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공익광고가 하나쯤은 있어

5월 16일 출근길

by 박유재

5월의 햇살은 따사롭기만 했다. 강한 햇빛에 그늘을 찾아 숨어서 버스를 기다렸다. 낮게 내리쬐는 햇빛은 건물들 사이를 뚫고 다리 아래에 닿으며 따뜻함이 스며들었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 2인 좌석. 태양은 왼쪽에 있지만 고도가 낮아 내 얼굴 위에 쏟아졌다.

'피할 수가 없네.'

태양을 피할 수 없어서 왼쪽 눈만 찡긋한 채 앉아 있었다. 버스가 나아가며 햇빛은 끊어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건물에 가려졌다가 밝아지고 가로수 뒤에 숨더니 이내 나타났다. 눈앞에 섬광이 점멸하고 활동 사진이 펼쳐지는 듯하였다.


버스에서 내렸다. 내 앞에 젊은 남자는 왼손을 들어 얼굴 위로 그림자를 만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저건 뭐지?'

남자는 왼손으로 잡고 있는 휴대전화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휴대전화는 아*폰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크기를 고집한다는 아*폰.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전화가 남자의 불편함을 해소시켜 주고 있었다. 물론 왼손만 이용해도 되겠지만, 휴대전화는 손에서 뗄 수 없는 애완물이 아닌가!


오늘 열차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적당한 수의 승객들, 조용히 눈을 감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보내는 시간들. 열차의 건조한 안내 방송과 창 밖 어둠 속에서 휙휙 나타났다 휙휙 뒤로 사라지는 형광등 불빛만이 열차의 움직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시선이 머물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눈길이 닿은 것은 지하철 광고판. 이젠 이것도 별스럽지 않다.

한 손에 테이크아웃한 음료를, 또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잡고 걷는 여자. 휴대전화를 보며 이동하다가 마주 오는 여자와 충돌할 뻔하는 ‘이동안전 공익광고’.

"다음 중 임산부는 누구일까요?"

우락부락한 근육맨과 허리에 배지를 매달은 평범한 차림의 여성이 등장하고, 잠시 후 여성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임산부석을 비워놓자'는 공익광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주고 문득 등가방을 등에 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앞으로 고쳐 메는 젊은 남자. 흐뭇하게 미소 짓는 옆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지하철 에티켓 광고.

지하철 범죄 경고, 휴대전화 분실 대응 요령, 매우 중요하지만 자체 제작한 것만 같이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한 화재대응 요령까지.

눈을 감아도 선연할 정도로 이제는 지겹다.

휴대전화를 보며 걷는 사람은 여전히 내 앞길을 막고, 유독 내가 객실 통로를 이동하려면 등에 멘 등가방이 거치적거린다. 배지를 드러낸 여성이 임산부석에 앉지 못하고 망연히 쳐다보는 장면도 여러 번 보았다. 이제 공익광고의 효용은 끝난 듯하다.

최근 안타까운 광고가 하나 추가되었다.

"환자에게 돌아와 주세요."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의료대란에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광고. 하지만 이 열차 안에 의사가 몇 명이나 탔을까?


다른 쪽 광고판을 봤다.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가 끝나고 화면이 바뀌었다.

'오너리스크를 다듬은 말은 '경영주발 악재'다'

화면 중앙에 큼직하게 문장이 나오고 그 아래로 'O'과 'X'가 나타났다. 정답은? 'O'.

'또 이번 오너리스크로 인해, 해당 회사의 주가가 폭락했습니다.'라는 예시문이 나오고 오너리스크에 중간줄이 그어지며 그 위로 동그라미로 강조된 '경영주발 악재' 글자가 써졌다.

'이거 괜찮네!'

화면 오른쪽에 반듯한 아나운서 사진이 덧붙여져 신뢰감을 돋우었다.

화면은 다시 광고로 바뀌고, 다른 광고가 나오고 또 다른, 또 또 다른 광고가 나오더니 '다듬은 말' 공익광고가 나타났다. 더욱 집중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같은 내용이었다.

포털에서 ‘경영주발 악재’를 검색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영주발 악재’ 관련 뉴스는 의외로 서너 건(?) 정도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이 공익광고의 효과도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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