와 영자>에서 계속해서 묘사되는 상징적 퍼포먼스는 달리는 것이었다. 병태는 항상 달리고 있었다. 군대에서 영자를 만나러 오면서도, 결혼하자며 영자를 도서관에서 데리고 나가면서도, 영자를 걸고 주혁과 벌인 게임에서도, 아기 낳은 병원에 가면서도 계속해서 마지막까지 달리고 있었다. 그것이 곧 하길종 감독이 당시 젊은이들에게 갚으려고 했던 빚 같은 것 아니었을까. 전편인 <바보들의 행진>은 낭만으로 버티는 청춘 스케치를 보여주긴 하지만 커다란 좌절로 끝을 맺었던 작품이었다. 꿈은 있지만 능력 없는 젊은이의 대표적 인물로 병태와 영철을 내세워 청춘의 낭만을 그렸지만, 집에서조차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부잣집 아들 영철은 고래를 잡으러 간다며 세상을 떠나버렸고, 좌절하여 방황하던 병태가 입대하는 것으로 끝을 낸 <바보들의 행진>이었으니까. 낭만으로 버텨가긴 했지만 방황하다가 좌절로 마무리한 청춘의 모양이었다. 그런 전편의 색깔을 바꿔보려고 던진 퍼포먼스가 바로 ‘달리는 것’ 아니었을까.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세상 분위기가 젊은이 편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이렇게 달리고 있다 혹은 달려야 한다는 의미를 던지기 위해서. 그 결과로는 병태가 영자와의 사랑을 결혼으로 매듭짓고, 대학 졸업에 쌍둥이의 아빠가 되는 성과까지 올리는 해피 엔딩을 선사했다. 그렇게 젊은이들에게 전편의 좌절과 슬픔을 속편의 희망과 기쁨으로 바꿔주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실을 보지도 못하고 떠나버린 하길종 감독의 엔딩이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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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0303 나래접은 영상의 귀재_경향신문.jpg 나래 접은 영상의 귀채 (1979. 3. 3. 경향신문)


<병태와 영자>는 사실상 슬픈 영화였다. 당시 기사에서는 하길종 감독의 속편 두 편을 비교하면서 <속 별들의 고향>은 슬픔을, <병태와 영자>는 기쁨을 주고 떠났다고 했지만, 사실상의 내용은 두 편 다 슬픈 영화였다. 얼핏 보면 청춘을 묘사하며 그 속에 유머를 집어넣은 <병태와 영자>는 기쁨을 주는 영화로 보기 쉽지만 실제로 내용을 보면 좌절해서 갔던 군대 장면으로 시작해서 해답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청춘의 모습을 그리다가 비현실적인 도전으로 이루게 된 낭만적인 해피 엔딩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런 면은 <병태와 영자>에 나오는 장면이나 내뱉는 대사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면회 온 영자를 맞은 졸병 병태는 군대 생활 3년 동안 집이 있는 서울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유는 그냥 가기 싫어서였다면서. 의사와 약혼하기로 했다면서 병태의 제대 축하 모임에도 끼지 않는 영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약혼자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는 슬며시 수화기를 놓는 병태의 모습도 보인다. 자신을 던져버릴 정도의 꿈이 있었던 죽은 영철이가 차라리 부럽다며 꿈도 없이 현실만 생각하며 빙빙 돌아가는 시곗바늘처럼 사는 자신을 탓하는 병태의 모습도 보이고. <병태와 영자>는 방황하는 청춘의 고민과 번뇌를 그리려 했던 작품이 틀림없다.


하길종 감독의 의도는 당시 우리 사회의 암울함을 청춘 속에서 지적하며 꿈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낭만으로 읽히는 청춘 속에서 좌절을 보였다면, <병태와 영자>에서는 꽉 막힌 사회 속에서 꺼내기 힘든 청춘의 꿈을 애써 집어 올려서 보여준 것이다. 영철의 꿈이 동해의 고래였다면, 병태의 꿈은 눈앞의 영자였다. 눈앞의 영자는 이루기 쉬운 꿈이 아니라 빤히 보이는 현실의 벽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때고 지금이고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 말이다. 영자의 선택이란 곧 힘찬 현실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병태가 열심히 달려서 해내는 걸로 마무리지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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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와 영자>는 7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였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꺾여버린 청춘을 보였다가, <병태와 영자>에서는 기어이 이루어내는 청춘으로 보완해서 마무리 짓고 하길종 감독은 떠났다. 당시로서는 하길종 감독이 던진 만큼의 의미를 받지 못했다가 세월 지나서야 받게 된 셈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작품보다는 감독의 타계로 기억했던 영화였지만 늦게라도 그가 전하고자 했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가 <바보들의 행진>을 던져서 일으킨 파문이 <병태와 영자>로 인하여 더 크게 일지는 않았지만, 그로서는 좌절시켰던 청춘의 꿈을 마지막 작품으로 꺼내주고 떠난 셈이 되어서 편안한 마무리로 보고 싶다.


청춘은 언제나 있는 존재다. 1970년대 마지막 영화에서 그렸던 그때의 청춘 모델들이 마지막으로 뱉었던 대사도 인상적이다. 대학 졸업식을 마친 병태가 아이를 낳은 영자에게 가서 병실에서 나눈 대화다. 학창 시절에 대한 이 대사는 언제나 유효하지 않을까?


영자 : 참으로 파란만장했던 학창 시절이군요.

병태 : 그러나 참 좋은 시절이었어. 머물고 싶은 시절이 이제 막 끝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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