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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ug 13. 2024

들에서 자라 들꽃 같은 아이들

주변의 몇 사람이 팀을 만들어 한 동안 경기도 어느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다녔다. 봉사활동은 분기에 한 번 토요일 점심으로 아이들에게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었다.

     

바비큐 파티를 여는 데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100여 명의 아이들이 먹을 고기와 채소 등을 구입한 다음 이른 시간에 보육원에 도착해 채소를 씻고, 땔나무를 끌어모아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윗마당에 아이들이 앉을 의자와 탁자를 배치하다 보면 점심이 늦어지지 않게 늘 서둘러야 했다.      


과일이 먹고 싶다던 어느 아이는 우리 집 애들이 무슨 과일을 좋아하는지 되돌아보게 했으며, 과자가 먹고 싶다던 또 다른 아이는 우리를 마트의 선반 앞에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과자봉지를 하나씩 들고 무슨 맛일지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아이들의 반응을 상상해 보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왁자지껄 바비큐를 즐기고 있을 때 'ㅇㅇ야! 엄마 오셨어!' 하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ㅇㅇ가 어느 아이인지 금방알 수 있었다. 가운데쯤 앉아 있던 한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바비큐며 과자며 과일이며 모든 걸 내버려 두고 쏜살같이 사무실로 뛰어 내려갔다.


그랬다.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떠들면서도 주말이라 부모님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마음 한 켠에 감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뛰어내려 가는 아이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야 했다. '자! 이리 와, 이제 밥 볶아먹자!'.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외침을 아이들은 묵묵히 따라주었다.


아이들에게 갈라주고 남은 과자 한 봉지를 집에 가져와 우리 애들에게 내밀었다. 안 먹는 과자란다. '그래도 먹으라고!' 느닷없이 울컥하는 나를 아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깻잎에 고기를 싸서 '이거 드세요'하며 올려다보던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는 우리로 하여금 10여 년 이상 보육원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직장이 세종시로 옮겨가며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방 한 칸 없이 보육원을 떠나야 했던 자립준비 청년에 대해 정부와 사회의 지원이 절실함을 강변하고 다녔다.


당시에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단어조차 없었고, 사회복지인사들이 자주 쓰는 말 그대로의 '복지 사각지대'였다. 지금은 전세 자금 지원, 대학(원) 장학금 지원, 생계 지원 등 여러 가지 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가장 꼬마였던 네 살배기 oo이, 이제 많이 컸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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