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출근해 볼까

5월 20일 출근길

by 박유재

끄응, 배우자의 반 신음 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이제 그만 일어나 볼까…?"

아내는 부스럭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잠자리를 정리했다. 아내는 오늘 고향으로 먼 길을 움직일 예정이었다. 어제 옷가지를 세탁하고 주방을 정리하고 먹거리를 준비하고 밀대로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내가 뭐 할 거 없어?"

나의 물음에 '다 했어, 다 했어'를 반복하며 끝내 혼자서 일을 마쳤었다. 열차 출발시간이 두 시간 남짓 남은 시간에 끄응, 피곤한 몸을 일으킨 것이다.


내 몸은 피로가 풀렸는지 감각이 없고 머릿속은 잠결에 텅 빈 무게감만이 있었다.

'이제 그만 출근해 볼까?'

혼잣말이 떠올랐다. 잠자리에 일찍 들어서 잠을 충분히 잤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계속 잠을 밀쳐내다가 잠이 들었는데, 번잡한 생각이 어디론 가 숨어버려 머리가 가벼워졌기 때문일까? 그냥 배우자의 부산함에 뒤따라 떠오른 것일 뿐 모를 일이다.

마치 일정에 매어 있지 않은 냥, 가볍게 선택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냥, 출근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은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오늘도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하늘은 투명하고 연한 푸른색으로 도배되고 공기도 시원했다.

'아직 봄은 봄이다!'

미세먼지에 몸살을 하고 가뭄과 때 아닌 더위에 눈살을 찌푸렸었지만 다행히도 아직 봄이다.

연초록으로 깔리고 비죽비죽 울퉁불퉁 녹색의 형상들이 모여 선 마을공원에서도 조각난 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녹색의 형상 한 부분에 파랗고 붉은 물이 든 물체가 흔들거렸다. 나뭇가지 사이로 깊숙이 비닐 가오리연 하나가 사로잡힌 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저 연은 얼마나 하늘을 날았을까?'

매인 실에 풀려났을 때는 즐거웠을까? 아니면 흔들흔들 미끄러지듯이 추락하며 불안에 떨었을까?


돌곶이역 대합실로 내려가 개찰구로 향했다. 중년의 여자 두 명이 개찰구를 막 빠져나오고 있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번들거리는 화장을 한 얼굴은 밝았고 이빨을 드러내며 서로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길래…'

두 여자는 출근 중인 것 같았다. 이 시간, 이 장소로 판단해 볼 때, 그들은 직장 동료로 보였다. 출근길의 끝자락에 만나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재담을 터뜨리며 직장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혹 그들 마음의 바닥에는 꿈틀대는 긍정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오늘 일을 끝냈을 때나, 내일 또 이 자리에서나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웃음으로 솟아나는 건 아닐까.


잠실역을 나오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전화벨 소리가 길게 이어졌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통화 아이콘을 눌렀다.

"띠리리리리리."

"응, 미안. 움직이느라고 몰랐네?"

"잘 도착했어?"

"응, 시간 얼마 안 걸려! 미아사거리에서 전철 타고 금방이야."

아내의 목소리에도 긍정이 묻어 있었다.


피곤하든 안 피곤하든, 매어 있든 풀려 있든 시쳇말로 마음먹기 달렸다.

'오늘 한번 출근해 봤어!'

발걸음과 무관하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몽실몽실 떠오르고 있었다. 나의 직장도 바로 저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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