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출근길
하늘은 희뿌옇고 햇살은 잠시 숨은 아침이다. 바람 한 점만 불어준다면 상쾌한 날씨가 될 수 있었다. 살짝 아쉬운 시작이다.
사거리도 버스 정류장도 한산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내 앞으로 느릿하게 걷는 고등학생이 걸리적거렸다. 학생은 얇은 푸른색 상의 학생복에 검은색 면바지를 입었다. 다리는 얄팍하니 송곳같이 가늘었다. 그는 젓가락이 교차하듯이 걸으며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잡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 학생 외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두 명 정도 더 있었다.
'학생들이 있네… 언제부턴 거지?'
사거리 5층 건물 꼭대기에 붙어 있는 디지털시계는 7시 14분을 표시하고 있었다.
올 초 회사에서 자리를 옮겼었다. 근무장소가 바뀌었고 덩달아 출근길도 멀어지게 되었다.
조금 일찍, 조금만 더 일찍. 마음의 부추김에 밀려서 집을 나서는 시간이 몇 차례 빨라지더니 대략 15분 정도 이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류장에 낯익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달뜬 얼굴로 뛰어오던 중년의 여자도, 두런두런 정겹게 얘기하며 버스를 기다렸던 젊은 부부도 없었다. 길 건너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초등학생들과 보호자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녹색 카디건을 즐겨 입는 젊은 남자가 그나마 눈에 익었다. 오늘 더운 날씨가 예상되었는지 아니면 어제가 너무 더웠던 때문인지 검은색 반팔 폴로셔츠를 단출하게 입고 정류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본 적은 꽤 오래되었다. 아직 날씨가 풀리기 전에 그는 체크무늬 트렌치코트를 입었었다. 배우자와 같이 출근을 하며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낯이 익었었다. 그 외에는 낯선 이들만 몇 명이 있었다. 비슷한 시간에 움직이는 이들인데.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터덩 텅텅 털털털털."
청소부의 청소용 리어카가 텅 비었는지 운전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디론 가 움직여 구석구석 쓰레기를 실으러 가는 모양새였다.
버스를 타고 가며 청소부가 또 보였다. 그는 노란 형광색의 복장을 하고 안전모를 쓰고 보도와 차도의 경계 부분을 쓸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또 다른 청소부를 볼 수 있었다. 그 또한 보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담배꽁초며 잡다한 쓰레기를 쓰레받기에 담아 리어카에 던져 넣고 있었다.
'지금이 가로변을 청소하는 시간이군.'
지하철 출입구에서도 미화원을 보게 되었다. 진청색의 복장으로 볼 때 미화원은 지하철 소속일 게다. 대합실을 청소하고 물걸레로 계단 난간을 닦으며 지상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움직임. 한 곳에 서서 살펴보았다면 착착 펼쳐지는 장면을 하나하나 얘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시간이면 그 사람이 나타나고 다른 이가 스쳐 지나가고 또 다른 이들이 정류장에 모여든다. 초등학생들이 순서대로 모여들고 스쿨버스가 이내 도착한다. 청소부는 가로변을 쓸고 잠시 후에는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 가 간다. 가게 주인이 문을 열고 주변을 청소하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한 남자가 마을공원 어귀에서 담배를 피운다.
이건 거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의 장면과도 같다. 사랑을 얻어 내기 전까지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 엉뚱한 사람을 만나고 낭패를 당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만난 후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하루는 무심했다가 하루는 화를 냈다가 하루는 자살했다가. 이제 낭패를 피할 줄 알게 되고 여자와의 대화는 날마다 깊어 가고.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여자의 사랑을 받게 되며 타임루프를 탈출하는 영화.
타임루프 속 열차는 정물화 같다. 객차 내부를 배경으로 사람들을 소재로 표현한 그림 같다. 아니, 정물화보다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여기 소재는 사람 밖에 없다는 점.
'그래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건가…?'
나는 그런 생각에 이르고 열차는 나의 종점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 이번 글로 '봄'편을 마칩니다.
꽃이 피고 화창한 날씨 가운데 출근길은 다른 듯도 한데, 결국 같기도 했습니다.
초라한 글을 읽어 주시고, 구독과 라이킷과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여름은 정말 갑자기 오네요. 여름맞이와 개인 소사 몇 개글을 '다시 여름 -'편으로 꾸며 1년간 연재해 온 '출근길 인생'을 이제 마무리하려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